'맞폭'에 대하여
학폭 업무를 맡은 첫 해, 그 해 교사 연수는 학교폭력전담경찰관이 담당하였다.
당시 학폭이 처음 도입되는 시기였기에, 그 경찰관은 학교폭력 제도가 왜 학교에서 시행되었는지에 대해서 기나긴 썰을 풀어놓았다. 요약하면,
'청소년 대상 흉악범죄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경찰서에 오고 소년원에 가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이 학생들을 선도하고자 이런 제도를 시행하였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교육 선도 기능은 잃은 채
초등 학교 현장을 맞폭의 아사리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맞폭: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피해자를 다시 가해자로 지목해서 새로운 사안을 신고함에 따라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바뀌어 학폭을 진행하는 것
학폭 초기에는 맞폭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학폭 제도가 학교에 들어오고 몇년 간은 학교에서 학폭사안이 밝혀지면 선도조치(소위 징계)까지 학교에서 모두 내렸다. 그리고 담임교사, 피해관련, 가해관련, 목격학생들을 모두 전담기구에 불러 의견을 청취하고 선도조치를 결정했다. 때문에 가해쪽에서 '나도 피해자다'라고 요구해도 생활지도를 한 담임 교사나 교과 교사는 사안의 '실체'를 알고 있기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그렇지만 학폭은 진화했다. 어떤 방향으로 진화했느냐면 아주 소극적으로 말이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 자세히 작성해 보겠다. 학폭의 진화는 그 역학관계가 복잡해 단순히 몇 줄로 끝날 일이 아니니 말이다. 어쨌든 학교에서 학폭 제도는 무미건조한 절차로 바뀌었고, 결정적으로 선도조치 결정이 교육청으로 넘어가면서 맞폭은 폭증하게 됬다.
교육청은 학교 현장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해 '신고된 학폭 사안의 내막'을 알기 어렵다. 물론 학교에서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교육청으로 올리지만 맞폭의 경우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육청에서 선도조치가 나는 경우는 증거가 분명한 경우다. 그렇지만 초등학교의 특성 상 어떤 의도적이고 증거가 분명한 학폭보다는 학교 생활 도중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렇다 할 증거를 양쪽 다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교육청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육청은 '조치없음'을 결정해서 학교로 내려보낸다.
이런 정보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인지, 아니면 변호사들이 조언을 하는 것인지
요즘 초등에서는 맞폭이 난무한다. 가해학생으로 지목되서 학폭 신고가 되면 아주 많은 수가 다시 피해학생의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맞폭을 진행한다. 물론 처음 가해학생으로 신고된 학생이 정말 사소한 것이나 정말 학폭을 가하지 않았는 데 신고된 경우도 있다. 이 부분도 단 몇줄로 넘어갈 일이 아니니 다시 자세히 쓰도록 한다.
진실이 무엇이건, 요즘 나는 학폭 한 건이 신고되면 마음 속으로 준비를 한다.
'아 한 건 더 신고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