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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캉 Dec 27. 2023

옥수동 우물 이야기

- 사라진 서울 산동네 이야기-

* 옥수(玉水)라는 지명은 과거 이 지역에 옥정수(玉井水)라는 우물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나는 서울 옥수동 산 5번지에서 태어났다. 산 정상에서부터 다섯 번째 집이었다. 서울에 산동네는 대도시여도 시골 같고, 서울에 중심이어도 변두리 같았다.


 나는 산 5번지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와 어느 동네에서 살았다. 큰 대로(?), 아니 2차선 차로에서 큰(?) 골목을 따라 비탈을 올라오다가 뒤 돌아보면 멀리 한강이 보이는 산동네였다. 그 큰 골목의 끝에 작은 골목으로 나뉘는 원형교차로에 우리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우물이 있었다. 집들은 따닥따닥 붙어 있어 경계는 없지만 마을 초입 작은 공간에 우물을 중심으로 같은 동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물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동네 아이들은 우물 주변 공터에서 놀았다. 학교를 가지 않던 시기에는 하루 종일, 학교를 입학하고선 학교 숙제도 하지 않고 동네 우물에서 놀았던 것 같다. 동네에 안 좋은 일이 계속됨을 인지하기 전까지….


옥수동 우물

 어릴 적에는 동네마다 통장, 반장이 있었다. 그래서 통장집, 반장집으로 불리는 집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유독 반장집으로 명명된 집이 없었다. 아니 반장집이 너무 많은 건지도.

 동네에 반장집 하던 집에는 아저씨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부터 3대 독자였던 친구 아버지, 그리고 기름집, 쌍둥이네, 옆뒷집, 앞집 아저씨도 모두 다양한 이유로 돌아가셨다. 심지어 새로 이사 온 뒷집 차 씨 아저씨도 젊은 나이에 아이들 둘을 두고 돌아가셨다. 내가 좀 컷을 때에는 슈퍼 아저씨도, 우물과 조금 떨어진 집 아저씨도, 7남매집 아저씨도 돌아가셨다. 살아남으신(?) 분들은 갑자기 중풍을 맞으신 개인택시 기사 아저씨와 사우디에 오래갔다 오셔서 마을에 안 살던 뒷집 아저씨와 대문을 마주 보던 곽 씨 아저씨 등 몇 분만이 내가 떠날 때까지 살아 계셨다.

 생각해 보면 안 좋은 일은 어떤 아이가 우물에 빠져 죽을 뻔하면서, 그 후로 동네 아저씨가 우물에 문을 만들어 자물쇠를 채우기 시작한 후부터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놀이터가 되고 상수도 단수 때 동네에서 유일한 식수원이기도 했지만, 굳게 닫혀버린 후로 우물은 동네 흉물이 되었고, 내가 그 동네를 떠나던 서른 무렵까지 우물은 과부댁이 많던 동네에 마법(?) 같은 기운을 조금씩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남아 있었다.

어쩌면 재개발로 인해 모두 떠나고 유명한 대기업 아파트 단지로 바뀌기 전까지 한 많은 가족의 역사와도 같았던 우물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수십 년 동안 내 어린 시절과 청춘이었던 그 동네에 대한 기억조차 이젠 추억처럼 흐려진다.

 가끔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이었던, 대기업 다니던  2층집 아저씨가 죽고 자식들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아주머니는 폐휴지를 줍고 다니신다는 소식을 어머니를 통해 들을 때에 여전히 슬픈 기억만 가득 차 있던 우물을 떠 올리게 된다.


2023.12. 로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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