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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스웨덴 부부 Aug 22. 2017

스웨덴에는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에 담긴 교육의 자율성

스웨덴과 한국 두 나라의 초등교육, 차이점은 무엇일까

뜻밖의 창의성을 길러주었던 추억의 교과서 튜닝


2017년 초등교과서,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우리로선 이 컬러풀한 교과서들이 낯설기만 하다. 


- 교과서에 대한 우리의 시선

2학기가 끝나가는 학년 말, 아이들은 대개 들 떠있다. ‘공부도 진도도 거의 다 끝나가겠다.’ 오늘은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할지 궁금해하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동안 공부와 진도에 허덕이며 힘들어했던 건 교사나 학생이나 매한가지. 그래서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 가는 학기 말은 조금의 여유로움이 생긴다. 아이들과 요리나 공작 활동, 체육도 하고 한 해를 갈무리하는 편지나 롤링 페이퍼 쓰기 같은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과 작별을 준비한다.


아이들을 설레게 하는 여러 가지 사건 중 하나는 다음 학년 교과서 배부다. 산처럼 쌓인 교과서들을 복도에 두면 아이들이 총총 나가 한 권씩 한 권씩 집어온다. 마치 뷔페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집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필요한 교과서를 모두 챙겨 오면 10권이 넘기도 하는데 그걸 가방과 보조가방에 집어넣고 하교를 하는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면 ‘너희들이 벌써 이렇게 컸구나.’라고 흐뭇하기도 하고 무거운 걸 낑낑대며 들고 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내가 학교를 다녔던 시절에도 새로운 교과서를 받고서 ‘새 학년 진급’을 실감했던 것 같다. (물론 새 학년이 되기 전까지 책은 책상에 고이 보관했었다.)

교과서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수능 고득점자들을 인터뷰하는 뉴스나 신문 기사였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는 수능 결과가 나오면 수능 최고 득점자나 만점자의 집에 찾아가 학생을 인터뷰하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기자가 ‘수능 고득점 비결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학생들은 항상 ‘수업 시간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 대답이 매년 너무나 똑같아서 수능을 준비하던 우리 사이에서 종종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교과서는 공부를 하거나 시험을 볼 때, 초등학교 1학년 입학부터 수능을 볼 때까지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제 1의 도구이다. 교과서란 우리의 책상 위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 같은 교과서, 같은 페이지를 펴서 그 내용을 읽고 배우는 것이 학생의 본분으로 여겨졌다. 교사 역시 학생들에게 교과서 내용을 잘 이해시키는 것이 주된 본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내왔다. 그런 속에서 교과서는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우리에게 비슷한 의미로 남아있고 사회적으로도 ‘교과서적인 000’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을 만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가깝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세상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란 없다는 걸 함께 생각해 보고자 스웨덴 초등학교의 교과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스웨덴 초등학교 교실 모습 (Klostergårdsskolan)


- 스웨덴의 초등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

스웨덴의 초등학교에는 우리에게 ‘당연했던’ 교과서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급별로 교과서가 다르다. 각 반의 담임교사가 자신의 교육 철학에 따라서 학생들에게 적합한 교과서를 고르거나 스스로 교재를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친다. 국가는 학생이 달성해야 할 교육 목표를 ‘정말’ 큰 틀에서 정해주고 그것을 달성하는 세부 방법에 대해서는 교사에게 맡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스웨덴은 9년의 의무교육 기간 동안 달성해야 할 영어 교육의 목표가 10여 쪽 정도의 책자에 담겨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가 교육 목표를 촘촘하게 설정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몇 권 분량 정도 된다.)

그런 까닭에 지역마다 학교마다 각 교실마다 학생들의 교과서가 다른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4학년 1반의 교과서와 4학년 2반의 교과서가 서로 다른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그런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학년의 교과서는 모두 같아야 한다.’라는 학생 때부터 자리 잡은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우리나라 초등학교와 비교를 하자면 우리는 국정, 검인정 교과서를 함께 사용한다. 초등학교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 과목은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고 다른 과목들은 여러 출판사가 만든 검인정 교과서 중에서 각 학교의 사정에 맞는 검인정 교과서를 선택해 사용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때에는 모든 과목이 국정 교과서였지만 현재는 좀 더 다양한 교육적 시각을 담고 각 학교의 교육 상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검인정 교과서를 도입해 국정 교과서와 함께 사용한다.

내가 교과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과 교육의 의사 결정권을 기본적으로 누구에게 부여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절 학과 공부를 할 때, 학교 현장에 나와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다른 나라 학교의 교과 교육 방식이 주제가 되곤 했다. 그 대화 속에서 학생이 배우는 각 과목의 전달 방법, 더 나아가서는 교과의 세부 구성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주체가 학급의 담임교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구체적으로 다른 몇몇의 나라들에서는 담임교사에게 자율성을 많이 부여해서 교사들이 교과서를 각 학급에 맞게 만든다거나 창의적으로 재구성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학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것을 토대로 가장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교사라는 믿음 때문이다. 학생들은 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교사와 학생은 교실에서 함께 지내며 공부를 하는데 이 시간 동안 교사는 학생이 어떤 과목을 잘하고 어려워하는지, 어떤 교육법이 학급 학생들에게 더 효과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 세부 구성의) 자율성 부여를 통해 더 큰 교육적 성취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교사가 큰 교육 목표에 부합하는 교육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맞는 교재를 직접 선정(혹은 재구성)하여 수업을 꾸려 나간다는 것, 이는 회사로 따지자면 상사의 세부적인 지시를 받지 않고 프로젝트를 직접 맡아 이끌어나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큰 교육 목표에만 맞춰간다면 무엇이든 해볼 수 있고 진정으로 ‘격을 파하는’ 자신만의 창의적인 교육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구조에서라면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에게 좀 더 적합한 맞춤형 교육 활동이 이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교사에게 더 많은 자율성이 부여되는 것을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여겨 왔었다.


노트북으로 공부하고 있는 스웨덴 어린이들 (출처: Lena Granefelt/imagebank.sweden.se)


- 교과서의 부재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

하지만 스웨덴에서 직접 스웨덴 교사들을 만나며 ‘교사가 가진 교육 자율성 확대’, ‘학급마다 다른 교과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교과서의 자율적인 선정(재구성), 교육 내용의 자율성에 있어서 그들은 자신들 방식의 문제점을 털어놓았다.


첫 번째는 교사 간 편차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교사에게 자율성을 많이 부여한 만큼 그들에게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학생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르칠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가 교사인데 각 교사가 가지는 교육에 대한 열정, 수업 지도 능력 등이 다른만큼 교사 간 학습 지도의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균등한 수준으로 교육을 받게 하는 데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교사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지만 이것이 학생들의 균등한 교육적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스웨덴에서 학생들이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때때로 매우 민감한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문제는 학생이 전학을 갈 때 발생할 수 있는 학습 결손의 문제다. 전학을 간 학생은 새로운 학교, 친구, 선생님이라는 낯선 환경에 새롭게 적응을 해야 하는데 이는 학습의 영역에서도 예외일순 없다. 우리들도 간혹 새로 전학 간 교실에서 수업을 들을 때, 수업 진도가 조금씩 달라서 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새 학교에서 다시 배운다거나 전 학교에서는 안 배웠는데 새로운 학교에서는 이미 공부를 마쳐 진도를 건너뛰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학습 결손은 학생이 공부를 하는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반면 스웨덴에는 전학으로 인한 학습 결손이 우리보다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스웨덴은 지역과 학교, 교실마다 교과서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이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학생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우리처럼 수학 교과서 70쪽을 공부하다가 새로운 학교에서는 75쪽으로 건너뛰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책을 가지고 기존과는 다른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교사들마다 서로 다른 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 공부를 지도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학생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학기 중에 전학을 가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학습 결손의 문제 역시 학생들의 균등한 교육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마지막은 교사의 업무 과중 문제이다. 이는 실제 우리가 만난 스웨덴 교사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문제점이다. ‘자율성’이란 말은 자칫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표현으로 비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교사의 ‘자율성’에는 엄청난 책임이 따르고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하기에 정해진 틀을 따라가는 것에 비해 훨씬 어려운 방향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 목표가 세세하게 설정되어 있어 매시간 학생이 어떤 교육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에 안내가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효과적일까?’,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해야 학습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는 내게 늘 고민이자 숙제였다. 하지만 스웨덴처럼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교과서 제작, 학습 주제 선정까지 교사가 모두 스스로 한다면 이는 교사에게 엄청난 부담과 업무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가 인터뷰를 하며 만났던 스웨덴 교사들은 자신들 직업의 단점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와 해야 할 업무가 많은 점을 들었는데 위와 같은 환경이 과중한 업무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교실 한 켠 초등교사 Emma의 업무 공간, 한국 교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교과서, 그리고 교사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할까?

교사의 자율성을 얼마만큼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사실 정답이 없다. 이에 대해 수학처럼 수치화를 할 수도 없고 최적의 결과를 찾기 위해 물리 공식에 대입할 수도 없다. 다만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학교와 교육, 교사와 학생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교사에게 좀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면 학생 교육에 있어서 교사가 가진 색깔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 또한 교사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학생과 학급에 더 적합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 교사들이 항상 바라는 ‘교육의 전문성’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의 자율성이 확대되면 그만큼의 교육적 책임도 커지기 때문에 교사 각자 사명감을 가지고 스스로의 역량을 갖추는 일도 병행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교사의 교육 역량을 확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돕고 교사에게 더 큰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된 교과서가 필요한가?’, ‘교과 교육에 있어서 교사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그리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동안은 내가 겪어온 우리 교육의 아쉬운 점들이 커서 다른 나라의 교육 방식은 대개 옳고 좋은 것이라 여겼지만 그들 방식 역시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과연 우리에게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의 교육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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