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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스웨덴 부부 Sep 05. 2017

스웨덴 교사가 칭찬을 아끼는 이유

스웨덴에서 바라 본 평등. 우리에게 평등이란 가치는 확대되어야 할까



최근 '성적 순으로 급식을 먹는다'는 설정으로 '현실성 없다'는 논란을 불러왔던 드라마 <학교 2017>의 한 장면


- 내가 느꼈던 학교의 평등 문제

나는 고등학교 내내 기숙사에서 살았다. 집과 학교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기숙사에서 살면 자극을 받아 공부를 열심히 할 거라는 부모님의 제안에 기숙사 생활을 택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며칠 전, 기숙사 신입생들은 입소를 했다. 바리바리 싸 온 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우리는 1층 독서실에 모였다. 어색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독서실 자리 배치가 시작됐는데 그때는 영문도 모르고 사감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지정해주는 자리에 앉았다. 


며칠 뒤, 친구로부터 기숙사 자리 배치가 고등학교 입학 성적순이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맨 앞자리에 누가 앉아 있지?'였다. 그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부러움과 시기, 질투 같은 마음이 들었던 건 숨길 수 없었다. 이어서 든 생각은 '나는 몇 번째 자리에 앉아 있지?'였고... 밤늦게 야자를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가선 내 자리가 몇 번째였는지 눈으로 세고 등수를 가늠해 봤다. 내 뒤에 있는 친구들의 자리를 바라보면서는 알량한 우월의식과 안도를 느꼈고 내 앞에 있는 경쟁자들의 자리를 바라보면서는 '언젠가 저 자리를 쟁취하리라.' 같은 의욕을 불태웠다. 


그 이후 우리 학교에선 중간, 기말, 수능 모의고사 등을 봤고 그때마다 우리는 여기저기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우리는 '자리를 너무 자주 옮기는 거 아냐?' 라며 불평했지만 성적에 따른 자리 배치 자체에는 불만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에서는 기숙사 입소, 방과 후 특별 수업 신청, 수학-영어 수준별 반 편성과 같은 것들의 기준이 되는 게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것들이 성적과 등수 기준이어서 기숙사 자리 배치도 성적순으로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그때에는 성적(등수)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었고 수능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내가 가지는 평등의 인식은 급식실 아주머니가 나에겐 작은 닭다리를, 고 3 선배에겐 더 큰 닭다리를 배식해 주실 때 느꼈을 뿐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2015년까지 성적 순으로 급식을 배식받는 학교들이 있어 논란이 되었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


십여 년이 흘러, 나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다. 발령을 받고서 6학년 담임을 했는데 그 당시 우리 학교 6학년 학생들 전체는 수학 수준별 이동 수업을 했다. (6학년 전체 학생들의 수학 성적에 따라 수학 반을 나누고 수학 시간마다 아이들이 수준별 반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교장선생님이 학습의 효율성과 학생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 수학 수준별 이동 수업을 지시했고 선생님들은 큰 이견없이 그 지시를 따랐다. 동료 선생님들과는 수학 수준별 이동 수업의 장점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를 나눴고 학부모들도 수준별 수업에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어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반대나 토의는 없었다. 


수준별 이동 수업이 결정되자 아이들은 내가 고등학생 때 그랬듯 '자기가 어떤 반인지', '어떤 반이 우수한 반인지', '친한 친구랑 같은 반에 가는지' 등을 궁금해할 뿐, 수학 수준별 이동 수업 자체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성적으로 많은 것들의 기준을 삼는 게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는 이미 낯설지 않아서였을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는 수준별 수업이 '아이들에게 불평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용기가 부족해 다른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께 내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나는 학교 안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평등의 문제란 '성적에 관계없이 학생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겐 성적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했고 성적을 기준으로 삼아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아이들을 줄 세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스웨덴에 오고 나서는 학교에서 신경 써야 할 평등의 문제가 단지 성적에 의한 차별에만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평등의 영역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다양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은 '교사인 내가 학생들을 공평하게 대하겠다.'와 같은 선언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했다.



- Equality. 스웨덴이 가지는 자부심

스웨덴에 와서 적지 않은 스웨덴 사람들을 만났고 스웨덴 교육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교사들을 만났다. 나는 스웨덴 사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에 대화의 끝무렵에 항상 '당신이 생각하는 스웨덴 사회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묻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거의 모두 'Equality'였는데 그들은 스웨덴이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교육이나 사회 참여 등에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그들이 스웨덴 사회의 평등을 이야기할 때에는 큰 자부심을 갖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스웨덴이 왜 이토록 평등을 중시하는지, 스웨덴에서 평등의 가치가 자리 잡게 된 역사와 사회적 배경이 무엇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한 번은 스웨덴 사람과 대화를 하며 스웨덴 사회에서 평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봤더니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사민주의의 역사와 관계가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답변은 스웨덴 사람에게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설명할 때처럼 막연하게 다가왔다.


비록 스웨덴 사회가 가지는 평등의 배경과 역사에 대한 이해는 짧지만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다양한 영역에서 평등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실제 사회 안에서 이 가치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로 스웨덴의 차별 금지법을 들 수 있다. 이 법은 인종, 종교, 성별, 나이, 성적 취향 또는 장애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음을 보장한다. 또한 법 조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실제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일례로 내가 대학과 교육 기관의 OT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담당자가 차별 금지법에 대해 설명해줬다. 강사는 "스웨덴 사회는 대체적으로 관용적이지만 차별에 대해서는 무관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 모든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며 혹시 성별, 인종, 종교, 나이, 성적 지향 등으로 차별받았을 경우에는 담당자나 교사에게 리포트를 작성하라"고 안내해줬다.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이런 안내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사회적 차별이란 무언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 차별 금지 법 (출처: http://www.government.se)



- 스웨덴 교육에서 바라 본 평등

평등의 가치를 이루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교육과 학교 교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 교육과는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꽤 있어서 내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또한 '그들이 평등의 문제를 이 정도까지 생각하는구나.' 라며 놀랐던 부분도 있다. 우리와는 많이 달라 보이는 스웨덴 학교에서 발견한 평등을 몇 가지 소개해 볼까 한다.

   

우선, 학생에게 상장 수여와 공개적인 칭찬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상장(칭찬)을 받은 아이는 으쓱하고 뿌듯해 할 수 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상장(칭찬)을 받지 못해 소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교사들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한 반의 아이들 중에서는 1년 동안 상장을 하나도 못 받는 아이들이 있다. 상장이란 대개 예체능이나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아이들에게 주기 때문이다. 


상장 수여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다가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굉장히 실망한다. 상장을 받은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그와 동시에 '나도 상장을 받고 싶은데...'라는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또한 1년 동안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소외감과 좌절감은 굉장히 클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교육에서는 모든 아이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 장점에 대한 상장을 만들어 수여하려는 노력이 있다. 많은 아이들이 공평하게 상장을 받아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상장을 주진 못했지만 상장 수상자를 정할 때, 많은 아이들이 골고루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칭찬은 상장처럼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교실에서 되도록 많은 아이들을 칭찬했다. 아이들에게 긍정의 경험을 강화시켜주고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우리 교육 현장 여기저기에서 많이 쓰였고 선생님들 역시 칭찬을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여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공개적인 칭찬도 다른 아이들에게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와는 다른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사랑받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어린이날의 취지에 맞춰 전교생 모두에게 '상장'을 수여한 경주 옥산초등학교 (출처: http://www.kbmaeil.com)


두 번째는 학생이 교사를 부를 때 직함 대신 이름을 부른다. 이는 학교뿐 아니라 스웨덴 사회 전체에서 통용되는 문화라고 한다. 직함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캐주얼한 환경을 만들고 구성원 간 평등을 이루고자 수 십 년 전에 변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를 비롯한 대학교에서도 학생이 김 선생님이나 박 00 교수님 대신 이름만 부르고 직함은 생략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김 과장님, 최 대리님이란 직함 대신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나는 직함을 생략하는 게 서양 문화에서 일반적인 줄 알았는데 직함을 모두 생략하고 상사나 교수 등 윗사람의 이름만 부르는 건 스웨덴이 가진 독톡한 문화라고 한다. 


'성씨+직함'을 불러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우리 문화에선 이름을 부르는 게 예의 없게 들리거나 불쾌하게 여겨질 수 있다. 특히나 학생이 교사의 이름만 부른다면...? 아마 학생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는 그렇게 부를지 몰라도 교사와 학생이 대화할 때 교사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학교장과 교사들은 학교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서로 대화하고 의견을 나눈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학교 사회는 수직적인 구조여서 대개 학교장이 지시를 하고 교사들은 실행을 한다. 그 과정에서 경력이 적은 나 같은 교사는 말없이 지시를 수행하거나 본인 의견을 잘 내놓지 않는다. 회의를 할 때 발언권은 보장되지만 학교 사회에서 자유로운 토의, 토론 문화는 아직까지 어색하다.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자칫 도전적으로 보일 수 있고 동료 교사들에게 불편하게 들릴 수 있기에 의사 결정을 할 때 주체성을 갖지 못한 적이 많았다.


반면, 스웨덴 교직 사회는 계층 구조가 덜하기 때문에 교사와 학교장이 좀 더 평등한 관계를 가지고 서로 대화할 수 있다. 상의해야 할 내용이 있을 때 교장실 문을 쉽게 두드릴 수 있고 교육 사안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스웨덴 학교의 최종 의사 결정권자는 학교장이지만 교사들이 그 결정 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 질문, 반대 사항을 학교장에게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점은 우리 학교 사회와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내가 공부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내가 학교를 다니며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과제 하나가 끝날 때마다, 수업 하나가 끝날 때마다 마련되는 피드백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학기 말 성적을 받기 위해 온라인으로 강의평가를 작성한 적은 있어도 교수님을 앞에 두고 이렇게 신랄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은 아내에게도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 시간에는 과제 제출과 강의 방식에 대한 개인의 의견을 누구나 서슴없이 말하고 교수들 또한 이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하거나 개선 방향을 내놓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강의를 듣는 학생이 해당 강의의 교수님에게 "영철 씨, 이번에 내준 과제는 지금 강의의 주제와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 우리에게 평등은 확대되어야 할까            

나에게 평등이란 단어는 낯설지 않다. 어릴 때에는 평등보다 '공평'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친구가 사탕 1개를 받을 때 나도 똑같이 사탕을 받아야 공평하다고 여겼다. 좀 더 자라선 헌법과 인권의 개념을 접하며 모든 사람은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평등권과 사람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천부 인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평등을 종종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왜 중요한지, 사회 어떤 영역에서 평등이 이뤄져야 하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이야기했다.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의 평등,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평등처럼 내가 겪은 이야기나 책, 신문, 학교에서 이론으로 접한 것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스웨덴에 살며 사회 각 영역에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그들의 다양한 노력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평등에는 여러 영역(성별, 종교, 인종, 나이, 장애, 성적 지향 등)이 존재하고 그들이 그 영역에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들을 하는지 조금씩 알아갔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영역의 평등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는데 여러 생각과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계속 접하고 알아가면 평등에 대한 내 시야가 넓어지리라 생각한다. 

 

아직 막연하지만, 우리에게 평등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등은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고 우리의 역사가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를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곳인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평등을 일찍부터 일깨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며 나와 너 사이의 다름이 차별의 바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부터 다양한 영역의 평등의 가치를 배우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경험한다면 미래의 우리 사회 역시 지금보다 평등의 가치를 더 잘 실천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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