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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스웨덴 부부 Dec 19. 2017

우리 교육은 어떠한 길로
나아가야 할까

한국 교육에 새로운 자극이 되길 바랐던 글쓰기를 마치며



매거진에 연재하는 20회 차 마지막 글을 쓰면서 ‘이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담임교사로 근무할 때도 새로운 아이들과 만나는 3월부터 종업식이 열리는 2월까지 담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과 긴장감을 느꼈다. ‘내가 담임으로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우리 교실에서 행복한 한 해를 보내고 있을까?’, ‘아이들은 지금 성장하고 있을까?’와 같은 수많은 물음과 함께 내 마음속엔 늘 걱정, 긴장, 책임감 같은 무거운 감정들이 있었다. 한 해가 지나고 봄방학이 시작되는 2월이 되어서야 ‘무한 책임으로부터 해방되는구나.’라는 조금의 안도감이 먼저 들고 그 뒤에 아이들과의 작별에서 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동안 해왔던 글쓰기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함이랄까?


우리 부부가 함께 ‘한국 교사, 스웨덴 교육을 마주하다.’를 기획하고 교육 인터뷰를 시작한 게 1년 전이다. 처음에는 스웨덴 교육이 궁금하기도 하고 스웨덴 교육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듣고 싶어 시작했던 일이었다. 덕분에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열 명이 넘는 교육 관계자들(대학생, 교사, 한국인 학부모, 교육행정가, 사서, 진로상담교사 등)을 만났고 스웨덴 교육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꽤 많이 물어볼 수 있었다. 이어 브런치 매거진에 교육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을 싣고 스웨덴 교육에 대해 조사한 글을 쓰게 되면서 스웨덴 교육에 대해 더 많이 공부했고 또 알게 되었다.


우리 교육과 스웨덴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결이 다른 두 나라의 교육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었다. 북유럽과 아시아라는 지리적 차이점 외에도 기후와 자연환경의 차이,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가 공유하는 생각의 차이까지… 생각해보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은 두 나라이다. 그런 까닭에 두 나라의 교육에 대해서도 차이점을 위주로 글을 썼는데 눈에 보이는 교육의 차이점 외에도 그 차이점을 만든 사회적 배경이나 생각까지 자세히 썼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 나라 교육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새로운 교육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었을 뿐, ‘그래서 어떤 나라가 더 우월하다.’라고 서열을 매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각 나라가 가진 각자의 교육 시스템은 그 사회가 가진 가치관과 생각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순위를 정할 수도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회차에서는 그동안 연재를 하며 내가 인상 깊게 느꼈던 스웨덴 교육의 특징과 그들이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아울러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지도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삼고 싶다. 



교육의 주체는 아이

스웨덴에선 아이를 교육의 주체로 본다. ‘교육의 주체=교육을 받는 사람’이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텐데 그 당연한 사실이 내겐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실 우리 교육에서도 아이를 교육의 주체이자 중심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교육에선 아이들이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에 잘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누구든 많이 들어봤거나 아이에게 한 번쯤은 했을 말,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물론 이 말이 틀린 말이라거나 나쁜 말은 아니지만 이 말속엔 우리가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있다.


우리 교육에서 좋은 학생의 기준은 '부모님과 교사가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하게 하는가?'이다. 반면 학생이 가진 주체성과 자율성은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교육 과정에서는 교육의 주체를 아이로 정해두고 많은 학교에선 '자율성과 창의력을 가진 미래 인재 양성'을 외치지만 정작 현실에서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가 시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교육의 주체가 아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누구든 그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이 자립할 수 있는 한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다면 아이는 (학교 및 가정) 교육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주체성을 기르며 더 나아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가정과 학교는 아이가 그렇게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Sofia Sabel/imagebank.sweden.se


교육의 주체가 진정 아이가 되려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어린이라고 부족하다거나 어른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지 말고 아이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이를테면 어린 나이일지라도 사소한 것들부터 스스로 하게 하는 교육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넌 어리니까 못해’, ‘이건 위험하니까 안돼’, ‘넌 아직 어려서 이해를 못 하니까 어른들 말씀 들어’라는 말을 하며 부모나 교사가 대신해주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시도해 볼 수 있게끔 좀 더 쉬운 과제로 바꾼다거나 아이 눈높이에 맞게 환경을 바꿔줄 수 있다. 일례로 TV에 나온 스웨덴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급식을 먹은 뒤, 스스로 식판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걸 보고 '어린아이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저렇게나 많구나!'라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보호받아야 하는 소중한 아이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유치원은 아이들이 스스로 설거지를 할 수 있게끔 싱크대가 작고 낮았다.


아이가 이렇게 뭔가를 스스로 하려고 할 때, 부모와 교사는 서툴고 어설퍼보이는 아이들의 도전과 시도를 응원해 준다거나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사실 아이들이 하는 일이 못 미덥고 위험해 보이기 때문에 혹은 ‘어른인 내가 하면 훨씬 빠른데…’라는 생각 때문에 나 역시 교실에서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중간에 개입해서 도와준다거나 내가 나서서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발끈을 묶는 것, 샤워할 때 비누칠을 하는 것, 식탁에서 반찬을 집는 것, 외출복을 입는 것... 아이가 스스로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은 꽤나 많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을 부모와 교사가 대신해준다거나 개입할수록 아이의 주체성과 자율성의 성장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문화가 더 정착되었으면 한다. 교사나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말할 때, 그것이 어른과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그냥 넘어가지 않고 동등한 가치로 그 의사를 존중해 줄 수 있다. 이는 아이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과는 다르며 단지 아이의 의견을 성인의 의견처럼 존중하는 것이다. 교사나 부모가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설령 아이 본인의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런 존중의 경험은 차곡차곡 쌓여 아이가 스스로의 생각과 취향, 자립성을 갖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무상교육이 가지는 의미

우리에게 ‘무상’이라는 단어가 가장 큰 이슈였던 시기는 학생들의 무상급식을 두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때였다. 그 당시 세금으로 왜 모두에게 공짜밥을 줘야하냐는 반대 측과 아이들에게 밥 한 끼 차별 없이 주자는 찬성 측의 주장이 있었고 지금은 몇 지자체를 제외하곤 초, 중학교에서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그 당시 무상과 복지에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세금 퍼주기가 아니냐? 란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짜 좋아하다간 나라 곳간 거덜 난다.’라는 무시무시한 협박과 ‘과도한 복지를 하다가 그리스처럼 국가부도가 난다.’는 근거 없는 주장들이 난무했었다.


스웨덴은 현재 0학년(초등학교 입학 전, 1년간 하는 교육으로 Förskoleklass로 불림)부터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이 이뤄진다. 수업료, 급식비, 준비물, 체험학습비 등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 활동이 무상으로 이뤄져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우리처럼 사교육 시장이 거대하게 발달해있지 않고 학원을 필수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없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의 교육 때문에 가지게 되는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다.


스웨덴에서 무상교육이 가지는 의미는 세금을 흥청망청 쓰며 나라 곳간을 거덜 내는 게 아니라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교육권을 국가에서 뒷받침해준다는 의미이다. (다른 복지 제도와 사회적 요인들도 함께 작용한 결과지만) 그렇기에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 투쟁,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다. 자신과 가정의 경제적 조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있다면 하고 싶은 공부, 가고 싶은 학교를 갈 수 있다는 건 스웨덴 교육이 가지는 큰 장점이다. 자신의 미래와 진로를 생각하는 데 있어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을 덜 수 있다면 한 사람이 더 자유롭게 꿈꿀 수 있지 않을까?(스웨덴은 대학 무상 교육에 더해 대학생들에게 학생 보조금을 제공한다. '학생 보조금=학생 수당+저이율 대출'로 구성되어 있고 많은 스웨덴 대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생활비를 충당한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안정적인 사회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 무상교육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이다.


Photo by Ashton Bingham on Unsplash


스웨덴의 무상교육과 연관되는 또 다른 부분은 진로 변경의 유연성이다. 스웨덴은 대학과 대학원 교육이 무료이기 때문에 대학생들과 각 가정의 학비 부담이 없으며 그런 까닭에 학생 스스로 전공, 진로 변경을 선택하는데 기회비용이 적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전공이 자신과 맞지 않을 때, 자신의 전공으로 미래를 확신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설 때, 다른 분야를 공부해 보고 싶을 때 다른 학과에 재입학한다거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 전공 변경, 대학원 진학과 같은 방법 이외에도 성인 교육 기관에서 공부를 한 뒤, 다시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업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진로를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진로 변경을 하는데 위험부담이 적고 사회적으로도 구성원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생각하는 교육의 목적은?

스웨덴은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중요한 가치가 하나 있다. 그 가치는 바로 평등인데 평등의 위상은 스웨덴 사회에서 훼손되기 힘들 만큼 견고하고 스웨덴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평등의 가치를 소중하게 간직해왔다. 그런 이유로 스웨덴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할 때마다, 교육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평등이란 말은 자주 언급됐다. 인터뷰를 하고 스웨덴 교육을 알아보면서 내가 느꼈던 점은 스웨덴 사람들이 평등의 가치를 그저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교육 안에 이 가치를 녹여냈다는 것이었다.


우선 교육 제도를 살펴보면 무상교육을 통해 개인(가정)의 사회적, 경제적 차이에 관계없이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그들도 아직까지 지역별 교육 환경의 차이, 학교마다 존재하는 격차가 있기에 완전한 평등을 이뤘다고 볼 순 없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목표는 지금보다 좀 더 평등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에 있다. 두 번째는 과학고나 외고 같은 특수목적고가 존재하지 않고 수월성 교육(영재교육)에 대해서도 사회 전반적으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수한 아이를 조기에 발굴해서 집중 지원해주는 방식보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균등한 교육을 받고 고루 잘 자라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수목적고와 영재교육의 부재는 그들이 평등을 지켜내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에서도 평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첫째로는 교육 안에 들어있는 차별 금지, 더 나아가서는 다양성의 존중을 예로 들 수 있다. 교실에서 인종, 종교, 사상, 장애, 국적, 성적 지향 등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배경이나 정체성을 차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함으로써 아이들은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누구든 소중하다는 인권 감수성을 키우게 된다. 두 번째는 교사가 아이들을 서로 비교한다거나 특정 아이를 돋보이게 하는 교육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상벌 제도가 없는 교육을 말할 수 있다. 교사가 아이들 사이에서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우열을 나눌 수 있는 교육 방식(상장 수여, 벌점 제도, 아이들의 성적이나 능력을 비교하는 교사의 말하기 등)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들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도 '누구든 교실에서 평등하게 대접받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Photo by Myles Tan on Unsplash


나는 교육과 사회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 안에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설령 학교에서의 교육이 아닐지라도 아이들은 현실 사회의 모습을 관찰하며 그것을 알게 모르게 습득한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이는 다시금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관을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혹은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또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지금까지 우리가 교육을 단지 미래의 가능성을 위한 도구로만 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교육이 가지는 의미가 자아실현과 사회적 성공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합을 넘어선 집단과 사회에서까지 교육이란 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도구로만 여겨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는 교육이 가진 의미와 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크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우리 사회가 지켜가고 싶은 가치들을 만들어가고 이어나갈 수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교육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연결되는 입시와 성적, 경쟁과 학벌의 문제 그리고 지금의 교육 현실을 만든 우리 사회의 구조까지... 이 모든 일들은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일이기에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하며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사회는 그리고 나는 교육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바라봤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저희 매거진을 구독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국 교사, 스웨덴 교육을 마주하다.'위클리 매거진은 20회를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저희 글, 스웨덴 교육과 관련해 궁금한 점들을 질문해 주신 분들께는 추후 새로운 글을 통해 피드백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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