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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스웨덴 부부 Dec 05. 2017

스웨덴 대학원에서 공부해보니

스웨덴에서 다시 시작한 공부, 스웨덴 대학은 무엇이 다를까



- 스웨덴에서 다시 시작한 공부

현재 나는 스웨덴 룬드대학교 환경학과 지속가능과학(Environmental Studies and Sustainability Science) 석사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영문학과 정치외교학과 학사를 졸업한 후 4년간 직장생활을 했고, 퇴사 후 스웨덴으로 석사를 왔다. 처음에는 학사 전공과는 다른 새로운 공부를 대학 졸업 후 바로도 아니고 직장생활을 한참 한 후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내게 석사란 직장으로 따지자면 '경력직'과 같게 느껴졌다. 학사가 '신입'으로서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용인받는 단계라면 석사는 이미 어느 정도의 '경력', 즉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 자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자격요건에서 한참 모자라는 사람이었는데 이는 전공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공부에 대한 감각 또한 매우 둔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2년간 함께 공부할 36명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에야 그런 불안함과 긴장감이 조금 가셨다. 그건 아마도 내 기준에서 봤을 때 나와 같은 엉뚱한 경력직 학생(^^)들이 한둘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 서로 '다른' 친구들에게 배우는 것들

우리 과 37명은 총 15국에서 왔다. 전공 또한 정말 다양하다. 철학과, 경영학과부터 생명공학, 생물학과까지. 인문, 사회, 순수과학과 공학 계열의 각기 다른 학사 전공을 가지고 지속가능성을 공부하러 온 22살에서 34살까지 다양한 나이 때의 친구들. 처음엔 예측할 수 없는 학사 전공과 경력을 가진 우리 과 친구들, 이 조합은 무엇일까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또 보낼 수밖에 없고) 함께 공부를 해가면서 이렇게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환경문제와 정책,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과거와 달리 최근 환경문제들은 어떤 특정 국가에 한정되어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 대기오염의 원인을 중국에서 찾듯이(NASA 연구에 따르면 5,6월 중국의 영향은 34%라고),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르는 메콩강의 수질오염 문제를 그들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하듯이 말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든 나라들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성을 이해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학과에는 강의보다 토론과 팀플이 훨씬 많은데, 이렇게 토론과 팀플을 할 때면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경력을 가진 각자의 '다름'이 비로소 빛을 발한다. 문과생과 이과생들은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춰 보는 부분이 완전히 다르고 또 각자의 나라에서 살며 보아온 각기 다른 예시들은 내가 당연히 '옳다'고 믿었던 것이 얼마나 좁은 시각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친구들을 통해 수업에서는 다루지 않는 전 세계 구석구석, 다양한 사례들을 배우게 되고 더불어 그것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강의란 결국 강의를 하는 교수가 관심 있는 분야, 관심 있는 케이스들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다루기 마련인데 이렇게 친구들 모두가 서로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팀플과 토론을 통해 강의를 넘어서는 +α를 배우게 된다.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는 전세계 (나름) 전문가들이 모인 우리 학과의 모습



- 스웨덴 대학에는 위아래가 없다!?

사실 스웨덴은 사회 전체적으로 '위아래'가 없다. 이는 대학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뭐 당연하지만 학생과 학생 사이에도 선배, 후배, 언니, 동생 같은 개념은 없다. 내가 워낙에 위계질서가 강한 집단에서만 살아와서인지 처음엔 이런 부분이 굉장히 어색했다. (존경하는) '교수님'이어야 할 것만 같은데 여기서는 그저 'Ann', 'Sara', 'Kim'... 이름뿐이다. 이제는 대학뿐 아니라 초-고등학교도 선생님에게 이름을 부른다는 '위아래' 없는 스웨덴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어찌나 어색했는지 (또 좋았는지^^). 이런 문화의 장점은 단순히 교수를 친구처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는 문화적 차이에서 나오는 일종의 짜릿함에만 있지는 않다. 학생과 교수는 서로에게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열려 있고 동시에 서로에게 일정 정도의 예의를 지켜야 하는 동등한 관계가 된다. 우리 과의 경우 3층 강의실 바로 아래층인 2층과 1층에 교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교수가 특별히 자기 방의 문을 잠가놓지 않은 경우엔 누구든, 언제든 이야기할 것이 있으면 연구실을 방문할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은 다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거나 바비큐를 하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한국 교수들의 갑질, 이 곳에서 박사과정 중인 친구들에게 듣는 실제 한국에서 대학원 생활 중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을의 수난사는 모두 강한 '위계질서' 문화와 대학 내의 '갑을관계'에서 비롯된다. 내가 본 스웨덴 대학원의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은 없다. 반대로 우리나라 교수들의 권위를 떠올리며'스웨덴에서 교수는 극한 직업인 것 같아...'라는 말은 자주 듣게 되지만 말이다.


(교수님들과의 추억들. 날이 좋을 때면 함께 잔디밭에 나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왼쪽), 스웨덴 휴일인 Lucia엔 우리를 위해 스웨덴 전통의상을 입고 노래를 불러주었다.(오른쪽)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 교육의 주체는 학생이라는 믿음,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난 교육 인터뷰들을 통해 여러 번 언급된 스웨덴 교육의 철칙, '교육의 주체는 학생'이라는 믿음은 대학에서도 여전하다. 입학생들은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학생회 임원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각 학과를 찾아다니며 소규모의 설명회를 가진다. 이들은 룬드대학교의 학생이 가질 수 있는 투표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와 주목해서 봐야 할 교칙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내가 다니는 룬드대학교에서는 대학의 모든 운영과 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다. 권리와 교칙은 분명히 명시되어 있으며 명시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열심히 홍보된다. 우리 과의 경우에도 학생 대표를 우리가 직접 뽑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모아 학생 대표에게 이야기하면 대표는 이를 교수진과 학교 쪽에 전달하거나 회의를 진행한다.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며 정말 놀랐던 건 이 곳 친구들(특히 스웨덴, 덴마크, 독일 출신 친구들)은 '교칙'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교칙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안다. 소소한 경우의 예를 들면 교칙상 교수가 학생의 과제에 대해 개별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 기한이 15일인데 이 기한이 넘어가면 학생들은 메일을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 이야기한다. 또한 교수가 주말 동안 할 과제를 내주면 학생들은 어김없이 손을 들고 항의한다(스웨덴 대학에서 주말은 쉬는 날이다). 우리 학과의 경우 내후년 학과가 어느 학부에 편입될지에 대해 논의할 때에도 사실은 관련이 없는 현 재학생들을 모두 불러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무슨 교칙까지 따지며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며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실제로 주변에서 많이들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권리에는 '크고 작다'는 구별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제로 소위 '작은' 권리를 똑똑하게 찾는데 익숙해져야 어떤 상황에서든 내 목소리를 내는데 어색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친구들의 이런 똑똑함을 배우고자 한다.



- '열정적인' 토론과 '엄격한' 원칙

앞서 말했듯 스웨덴 대학원에는 토론이 정말 많다. 이곳에서 토론은 일종의 미덕이다.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토론 시간도 많지만 강의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적인 토론이 훨씬 많다. 한국에서처럼 팀플을 할 때에 토론 없이 '네 부분', '내 부분' 나누고 끝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팀플 주제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한 후에 모두가 어느 정도 이 주제에 대해 이해했고 또 논의점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야 각자 쓸 부분을 나눌 수 있었다. 적어도 내 친구들은 팀이 함께 내는 과제는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오로지 열정적인 토론을 통해 서로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제출한 과제는 반장 짜리든 스무 장 짜리든 'Urkund'란 프로그램을 통해 표절과 출처 표시 등이 철저하게 검토된다. 이 프로그램은 한 문장에서 30% 이상이 타 문서와 동일하다고 인식했을 때 이를 표절로 판단하며 출처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에도 표절로 간주한다.


Urkund는 어떤 출처에서 몇 %의 내용이 동일한지 추적한다 (출처: http://plagiat.htw-berlin.de)


스웨덴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저작권과 출처 표시에 대한 엄격한 개념을 배운다. 이들에게 표절이란 아주 민감한 문제이며 이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한 원칙이 적용된다. 누군가 지속적으로 표절을 한 경우 이는 학과 수준에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학교 징계위원회로 넘어가게 되고 논문을 쓸 수 있는 자질 또한 함께 의심받게 된다. 이런 학문적 엄격함은 결국 연구의 독창성을 도모하고 논문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대학의 목적과 부합하는 것이다. 더불어 스웨덴 사람들의 원칙을 고수하는 삶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스웨덴의 대학교육시스템, 또 공교육 시스템이 모든 면에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은 내가 대학에서 공부하며 느낀 것들, 개인적으로 만족했던 부분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이런 것들을 소개한 이유는 이 중 분명 스웨덴 대학만의 독특한 장점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원)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대학들이 가지는 그들만의 특별한 장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교육시스템이 가지는 장점들은 스웨덴 사회의 그것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로웠다. 스웨덴 사람들의 끊임없는 토론을 통한 합의 문화, 평등을 강조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문화, 철저히 지켜지는 워크 라이프 밸런스 그리고 원칙을 준수하는 삶의 방식 등이 대학 시스템에도 여실히 녹아있다. 사실 교수, 학생을 통틀어 스웨덴 사람들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학과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이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구성원이 누구든 간에 그들이 가진 시스템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없도록 어느 정도의 견고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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