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게 넘치는 것보다 낫다
요리가 백종원 씨가 장사가 안 되는 식당을 살려내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 번은 멸치 육수가 특징인 국숫집이 나왔는데, 백씨는 육수와 관련해서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한 가지는 멸치를 너무 많이 써서 원가가 높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멸치의 반을 쓰고도 더 시원한 국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백씨는 믿지 못하는 주인을 위해 대결을 신청했고, 그는 멸치를 반만 쓴 자신의 레시피로 국물을 만들어 맛 평가단으로부터 승리를 따낸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요즘의 교육이 오버랩됐다.
월화수목금금금 학원학원학원
아영이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학원이 한가득이다. 월수금은 수학 학원, 화목토는 영어학원, 토요일은 과학학원과 음악학원, 토/일요일은 국어학원을 간다. 주중 5일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주말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공부를 절반밖에 안 한 거나 다름없다. 시간을 알뜰히 사용하는 측면에서, 아영이가 주말까지 공부를 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주중 : 하루 4시간 X 5일 = 20시간
주말 : 하루 10시간 X 2일 = 20시간
주중과 주말은 하루 동안 확보할 수 있는 공부 시간의 양이 다르다. 주중은 방과 후에 하루 4시간 정도를 확보할 수 있지만, 주말에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 날짜로 보면 일주일 중 5일을 공부한 것이지만, 공부량으로 보면, 50% 공부를 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아영이의 학습계획표에는 중요한 것이 몇 가지 빠져 있다.
학습의 의미
학은 <배울 학>이고 습은 <익힐 습>이다. 공부를 할 때는 배우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익히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부가 됐든 운동이 됐든 요리가 됐든 모두 똑같다. 하는 법을 배웠으면 실습을 해야 한다. 몸에 익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라면도 끓이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수학 문제도 하나의 공식을 배운 후, 여러 문제를 풀다 보면 공식의 활용법이 익혀진다.
우리가 공부를 생각할 때, 흔히 <배울 학>에만 초점을 둔다. 우리 애는 하루 종일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하는데 왜 성적이 안 오르냐며 울상인 부모가 있다. 그래서 이 아이는 하루에 얼마나 익히는 시간을 두었는가?
익히는 시간 없이 배우는 시간만 고집하는 부모 밑에 성적이 높은 학생이 없다. 공부를 재밌어하는 학생도 없다. 성적이 안 나오면 안 나올수록 학원 개수가 더 많아지니,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
학생이 스스로 선택한 학원인가
아영이는 자신의 학원을 자발적으로 혹은 주도적으로 선택했을까? 자기주도학습이 완성된 아이들은 대체로 상위권의 성적을 받아온다. 자기주도학습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학습 도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상위권 학생들은 무턱대고 학원 수를 늘리지 않는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재학생으로는 유일하게 만점을 받은 운암고등학교 3학년 강현규(18) 군은 학원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학원을 다닌 것은 고교 1학년 후반부터 2학년 초반까지 화학Ⅱ 한 과목을 배운 것이 전부라고 밝혔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강군뿐만 아니라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살펴보면, 여러 학원을 다니는 학생도 있지만, 한 학원만 진득하니 다니는 학생도 있고, 학원을 다니지 않고 야간 자율 학습만 하는 학생도 있다.
공부를 요리해야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연예인의 냉장고를 관찰한 후,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 사용해서 요리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이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세프들이 만들어 내는 요리는 천차만별이다. 아이디어의 싸움이고 창의력의 싸움이다.
공부도 똑같다. 같은 문제집을 풀고도 어떤 학생은 1등급, 어떤 학생은 5등급을 받는다. 같은 학교 수업을 듣고 어떤 학생은 3등급, 어떤 학생은 6등급이다. 학원, 과외, 인강 모두 마찬가지다. 공부는 누구에게 수업을 들었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수업을 들었냐가 더 중요하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특정 학원을 못 다녔기 때문이 아니다. 특정 학원을 꼭 다녀야만 성적이 오른다면, 그 학원을 꼭 등록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학원이 해결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해결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공부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요리를 잘 하려면, 요리를 배워야 한다. 짜장면을 가장 잘 만드는 전국 최고의 주방장에게 가서 짜장면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짜장면이 만들어지는 원리, 레시피를 이해해야 한다. 짜장면을 만드는 방법, 레시피를 알고 난 후에 짜장면 최고수를 찾아 나서도 늦지 않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의 원리, 학습법을 먼저 이해하고 익혀야 한다. 같은 문제집을 풀었는데 왜 이 아이는 5등급이 저 아이는 1등급인가?
현수는 같은 문제집을 최소 3번을 푼다. 1 회독할 때는 개념 이해 위주로 공부를 하고 2 회독할 때는 문제 풀이, 3 회독할 때는 틀렸던 문제 위주로 꼼꼼히 복습을 한다. 따라서 문제집을 풀 때 책에 낙서를 하지 않는다. 1 회독부터 책에 식을 쓰고 흔적을 남기면, 2 회독과 3 회독을 할 때 계속 눈이 그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수희는 한 문제집은 한 번만 푼다. 문제는 항상 책에다 푼다. 풀다가 잘 안 풀리면 답지를 펴고 이해를 한다. 완벽하게 풀어 맞았든 답지를 참고해 맞았든 모두 동그라미를 친다.
인강을 듣는다. 현수는 1:1 과외를 하는 것처럼, 인강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도 하고, 모르는 부분은 반복하며 천천히 곱씹으며 듣는다. 수희는 드라마 보듯 팔짱을 끼고 화면을 응시한다. 어떨 땐 2배속으로 인강을 듣는다. 수업을 이해한 것보다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학원이든 과외든 인강이든, 학습 도구를 선택하고 사용할 때는 우리 아이에게 이 도구가 필요한가를 우선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진짜 핵심은 이 학습 도구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요리는 대신해서 먹일 수 있지만, 공부는 대신해서 점수를 줄 수 없다. 학생이 스스로 세프가 되어야 한다. 세프에게 재료를 챙겨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프 스스로 다양한 요리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요리법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가
공부 세프가 되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명심해야할 핵심 질문이 될 것이다.
이상 공부코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윤태황은 <공부 사춘기>, <잠들어 있는 공부 능력을 깨워라>, <고3 수능 100점 올리기>의 저자이며, 에듀플렉스 교육개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코치협회 평생회원이다. 유웨이중앙교육 입시컨설턴트, 공덕초등학교 운영위원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