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다했는데 결과는 왜 차이가 날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옛 어른들은 현명했다. 어떻게 하나를 보고 보고 열을 알게 되었을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무의식 중에 가치 판단이 들어 있다. 정신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결과를 낳는다. 똑같이 숙제를 '다'했는데, 성적은 왜 그리도 차이가 날까?
숙제 다했어요
같은 숙제를 하는데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범위 안에 문제'만' 풀고는 숙제를 다 했다고 한다. 채점은 안 하니?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한 후에 숙제를 다했다고 한다. 틀린 문제 오답 정리는 안 해?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한 후에 오답정리까지 하고서 숙제를 다 했다고 한다. 그래, 그게 숙제를 다한 거야.
문제를 왜 풀까? 문제를 푸는 이유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아는 문제를 천날만날 공부해봐야 성적은 그대로다. 모르는 문제를 골라내서 보충학습을 할 때 성적은 비로소 올라간다.
'숙제 다했어요' 한 마디에 학생들 성적이 그려진다. 똑같이 숙제를 다 하고도 시험 성적이 천차만별인 이유다. 비단 숙제만 그럴까? 세상 많은 것들이 같은 이치를 품고 있다.
빨래를 다했다
아내를 돕는다고 남편이 빨래를 한다. 아내는 울상이다. 세탁기 버튼만 누르면 그걸로 빨래가 끝난 줄 아는 거다. 어릴 때 숙제로 문제'만' 풀어갔을 양반이다.
빨래를 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 일단 빨래를 분류해야 한다. 새로 산 검정 옷은 다른 옷을 물들이기 쉽다. 예민한 사람들은 속옷이나 수건은 손빨래한다. 양말과 수건을 함께 빠는 것을 질색하는 사람도 있다. 분류가 끝나면 비로소 세탁기에 넣는다. 넣을 때도 그냥 안 넘는다. 어떤 옷은 뒤집어 넣고 어떤 옷은 망에 넣어 세탁기를 돌린다. 한 가지 빼먹을 뻔했다. 주머니들을 뒤져서 돈이 들어 있나 체크도 해야 한다.
세제도 넣어야 한다. 섬유린스도 넣어야 한다. 물 온도도 맞춰야 한다. 헹굼을 한 번 더 해줄지도 봐야지. 그런데 그냥 버튼 한 번만 띡! 누르면 빨래 끝이라고 누가 그랬나?
'빨래 다했다'의 가장 많은 시간이 빨래 너는데 쓰인다. 건조기능 좋아하다가 옷이 제대로 쭈그러들어봐야 정신을 차릴까? 빨래는 탈탈 털어서 곱게 곱게 널어야 한다. 군대에서 다 해봤을 텐데 벌써 그걸 잊었나?
여기서 빨래 다했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 중수다. 빨래의 하이라이트는 다된 옷들을 개는 데 있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양말은 양말 통으로, 속옷은 속옷 서랍에, 남방은 다리미로 다림질을!
비로소 우리는 '빨래를 다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밥 다먹었어요
먹기만 하면 끝인가? 진정한 '밥 다먹었어요'의 의미는 설거지에 있다. '한끼 줍쇼'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출연진들이 밥을 얻어먹고는 꼭 하는 것이 있다. 설거지. 설거지를 하면서 프로그램은 마무리가 된다.
밥 한 끼 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밥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밥을 차려야 한다. 밥을 해야 한다. 밥하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장을 봐야 한다. 시장 가서 이것 사고 저것 사고... 사는 것도 일이다. 어느 게 싱싱한지, 어느 게 저렴한지, 생각한 재료가 없으면 어떤 재료로 대체해야 할지. 들고 와야지, 다듬어야지...
밥 한 끼 먹기 위해서 장보고 요리하면 그제야 밥을 먹게 된다. '밥 다 먹었어요'를 말하기 위해 우리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 밥 먹는 데는 10분인데 장보고 다듬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데 먹는 시간의 몇 배는 들어간다. 그래서 그냥 사 먹는다. '밥을 사 먹는다'는 이토록 많은 것을 내포한다. 장을 안 봐도 되고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먹기만 하면 된다. 차리는 것도 치우는 것도 모두 식당의 몫이다. 지불하는 밥값에는 설거지 비용까지 포함이 되는 셈이다.
청소를 한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청소기만 돌리면 청소가 끝날까? 식기세척기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초벌로 수세미질해줘야 깨끗해지듯, 아무리 청소기 돌려도 물걸레로 닦아야 한다. 집구석 이곳저곳 닦아보면 묵은 때가 나온다. 요즘은 만능 물티슈가 인기다. 매직 블럭도 써야 한다.
이러면 청소가 끝인가? 청소 후에는 뭘 해야 하나? 걸레도 빨아야 하고, 청소기 필터도 청소해야 한다. 오죽하면 청소기 광고에서 먼지통을 원터치로 쉽게 비울 수 있는 것까지 광고할까? 청소기 돌리는 시간만큼 청소기 필터와 먼지통을 씻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청소의 목적이 깨끗한 환경이라면, 청소와 더불어 환기도 해야 한다.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공기청정기를 돌려도, 집 안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그대로다.
재활용 분리수거는 어떤가? 한국만큼 분리수거가 까다로운 나라가 없다. 종이, 비닐, 캔, 플라스틱, 병... 병도 작은 병, 큰 병, 규격 병, 잡병... 요즘은 음식 묻은 스티로폼, 깨끗한 스티로폼 구분까지 해야 한다.
청소도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으면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우리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 우리가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 혹시 '다 했어요'를 바라보는 삶의 자세에 있지 않을까? 선생님이 요구한 기준과 학생의 기준이 다르다. 회사가 요구하는 기준과 직원의 기준이 다르다. 아내의 기준과 남편의 기준이 다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당연한 말이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 그 분야에 있어서 '다했다'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수준을 요구하는지 알아야 한다. 메타인지(meta-cognition)적으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유체 이탈하여 자신을 제 3자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스스로에게 조언해야 한다. 혹자는 이것을 '발코니에서 바라보기'라고 한다. 무도회장 발코니에 앉아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듯,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수업 제대로 들었어요
학생 한 명이 오늘은 수업 시간에 자지 않았다며 신나게 말을 한다. 수업을 제대로 듣는다는 건, 수업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들었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수업 전에 미리 예습을 하면서 본인이 수업 시간에 무엇을 묻고 싶은지 추려봐야 한다. 수업 시간에는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선생님의 강조점이 어떻게 다른지, 선생님은 어떤 것을 추가로 강조하시는지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 시간에 잠'도' 자지 않아야 한다.
수업이 끝나면, 풀리지 않았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선생님께 질문을 해야 한다. 단,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 질문을 더러 싫어하는 선생님도 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면, 이미 수업시간에 설명해줬던 것, 책에 나와 있는 것을 학생이 질문할 때, 선생님은 싫어한다. 질문을 잘 하려면, 예습도 복습도 철저히 해야 한다.
수업을 정말 제대로 들으려면, 수업 전에도 수업 후에도 학생은 바지런해야 한다.
'다했다'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과제 다했어요'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다했어요'도 똑같다. 학교 생활을 하든, 사회생활을 하든, 누군가는 나에게 미션을 주고 나는 그것을 수행한다. 그 기준을 바라보는 자세. 기준에 대한 의미 해석. 똑같이 숙제를 하고도 성적이 다른 이유요, 똑같이 프로젝트를 하고도 결과가 다른 이유다.
언제부터 나는 일을 엉성하게 하는 습관이 들었을까, 언제부터 저 친구는 일을 완벽하게 하는 습관이 들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 숙제하던 습관을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부터 숙제를 제대로 하는 힘을 키워주고자 노력해 본다.
숙제 다했어요!
:-)
글쓴이 윤태황은 <공부 사춘기>, <잠들어 있는 공부 능력을 깨워라>, <고3 수능 100점 올리기>의 저자이며, 에듀플렉스 교육개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코치협회 평생회원이다. 유웨이중앙교육 입시컨설턴트, 공덕초등학교 운영위원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