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자 vs 가짜 부자
돈을 많이 벌고 싶을 때가 있었다. 무엇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고민하고 찾아 나섰다. 열심히 일 하다 보니, 열심히 한다고 돈이 벌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디어가 있어야 했다. 끊임없는 열정도 있어야 했다. 성실해야 했고 인간관계를 잘 맺어야 했다. 분석해야 했고 정보를 수집해야 했고, 때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남을 따라갔을 때 돈을 더 잘 버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돈의 노예가 되어 갔다.
강남의 아파트 34평이나 해운대의 아파트 34평이나 중소도시의 아파트 34평이나 자재는 거의 비슷하다. 투자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왜 거기서 거기인지를. 재건축 조합에서 아파트를 짓든, 건설사가 짓든 건설비용은 도긴개긴이다. 평당 몇 십만 원 차이 난다. 그것도 대부분 구조적인 부분이 아닌, 인테리어적인 요소다. 다른 말로 하면, 입주할 때 몇 천만 원 들여서 인테리어 하면 다 해결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그토록 집값의 차이를 불러오는가? 아파트 재질의 고급스러움이 아니라, 지대(땅값)의 차이가 엄청난 집값의 차이를 불러온다. 금싸라기 땅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강남 산다고 생활수준이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물론 씀씀이가 더 크니 집도 강남이고 차도 더 좋은 차 탈 수는 있겠으나, 강남에도 봉급 생활자 많고 공무원도 많다. 공무원 급여가 많아야 얼마나 많겠는가. 본인이 돈이 많아서 강남에 입성한 것이 아니라 부모 세대, 할아버지 세대부터 강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벌어서 강남 집을 사야 했다면, 아마 못 샀을 것’이라고 말한다. 15억, 20억 하는 아파트가 아무나 살 수 있는 집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열심히 돈을 모아 강남에 집을 산다고 하자. 그럼 부자인가?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모아 겨우 강남에 집을 마련했더니, 차도 바꿔야 하고 애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고 좋은 것도 먹어야 하고... 아...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며칠 전 서대문 안산에 다녀왔다.(경기도 안산이 아니고 산 이름 ‘안산’이다.) 안산 자락에 있는 성원 상떼빌이 왜 비쌀까, 왜 고급 주택을 저기에 지어났을까 의아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방에 의문이 풀렸다. 산책로가 대단했다. 독립문 쪽에서도 안산을 올라갈 수 있는데, 독립문과 광화문은 차로 불과 10분 거리밖에 안 된다. 안산을 다녀온 날, 안산 주변 아파트를 모두 클릭해 보았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좋아지고 가까이하고 싶어 진다. 내 집 뒷마당이 안산이라면 기분이 참 좋아질 일이다. 숲세권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연이 주는 가치다.
돈을 좇다 보니 돈을 좇는 사람들의 기준에 내 눈높이를 맞추게 되었다. 강남 아파트가 좋다고 하니 강남 아파트가 최고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잠깐 눈을 돌려보고,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보니, 아... 마냥 돈을 좇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밍된 목적에 내가 맞추어졌나?’라고 생각하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한 번씩 테두리, 소속된 그룹에서 나와 주변을 보고 나 자신을 봐야 한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를 관찰해야 한다. 메타인지라고도 하고, 발코니에 서서 내려 본다고도 하고, 우물 안이 아니라 우물 밖에서 세상을 보라고도한다. 달을 보라고 했더니 가리키는 손가락을 본다고도 한다.
강남은 아마 살기 좋은 곳이 맞을 것이다. 인프라도 잘 되어 있고, 교육도 교통도 상업도 빠짐없이 잘 갖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남만 꼭 그런 니즈(needs)를 충족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강남 말고도 나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도시가, 마을이, 아파트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곳에서 진정한 부자로 살아야 한다.
진정한 부자란 무엇인가?
돈이 많다고 부자가 아니란 건 확실해졌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부자이고 아니고의 기준은 오롯이 본인 자신에게 있다. 10억이면 부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50억은 있어야 부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요즘 시대는 100억은 넘어야 부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 말이 정답일까? 결국은 다수가 이 정도는 갖추어야 부자야 라고 말하는 그 기준을 맞춰 살기 위해 또 하루하루 아등바등한다. 그러니 결국 나는 내 기준에서 부자가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 준 사다리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을 뿐이다. 죽을 때까지 끝은 없다. 그 얼마나 끔찍한 사다리인가.
인맥 부자는 돈 걱정 없이 살아간다. 친구가 많으니, 아파도 의사 친구가 돌봐주고, 약사 친구가 약 챙겨주고 한의사 친구가 침놓아준다. 식당 하는 친구가 반찬 챙겨주고 돈 많은 친구가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한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자신의 현실에 만족할 줄 안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처해진 환경도 매우 만족스럽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도 이쁘다. 비가 오는 날은 미세먼지 씻겨나가서 기분이 좋고, 햇볕이 쨍쨍인 날은 광합성하며 비타민D를 보충할 수 있어서 좋다. 자녀가 90점을 받아오면 90점이나 받아서 좋아하고, 자녀가 지방대학에 가도 대학 가서 열심히 하려는 자녀가 기특하고, 회사 생활하며 적은 봉급을 받아와도 자립하려는 자녀가 대견해 보인다.
지식 부자는 어떤가? 교수님들, 박사님들,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등 모두 지식으로 먹고 산다. 확실히 지식 부자는 당장 부자는 아니더라도 미래의 부가 개런티 된다. 앞으로 돈을 잘 벌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니, 전문직에게는 몇 억씩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지식 부자들도 일반인들이 모르는 고충을 겪는다.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지식을 쌓고 연구를 하고자 노력한다. 돈을 많이 벌려고 끝없이 돈을 좇는 사람, 지식 부자가 되려고 끊임없이 지식을 쫓는 사람. 오죽하면 일반인들 중에서도 자신의 지식이 부족한 건 아닐까 의심하며 끊임없이 지식을 쌓는다 하여 ‘지식 중독’이라는 말까지 생겨나지 않았는가.
무엇이 진정한 부자인가. 결국 부자이고 아니고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남이 부자라고 인정해줘도 만족감은 그리 크지 않는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부자 기준에 자신이 부합해도 그 만족감은 세상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이다. 1000억 부자가 망하여 10억을 가지게 되었다면 우울함 그 자체일 것이다.
1000만 원으로 시작해 10억을 만들었다면 만족감이나 행복감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같은 10억을 가지고도, 같은 부자이고도 스스로 느끼는 감정은 천차만별인 것이다.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벌려고,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돈만 좇다 보니 친구도, 가족도, 사랑도 모두 멀리 감치 가버렸다. 돈만 남고 나머지는 다 훌훌 떠나버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부자. 자신을 돌아보자. 나는 어떤 부자이고 싶었던 걸까? 그 기준이 여전히 물질에만 머물러 있는가? 나는 그 돈을 가지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돈 자체가 기준인 삶보다 그 돈을 가지고 이루고 싶은 삶, 그 삶을 쫓아가야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음을 느껴야 한다.
마음이 10억 인 부자, 인품이 100억 인 부자가 되고프다. 이 또한 쉽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