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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Jun 13. 2020

없는 것

어느 순간 곁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

지금의 나의 모습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변덕이 심한 것인지, 지겨움을 자주 느끼는 것인지 기억을 되돌려 보면 특정한 주기를 기준으로 삶의 형태가 자주 변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그러했고 나만의 공간인 집도 큰 변화가 있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일까. 요즘은 지금의 나의 모습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것은 아닌지 싶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동안 조금씩 사라진 것들이 생겼다. 원래 외모를 가꾸는데 들어가는 화장품이나 헤어 제품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일찍이 기초 화장품 한 가지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불편함 없이 기미나 주름 없이 잘 살고 있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과 노력, 돈을 들이지 않은 것에 비하며 적당하게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머리를 감는데 샴푸 향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두피가 민감하고 머리카락은 심한 지성이라 어릴 때부터 린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비누, 식초, 레몬 등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어른이 되고 바쁘다는 이유 때문에 다시 샴푸를 사용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속이 안 좋을 정도로 샴푸 향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샴푸 바를 찾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예전처럼 일반 비누에 식초의 도움을 받아 머리 감기를 해결하고 있다.


설거지 세제도 없애고 싶어 베이킹 소다부터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봤는데 계면활성 화제에 너무 익숙해졌는지 조금씩 불편함을 느끼면서 세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세제 사용을 억제하고 싶어서 설거지 바를 찾고, 천연 수세미를 찾았다. 몇 달이 지났지만 천연 수세미는 튼튼하기만 하고 설거지 바도 편하기만 하다. 고무장갑 없이 설거지하던 습관이 벤 나에겐 비누(설거지 바) 사용이 좋기만 하다. 손이 거칠어지는 느낌도 없이 그때그때 조금씩 내가 먹은 그릇 몇 가지만 정리하면 되니깐.


이렇게 저렇게 보내다 보니 집에 플라스틱 통이 사라졌다. 화장실과 싱크대 위에는 천연 수세미로 자른 비누 받침대와 그 쓰임을 달리하는 비누들만 놓여 있다. 마음 같아서는 치약과 세탁세제도 없애고 싶은데 아직 대체되는 그 무엇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섬유유연제를 사용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세탁을 하는 선에서 절충하고 있는 듯하다.


없는 것이 많아졌지만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주변도 정리되고 시간과 행동도 정돈된 느낌이다. 꾸미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정리하고 치우는데도 많은 시간이 단축됐다. 무엇인가를 덧붙이고 좋은 것을 바르지 않아도 몸은 자연적으로 재생되고 유지되는 항상성을 보여준다. 오히려 화학제품이 몸을 멍들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사용하는 제품을 없애거나 바꾸고부터는 마음도 차분해진 것 같다. 그 무엇인가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 내 몸을 괴롭히지 않고 있다는 느낌, 단순해진 일상이 삶을 정돈시켜 준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가 단축된 것뿐인데 그것 때문에 시간이 풍족해지고 그 사이 나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번잡스럽게 이것저것 하지 않아도 되기에 행동 패턴은 단순해졌고 그것이 더 큰 만족감으로 와 닿는다.  불필요한 물건이 필요 없듯 행동 또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행동 하나를 정리하면 그 행동에 들어가는 의식과 마음 등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을 수정하고 정돈하면서 보내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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