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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Jun 14. 2020

들여다보는 몸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의 아우성

이른 아침부터 병원을 찾았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붐비던 병원은 조용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무렵, 몸에 이상한 신호가 포착됐다. 이유 없이 등이 아프고 그 통증에 무의식적으로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새로운 팀을 만드는 과도기여서 그 일을 혼자 떠안아야 했기에 휴가나 반차 등은 엄두도 못 냈다. 실질적인 직책과 달리 동료나 바로 위 상사 없이 오롯이 혼자 일해야 했던 그 반년의 시간은 최악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앓던 몸은 완전히 고장 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지금도 조금만 내 몸에 소홀하기만 하면 허리에 통증이 온다. 찌릿하고 저리는 통증이 심해 어떨 때는 일어서거나 굽히거나 걷는 게 불가능해질 때도 있다. 올 초에 삐끗한 허리로 힘들어했다. 한방치료와 추나치료를 열심히 하면서 몸을 돌보는 것도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잠시 잠깐 몸에 소홀하면 바로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몸이 아프다고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몸은 그렇게 내 일상을 관통한다.

매일 혼자서 가벼운 스트레칭과 근육 운동을 하고 스튜디오를 찾아 느린 움직임과 바를 하는 데도 왜 아픈 걸까. 자세가 안 좋아서, 집에서 게으름을 피워서, 몸을 급하게 움직여서 등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나의 마음과 정신이 어떤 태도 인가와 결부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날은 허리 통증도 덜 하다. 일찍 일어나 차분하게 호흡과 명상을 하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분주한 하루를 보내면 그런 날은 몸 상태가 꽤 좋다.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는 게 자칫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몸을 정돈하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규칙적으로 적절하게 움직이는 하루를 말한다. 마음이 너무 느슨해져 몸까지 나태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몸의 균형이 흐트러진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드러눕는 것도 엉망 창이 되면서 하루의 흐름이 무너져 몸의 균형도 깨져 버리는 것이다.


몸을 통해 나의 태도를 보살피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습관을 가지려 한다. 마음의 시간표에 따라 차분하게 보내려 하는 것이다. 행동을 옮길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급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급한 마음이 앞서다 보면 몸이 먼저 나가게 되고 다치거나 아프게 되기 때문이다. 몸을 가꾼다는 것은 외양을 이쁘게 만드는 미용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태도인 것 같다. 무엇인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으로 차분히 들여다보고 아끼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갖다 보면 일상도 평온해지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아진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자연스러운 믿음이 됐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스피노자가 말한 그 시간 이후로 나의 본성을 파악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은 마음이 되었다. 몸으로 경험하며 몸으로 세계를 본다(퐁티)는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몸을 돌보는 것은 나의 태도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된다.


추나 치료까지 받고 병원 문을 나서면서 한껏 편안해지고 맑아진 내 몸을 느꼈다. 세상 밖이 더 환하게 보이고 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분도 좋아지고 맛있는 것도 떠오르고 '집에 돌아가면 청소를 할까, 책을 읽을까, 아니 아침에 커피를 못 마셨으니 맛있게 커피부터 한잔 마시자'라는 즐거운 생각이 들었다.


쾌적하게 느껴지다가도 한 순간에 불편해지기도 하는 몸, 그런 나의 몸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이게 인생이지 않을지 그런 생각이 든다. 아주 즐거운 일들이 넘쳐나가도 지루해지기도 하고, 일이 잘 풀리다가도 답답한 순간이 찾아오듯 몸도 그런 것 같다. 매일 꾸준하게 관리하는데 '왜? 안 낫지, 계속 아픈 이유가 뭐지,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런 투덜과 같은 물음은 의미가 없는 게 몸인 듯하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오늘보다는 더 나아지는 시간을 기대하지만 반드시 더 나아진다는 보증은 아무도 해 줄 수 없다. 몸을 통해 우리는 그런 태도를 배운다. 보증은 없지만 가능성은 있기에 매일매일 소중하게 내 몸을 돌본다. 그러다 보면 지금 보다는 조금 더 좋지 않을지,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금의 나-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또한 충분하지 않을지. 이러한 과정을 느끼고 준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지.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내 몸을 돌본다.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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