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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Jun 16. 2020

살아가는 법

무엇이 견디도록 하는가?

"왜, 사냐고 묻거든 웃지요"

흔히 듣던 말.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오고 갔던 이유는 뭘까? 

왜, 사냐는 것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존재라는 생명체로 그냥 태어나 버렸다. 거기엔 나의 의지도 의식도 없다. 그렇기에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묻는 다면 딱히 대답할 말도 이유도 없다. 


우리는 '왜'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이 고민에는 경제적인 이유와 조건부터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코로나 19로 경제적인 이유가 존재보다 더 앞서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죽음보다 굶주림의 죽음이 더 두렵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런 공포 속에서도 인종 차별에 반대에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 이런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고 있는 지금, 사적인 공간으로 돌아가 하나의 단편만 본다면 또 어떤 삶의 모습이 발견될까.


거의 6개월이 흘러버린 지금, 코로나 19 이후로는 모든 지출이 막혔다. 수입이 없으니 지출이 줄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일이 없어지다 보니 그나마 하던 외출도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충동구매하던 물건도 사라졌고, 외식도 없어졌다. 고정비용 지출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변동비용은 가계부에서 흔적 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외식비용도 없고 의류 비용, 문화 활동 비용도 모두 지워졌다. 그러다 보니 삶은 단출해졌고 가벼워졌다.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것들

일 때문에 외출을 하다 보면 눈에 띄는 것에 이끌려 구매하기도 하고 일이 막히면 카페를 찾기도 하고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건을 사기도 했었다.  이유 없이 가게에 들어가 옷을 사던지, 그릇을 구매하기도 하고 '뭔가 필요한 게 없는지', '이런 것은 하나쯤은 있어야 돼'라고 생각하며 소비로 마음을 달랬다. 스트레스가 받는 일이 있으면 '내가 이렇게라도 나를 위해 선물을 해야지'라는 마음에 충동구매를 하기 일쑤였다.


그동안 지름신이 강림하여 구매해둔 물건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나의 취향을 찾아가면서 만족하는 물건이 생겨서인지, 지출이 늘지 않고 있다. 수입이 없어서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했던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지출이 사라졌다. 


한 달 정도 마실 커피를 사는 것이 소비의 최선이 되었다. 책은 월정액으로 해둔 sam e-book으로 보고, you-tube로 강연을 보거나, 좋아하는 예능 프로를 즐겨 본다. 요즘은 커피와 데이터만 있으면 될 것 같은 그런 환상 속에서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청소를 하고 꼭, 해야 하는 일들만 미리 체크하고 그 후로는 영상을 즐겨보고 커피를 마시고 몸을 풀면서 그렇게 느긋하게 하루를 즐긴다. 급할 것도 없고 답답해할 것도 없이 최소한 삶의 방식으로 최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여유로워졌기 때문인지 불필요한 소비도 많이 줄었다. 간혹, 사고픈 게 떠오르지만 그건 충동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판단에 가깝고 그것을 획득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것을 갖지 못하면 꼭, 내가 무능한 사람 같은 환영에 젖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불필요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한 달에 하나 정도는 사는 것 같다. 규칙적인 소비는 아니지만 그 정도로 나를 잠재우고 나의 의지로 소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삶을 안내하는 마음

주변에 있는 여럿 사람들을 보면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다. 아이를 키우며 사는 친구, 딩크족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딩크족처럼 사는 친구, 혼자 사는 친구 등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 경제적 조건과 환경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사는 여럿의 친구가 있다. 실업수당을 받으며 잠시 쉬면서 재충전하는 주변인, 우리가 꿈꾸는 연봉을 받으며 사는 주변인, 일을 계속해서 찾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주변인 어쩌면 그리도 다양한 주변 사람들이 많은지 그들의 삶을 보는 게 나에겐 큰 공부이다.


그들 중 여유로워 보이거나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사는 주변인은 경제적 조건이 탁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전에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불안하지 않니?" 그랬더니 "왜?"라고 답이 돌아왔다.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조건에 불안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정도로 수입이 있으면 되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수입이 줄어들면 조금 미리 당겨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되돌려 생각해 보니 그건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나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자세히 보니 과소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일을 안 하고 불만만 늘어놓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을 찾아 하는데 즐길 수 있는 정도로, 수입이 적다면 그것에 맞춰서 소비를 조절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던 주변인들이었다.


그런 생각을 지탱해 주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보여지는 집, 옷, 직장에 욕심을 내려놓은 주변인들이다. 나는 무엇인가 갖고 싶어 할 때 그들은 필요한 것을 갖고 싶어 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찾지 못해 허우적거릴 때 그들은 '무엇인가'를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천의 기준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살아가는 방법은 자신이 정하는 방향성에 따라 내면의 마음과 태도를 분별하고 조정해 가면서 그것이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태도에 있었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또한 주요했다. 친구와의 수다를 좋아하는 주변인은 커피 값에는 투자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잠시 사용할 물건은 공공기관에서 대여를 받아 사용한다. 옷이나 집안 물건 등은 잘 따져 보고 꼭, 필요한 것만 산다. 그리고 외양을 꾸미는 옷이나 가방, 신발, 화장품, 미용보다는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약이나 보조제, 그리고 신선한 식품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작은 선물이나 시간에 투자를 한다. 다들 그렇게 슬기롭게 자신의 삶을 잘 안내하고 있었다. 각자 즐길 수 있는 작은 의식 ritual을 남겨 놓고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 즐기는 삶이 시간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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