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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Jun 19. 2020

아름답지만 황홀하지 않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구름


일 때문에 간혹 하늘 사이에 낀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늘에 있는 동안은 몽롱하기만 하다. 진땀을 흘리며 가빠진 호흡을 부여잡고 타던 비행기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코로나 19 관계로 이동할 일이 없다가 몇 달 만에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하던 곳의 날씨는 맑았는데 도착지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설마 온화하고 거친 구름을 만나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됐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하늘에서 겪게 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비가 쏟아지는 땅과 달리 높은 하늘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밝다는 것과 보기에는 이쁘지만 거친 구름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 이 두 가지이다.


이날은 거친 구름을 만났다. 안정된 고도에 집입하기 직전부터 기체에 큰 떨림이 있었다. '아, 오늘은 터블런스가 심하겠구나'싶어 마음을 다 잡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은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고요한 구름 끝자락에 밝은 빛이 있었지만 바로 앞 구름은 거친 파도처럼 수증기를 휘감으며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 큰 구름을 만나면 기체가 '쿵'하고 부딪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낱 수증기로 만들어진 솜사탕 같은 구름이지만 비행기의 속도가 더해지면 콘크리트보다 더 무거운 힘을 내뿜는다.

곁에서 보는 구름은 그나마 아름답다. 그런데 솜사탕 같은 구름 속으로 비행기가 접어들 때면 숨을  미리 쉬게 된다. 어떤 충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그렇게 알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간다. 보는 것과 곁에 있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것이 각기 다른 구름처럼 말이다. 기류가 엉켜 심하게 기체가 흔들릴 때면 일에 치이거나 불편한 마음에 휩싸여 힘들어하는 순간이 떠오른다. 그렇게 부딪히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언제 그랬니'라는 것처럼 맑게 개이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하늘과 참 많이 닮은 하루하루의 일상.



부드럽지만 과격하고 달콤하지만 매서운 게 삶인 것 같다. 뜻하는 데로 예상하는 데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드넓은 하늘 위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구름을 보면 그런 마음이 더 크게 와 닿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성자처럼 경건하게 그 풍광 앞에 서게 된다. '겸손해지자.' 함부로 말할 수 없고 예단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우리의 일이지 않던가. 어떤 것도 함부로 여길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확정하듯 말할 수 없는 게 우리의 마음이고 나의 태도이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다.


자연의 웅장함은 그렇게 우리에게 덧없음과 겸손함을 가르쳐 준다. 흔들렸던 비행기가 고요해졌다. 날아온 길을 되돌아보듯 창밖 뒤를 보니 구름과 저녁 햇살이 비행기 날개를 감싸고 있다. '이제, 괜찮아, 이제, 됐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구름. 우리의 시간도, 우리의 힘듦도 잠시 잠깐 스쳐가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잠시 흔들리던 마음을 다 잡는다. 구름 사이 햇살처럼 지금의 흔들림이 다를 더 단단하게 해 줄 거라 믿으며 그렇게 하늘에서의 시간을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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