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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Jul 18. 2020

가족이라는 공간

의지와 배려의 연대

누구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 태어나는 순간  아빠, 엄마라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형제, 자매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커 간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세상 밖으로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보아야 할 때도 있고 행복한 가족을 꾸리는 형제, 자매의 기쁨을 함께할 때도 있다. 그렇게 뻗어나가는 가족에게서 작은 생명이 태어나면 모든 가족이 더 큰 기쁨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하나의 가족이 둘의 가족으로 셋의 가족으로 뻗어 나간다.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부모님과 함께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본인이 아픈 걸 내색하지 않고 부부가 서로를 의지하며 병에 맞서 싸우던 젊은 시절이 지나 자식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부모란 존재는 쇠약해진 그리고 자식에게 기대어야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가족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어떤 관계일까? 자주 만나고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고 여행을 자주 가고 기념일이 되면 서로가 챙기고 그런 관계가 가족일까.


기억 속에 있는 가족의 관계는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그냥 나의 부모로 형제, 자매로 받아들이는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을 묵묵히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지지하는 그런 모습이다. 학교 진학을 꿈꿀 때도 하고픈 전공을 찾을 때도 가족은 가능한 한 범위에서 경제적 지원을  했고 "좋니?", "그게 꼭, 하고 싶니?" , "재미있니?"라는 말 뒤로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의 가치관과 우리의 생각이 부딪혀 서로 힘들어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순간 관계 맺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 갈등이었을 뿐이다.


이미 주어진 환경인 가족, 그렇다면 그 환경에서 서로의 삶의 방식을 지지해야 한다.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게 가족이다. 가족이라 해서 다양한 생각과 취향, 내적 욕구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난 시대가 다르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다르다. 관심사에 따라 학업을 해 나가는 경로도 다르게 되고 전공에 따라 성인이 되어 관계 맺게 되는 인적 네트워크도 달라진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결혼을 하게 되면 전혀 다르게 살아온 또 다른 인격체와 그 배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먹는 것, 입는 것, 좋아하는 것, 말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 수 없다. 오직 가족이라는 이해의 공간에서 다른 이들에게 갖게 되는 부딪힘 보다는 조금 더 차분하게 다가서는 것뿐이다.


가족이라는 이해의 공간은 어떤 곳보다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는 곳이다. 태어남으로써 주어지게 되는 삶의 무게를 무던하게 견딜 수 있는 테두리이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엄마니깐", "동생이니깐" 그렇게 마음으로 헤아리고 따스한 소망을 담는 대상이다. 어느덧 가족의 테두리에도 시간의 숫자가 너무 많이 쌓여가기 시작하면 가족 중 누군가는 병원에 자주 가게 되고 그 아픔을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부담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가족의 테두리는 더 단단해진다.


서로의 시간을 나누고 쪼개어 가며 가족 중 누군가는 돌봐줘야 하고 기다려 줘야 한다. 새로운 가족을 꾸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금의 가족이 마지막 가족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한 자식은 시간이 많아서 다른 자식보다 부모 곁에서 더 잘 돌본다고(돌볼 여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지금의 가족이 가족이라는 테두리의 끝자락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까? 때로는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식이 더 깊이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까? 자신이 늙고 힘이 없어질 때 지금과 같이 곁에 있을 자식(가족)이 없지만 그러한 두려움과 상상보다 지금 나의 가족이 우선이어서 최선을 다 한다는 사실을 알까?


가족이 분화되고 결합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어버린 지금, 사람들은 가족의 형식과 가족이라는 이해의 공간을 다양하게 살펴보지 못하고 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각자에게 의미 있는 일들이 다르게 해석되기 시작했고 그러한 이유로 사람과의 관계를 연결 짓고 살아가는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가족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가족 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개별들이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사는 한정적인 시간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태어나 그 테두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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