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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Jun 30. 2020

사는 곳이란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자연 - 공간 컨디션

세찬 비가 쏟아진 다음 날, 아릿한 햇살에 이끌려 일어났다.

빗소리가 좋아 친구 삼아 새벽 늦게까지 잠을 못 잤는데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새벽까지 빗소리 들으며  한 일은 오래된 접이식 탁자를 책상으로 벗 삼고 싶어 창문 곁으로 들여다 놓은 것이다. 쓸고 닦고 그렇게 쓰임있는 물건이 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탁자를 펼쳤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노트북을 연다. 건너편에 다른 집이 있어 창문을 활짝 열 수는 없지만 작은 커튼을 무기 삼아 틈새로 열려있는 하늘을 바라본다. 작은 화분도 탁자 위로 올려본다. 초록빛이 편안하게 감싸준다. 작은 커튼이라고 여기고 있는 천 사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속삭이듯 살랑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선선한 바람.


비가 그쳐서 인지 여기저기 총총히 창문을 연 집들이 보인다. 아직도 이곳은 창문 틈 사이로 서로의 일상이 마주하는 곳이다. 이웃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시장이나 슈퍼, 세탁소 등에 가면 옆집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래서일까. 아주 낡고 작은 이 집이 불편하지 않다. 경제적인 이유로 머물고 있지만 그런 생각조차 지워버리는 만족감을 주는 곳이다.





공간 컨디션

아마도 집안의 공간보다 집 주변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유현준 건축가가 어떤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일지', '집을 구한다면 어떤 것을 볼지', 그리고 구해줘 홈즈 스페인 편에서 오영욱 건축가도 이런 질문은 받았다. 두 사람다 공통적으로 말한 것이 집 주변의 컨디션이다.


넓은 집,  깨끗한 집, 이쁜 집 여러 가지 집이라는 조건이 있겠지만 집이 좁아도 집이 낡아도 그 주변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가능한 컨디션. 즐기고 싶은 공간이 있는 곳.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닌지 싶다. 그래서 이곳을 못 떠나는 것 같다. 에어컨 없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야 하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두면 산자락에서 흘러나오는 자연풍을 맞이할 수 있고 아침에 눈을 뜨면 혹은 새벽녘에 소리 없이 앉아 있다 보면 새소리를 지긋이 스치게 된다. 나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는 옷가게가 있고, 나들이하기 좋은 시장이 있고, 서성이기 좋은 서점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 걸어가야 하는 거리지만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 편도로 30여분 정도 걷는 걸 좋아하는 나로선 바로 옆은 아니지만 1시간 정도 투자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 이곳의 공간 컨디션이 좋다.

 

무엇보다 그런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 장사를 하다가 남은 음식을 공짜로 주기도 하고, 갑자기 온 택배를 아무렇게나 스스럼없이 받아주는 가게 아주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작은 문방구에서 이것저것 필기구를 살 수도 있다. 작은 지우개 하나도 밝게 웃으며 맞이해 주는 사장님 부부가 참 좋다. 골목길 사이로 드러렁 거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알람처럼 규칙적으로 울리지만 그 정도는 귀엽게 넘어갈 수 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에게 대한 배려와 마음이 남 다르다. 칸칸이 나뉘어 있고 벽으로 둘러싸인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관계가 존재한다.


자연과 연결되는 공간

공간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 되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공간과 사람, 사람과 자연, 공간과 자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삶의 공간은 아슬아슬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파트에만 살아온 조카는 바깥을 걷는데 익숙하지 않다. 아파트 동과 동은 지하로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학교도 학원도 건물 한 칸 사이로 모두 이어져 있다. 바깥을 볼 시간도 기회도 없는 것이다.


조카 손을 잡고 아파트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는 나에게  한 마디 건넨다. "000는 왜, 걷는 게 좋아! 하늘과 나무를 보는 게 재미있어"그런다. 비 오는 날 조카의 손을 잡고 비가 그친 아파트 단지와 동네를 걸었다. 비가 지나고 간 공간에 스며든 바람 냄새, 흙냄새가 좋아. 비를 흠뻑 맞고 푸르게 뽐내고 있는 나무가 좋아. 한참을 서성이며 물끄러미 바라봤다. 코를 실룩거리고 온몸을 활짝 펴 냄새와 촉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런 내가 신기해 보였던 듯하다. 아주 어린 나이었으니깐.


그렇게 우리의 공간은 삶은 단절되어 가고 있다. 편리함이라는 무의미한 가치에 휩싸여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 가상의 세계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새소리를 한참 듣고 나서 두둑하게 점심을 먹고 노트북과 태블릿을 다시 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삼시세끼를 본다. '왜, 이걸 볼까?' 특별한 게 없는데 말이다. 그냥 백색소음처럼 켜 놓고 일을 하는데 간간히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물론 출연진 간의 이야기 소리도 있지만 물이 쪼르르 흐르는 소리, 솥뚜껑이 덜커덩 거리는 소리, 간혹 등장하는 동물 소리, 그리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넉넉하고 넓은 자연의 풍경, 그것 때문에 끌리는 것 같다.




 

어느 날 멀리 있는 하늘과 산이 아름다워 폰에 담아 보았다. 비 오고 난 다음 부끄러워하는 봉긋한 하늘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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