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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Jun 09. 2020

보는 것의 차이

감각이 차단된 가상의 세계

코로나 19가 우리의 일상을 집어삼키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일이 줄었고 조심스럽게 만남을 약속해야 했다.


2월 이후부터 벌어진 이 상황에서 몇 달 동안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는 일이 었다. 거의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의 삶이 지속됐다. 만남과 강의는 화상으로 이루어졌고 처음에는 화상이 가능한 다양한 플랫폼을 익히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다양한 방식에 익숙해지고는 플랫폼을 넘나들며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살짝 빠지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무료로 상영해 주는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작품을 집에 누워 편안하게 보기도 했다. 시차가 안 맞아 새벽 서너 시에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좋은 작품을 보는 것에 비하면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즐기던 시간도 또 몇 달이 지났다.


화상으로의 대화는 화상일 뿐이었다.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미팅이라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마이크, 비디오를 차단하고 채팅으로만 혹은 참가자 명단에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화상 바깥에서 관찰자로 머물러 있을 때면 그 시간이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같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이어가는 만남이 온라인 공간에서 가능한 것도 사실이고 어느 정도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제한된(현재 개발된) 플랫폼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면 만나지 않고도 서로의 관계를 이어가고 같은 시간에 머물며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갈 수 있다. 그러나 분명 우리의 감각은 온라인 플랫폼과 기기에 갇혀 서로에게 미치지 못한 채 머물고 있다.


대화는 말로 이어지지만 그 말을 느끼는 것은 몸의 감각이다. 눈빛, 표정, 자세 등 말이 아닌 몸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말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몸을 통해 조금 더 명확하게 해석하고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화면 뒤에 감추어진 마음을 읽어낼 방법은 없다. 자신의 존재를 차단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만 듣고자 하는 대화가 이어진다면 그 대화에는 피로만 누적된다. 코로나 19가 지속되면서 대면을 멈춘 시간이 길어지면서 온라인에서의 만남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지는 것 같다. 당황하면서도 서툴고 때로는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거부감이 들기도 했던  초기의 감각은 사라지고 있다. 서툴기 때문에 낯설기 때문에 온라인에서의 대화에 집중했던 경험은 사라지고 플랫폼에 익숙해지면서 자신을 감추는 방법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좋은 작품도 극장에서 만나고 싶다. 유튜브로 보던 재미난 공연도 그때뿐이었던 것 같다. 최근 국내 극장도 실시간으로 공연을 선보이는데 작품이 즐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공연은 무대 자체를 즐기는 경험이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작품을 보면서 나의 호기심이 이끄는 데로 무대를 작품을 여행한다. 여기저기를 보기도 하고 전체를 보기도 하고 나의 감각이 미치는 어떠한 곳에 머물기도 하고 창작자가 만든 가상의 세계를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상영되는 작품은 카메라 구도에 따라 작품이 분절되거나 특정한 부분이 강조되기 일쑤다.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건가? 진짜 작품을 보는게 맞는가?라는 생각도 든다. 작품이 시작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창작자의 의도를 간파하고 때로는 거부하기도 하면서 나만의 시점으로 읽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면이 사라지면서 우리 감각은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관계 맺기 시작했고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는데 익숙해졌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대화가 가능할 수 있는 노하우도 어느 정도 생겼다. 그렇게 됐다고 느낀 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진짜 대화가 있기를 바라게 됐고, 진짜 공연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환경이 바뀌면서 미디어도 바뀌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내 마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고민하고 변화하면서 살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이 터전인  몸으로 나의 감각으로 대화하고 느끼고 해석하고 싶다는 욕구는 더 강해지고 있다.


두 개의 창문으로 쪼개어 보는 북항대교처럼 온라인으로 보는 공연도 미팅도 강의도 이렇게 구분되고 나뉘기 시작하는 것 같다. @ 카페 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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