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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Jun 09. 2020

기록을 남긴다는 것

나이가 지지하는 독서 노트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삼년인 것만 같은 독서노트 쓰기를 하고 있다. 링 제본된 노트에 한 땀 한 땀 써 내려가던 수십 년 전 독서노트. 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기록했던 독서노트. 이렇게 남아있는 독서 노트 형태도 다양하다.


독서노트를 열심히 섰던 시간을 떠올려 보니 치열하게 살면서 너무 바빴거나 그런 시간에 지쳐 심하게 우울했던 순간이 있었다. 아마도 그런 시간을 견디기 위해 독서 노트를 남긴 것 같다. 무념무상으로 독서 노트를 써내려 가다 보면 잠시나마 고요해지고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과감하게 태블릿을 샀다. 북리더기를 살까 고민하다가 이왕이면 독서 노트도 남겨야겠다는 마음에 S-pen이 장착된 기기를 구매한 것이다. 그 이후로 틈틈이 꾸준하게 작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교보문고 sam으로 렌털해 보는 e-book을 조금씩 정리해 나간지 반년이 지나간다. 코로나 19 덕분인지 예전보다는 채워지는 양이 적지 않다.


문장을 그대로 필사하는 기록 방식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손으로 글을 쓰는데 힘이 딸리다 보니 문장을 요약해 개조식으로 쓰거나 약간의 도식(?)이라고 할까! 줄 긋기 등을 활용해 간단하게 정리하기를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에 와 닿거나 문장 자체가 탁월한 경우에는 그 자체로 필사를 한다.


독서 노트는 지식을 담는 게 아니라 마음을 청소하는 시간 같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사하듯, 요약하듯 노트를 정리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문장에서 즐거움이 발견된다. 손이 아파서 길게 그리고 끝까지 기록을 못 남기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남기고 나면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마음이 든든하다.


간혹 남긴 기록을 들추다 보면 내가 중요하게 여긴 게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이미 지난 시간이지만 기록 속에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새롭게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는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삶의 시간을 하나씩 채워 나간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 기록을 남기다 잠시 멈추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기록을 남기지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꾸준하게 노트를 남기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아마도 불안해하며 급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는 나이가 주는 자각이 소박한 독서 노트를 이어가는 동력이 된듯 하다. 차분해지고 싶은 마음, 바쁜 시간에 끌려가기 싫은 마음이 독서 노트에 새겨지는 것이다. 지혜와 지식을 이렇게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풍요로워지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즐기는 노련함을 가져다주는 독서 노트가 나이 듦의 시간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친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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