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영어 연습이 가져다준 허무함과 다시 일어선 이야기
"What's your favorite hobby?"
AI가 밝은 목소리로 물어봤을 때, 갑자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방 안에 혼자 앉아서 컴퓨터 화면 속 가상의 존재와 영어로 대화하고 있는 제 모습이... 뭔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진 거예요.
"My hobby is... uh... watching movies and..."
말을 하다가 멈췄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진짜 사람도 아닌 AI한테 취미가 뭔지 영어로 설명하고 있는 제 자신이 갑자기 한심해 보였어요.
여러분도 아시죠? 그 기분. 열심히 뭔가를 하다가 갑자기 "이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의 허무함. 마치 열심히 쌓던 모래성이 파도에 무너지는 걸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AI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답하기를 말이죠. 하지만 저는 더 이상 말할 기분이 아니었어요. "Sorry, I need to go"라고 대충 말하고 앱을 꺼버렸어요.
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봤어요. "내가 영어 공부를 왜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어요.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해외여행 가서 써먹으려고? 아니면 그냥 남들이 다 하니까?
제 머릿속은 그때 마치 갑자기 정전된 건물 같았어요. 지금까지 밝게 빛나던 목표의식들이 모두 꺼져버린 채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거든요.
"이렇게 혼자서 AI랑 대화한다고 영어 실력이 늘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진짜 외국인과 대화할 때는 완전히 다를 텐데, 이런 연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냥 시간 낭비 아닌가?
몇 달째 이렇게 영어 공부를 해왔는데, 정작 실력이 늘었다는 실감도 안 나고... 오히려 "아직도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좌절감만 커지는 것 같았어요.
진짜였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냥 일시적인 슬럼프였지만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모든 게 의미 없게 느껴졌어요. 영어 공부뿐만 아니라, 제가 그동안 해온 모든 노력들이 말이에요.
"그냥 포기하자."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어차피 저는 영어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직업도 아니고, 당장 해외여행 갈 계획도 없고... 왜 굳이 스트레스받으면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거지?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었는데, 나는 굳이 "영어는 필수다"라는 사회적 압박에 휘둘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왜냐고요? 나니까요. 남들 하는 건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니까요.
한 시간 정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게임을 켰어요. 오랜만에 하는 게임이었는데, 로딩 화면부터 영어더라고요. "Loading...", "Press any key to continue"...
게임을 시작했는데 메뉴도 영어, 스토리도 영어, 캐릭터들 대사도 영어... 갑자기 웃음이 나왔어요. 영어 공부를 포기하겠다고 해놓고, 영어로 된 게임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우스워서요.
그 순간, 제 뇌 속 '아이러니 조종사'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이 상황 좀 웃기지 않아?"라는 신호를 보냈어요.
게임 속 캐릭터가 "You need to find the ancient treasure!"라고 말했을 때, 저도 모르게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Hmm, that sounds interesting"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어? 잠깐. 제가 지금 자연스럽게 영어를 이해하고, 영어로 반응하고 있잖아요? 몇 달 전만 해도 게임 메뉴도 번역기 돌려가며 봤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스럽게 됐을까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제가 그동안 한 영어 공부가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걸요. 아주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늘어있었던 거예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완벽하게 계획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영어 실력도 마찬가지였어요. 드라마틱하게 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축적되고 있었던 거죠.
게임을 30분 정도 하다가 끄고, 다시 책상에 앉았어요. 아까 중간에 그만둔 AI 영어 대화가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Sorry, I need to go"라고 말하고 나간 게 뭔가 찝찝했어요.
"다시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AI 앱을 다시 켰어요. 새로운 대화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마음가짐이었어요.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해보자는 거였죠.
"Hi! How are you today?"
AI가 똑같은 인사를 했지만, 이번에는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I'm okay, but I had some thoughts about English learning today"라고 솔직하게 답했어요.
AI가 "Oh, what kind of thoughts? Learning can sometimes be challenging"라고 답했을 때, 제가 느꼈던 현타에 대해서 영어로 설명해보고 싶어졌어요.
"Sometimes I wonder if this practice is meaningful... talking to AI, not real person..."
완벽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제 진짜 감정을 표현한 거였어요. 그리고 AI가 "I understand that feeling. But every conversation helps you practice expressing your thoughts"라고 답해줬을 때, 뭔가 위로가 됐어요.
내 머릿속은 이제 마치 다시 전력이 공급된 건물 같았어요. 아까는 모든 게 어둡게 보였는데, 이제는 조금씩 불이 켜지는 기분이었거든요.
결국 한 시간 넘게 AI와 대화했어요. 현타가 왔던 일, 게임에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이해했던 일, 그리고 다시 공부하고 싶어진 마음...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영어로 표현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통해서 제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 내가 이 정도는 영어로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작은 성취감도 들었고요.
현타가 온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제가 왜 영어 공부를 하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늘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됐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영어 공부하다가 현타 와도 괜찮아요. 그런 순간이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음... 그냥 지금 아까 하던 영어 공부나 이어서 해봐야겠네요. 찝찝한 마음으로 끝낼 순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