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벙긋 → 중얼중얼 → 당당하게, 혼자만의 영어 말문 트기 대작전
그날은 정말 평범한 수요일 오후였어요. 동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시키고 창가 자리에 앉아서 폰만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제 앞에 서더라고요.
"Excuse me, do you know where the subway station is?"
금발에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어요. 완전히 전형적인 서양인 스타일. 그 순간 제 머릿속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마치 컴퓨터가 갑자기 블루스크린 떠버린 것 같았어요.
저는 분명히 지하철역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어요. 카페에서 나가서 직진하다가 첫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나오거든요. 한국말로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는데, 영어로는...
"어... 어... 써브웨이... 스테이션..."
그게 끝이었어요. 그 외국인이 기다리고 있는데, 저는 그냥 손가락으로 대충 방향만 가리켰죠. 그분도 당황한 것 같더라고요. "Oh... okay, thank you." 하고 가버렸어요.
그 순간의 제 기분을 알겠어요? 진짜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한 마디도 못할 줄은 몰랐거든요. 머릿속에는 분명히 단어들이 있었는데, 입 밖으로는 하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집에 와서 거울을 봤어요.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죠.
"Go straight and turn right at the first corner."
어? 지금은 되네? 혼자 있을 때는 문장이 술술 나오는데, 왜 실전에서는 입이 안 떨어지는 거죠?
그날 밤, 인터넷을 뒤져봤어요. "영어 말하기 공부법", "영어 스피킹 연습법", "외국인과 대화하는 법"... 검색 기록을 보면 제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날 거예요.
찾은 정보들은 대부분 비슷했어요. "많이 말해보세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틀려도 괜찮아요"... 좋은 조언이긴 한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많이 말해보라는데, 혼자서 뭘 어떻게 말해보라는 거죠?
그러다가 하나의 영상을 발견했어요. "쉐도잉(Shadowing)" 이라는 방법이었거든요. 영어 문장을 듣고 따라 말하는 거예요.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한다고 해서 셰도잉.
"이거다!" 싶었어요. 드디어 구체적인 방법을 찾은 거죠.
첫 번째 시도: 유튜브에서 "How are you?" 라는 간단한 문장부터 시작했어요.
원본: "How are you?"
제 따라하기: "하우 아 유?"
어? 뭔가 이상한데? 발음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제가 한국식으로 읽고 있었던 거예요.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영어를 '읽을' 줄은 알아도 '말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전략을 바꿨어요. 아예 기초부터 다시. 알파벳 발음부터 시작했죠.
"A, B, C, D..."
30살 넘은 어른이 알파벳 발음 연습하는 모습... 상상해보세요. 완전히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재미있기도 했거든요. 마치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기분?
일주일 정도 알파벳 발음만 연습하고 나서, 단어 발음으로 넘어갔어요.
"Apple - 애플"이 아니라 "애뽈" "Water - 워터"가 아니라 "워러"
아, 이렇게 발음하는 거구나! 그동안 제가 영어라고 생각하고 말했던 건 그냥 한국어였던 거예요.
2주차부터는 짧은 문장 따라하기를 시작했어요.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어요. 너무 빨라서 따라갈 수가 없는 거예요.
원본: "Nice to meet you." (자연스럽고 빠르게)
제 따라하기: "나이스... 투... 미트... 유..." (로봇처럼)
속도를 못 따라가니까 자꾸 끊어서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 재생 속도를 0.75배로 줄였어요.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따라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따라 말하기만 하다 보니까, 실제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말하기 연습이 아니라 그냥 음성 복사기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3주차부터는 방법을 또 바꿨어요. 따라 말하기 전에 문장의 뜻을 먼저 이해하고, 내 상황에 맞게 바꿔서 말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I'm going to the store"라는 문장을 배우면
뜻 이해: "나는 가게에 간다"
따라 말하기: "I'm going to the store"
내 상황에 적용: "I'm going to the cafe", "I'm going to the library"
이렇게 하니까 훨씬 실용적이었어요. 단순히 따라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쓸 수 있는 표현을 익히는 거였거든요.
한 달쯤 지나니까 혼자서는 꽤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거울 보고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정도는 막힘없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실전이 무서웠어요. 혼자 연습할 때는 잘되는데, 진짜 외국인 앞에서는 또 말문이 막힐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상황 연습"이었어요. 혼자서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대화 연습을 하는 거죠.
상황 1: 길 묻기 "Excuse me, where is the subway station?" "Go straight and turn right."
상황 2: 카페에서 주문하기 "Can I have an iced americano, please?" "That'll be 4,000 won."
상황 3: 자기소개하기 "Hi, I'm from Korea. Nice to meet you." "Nice to meet you too!"
매일 저녁마다 거울 앞에서 이런 식으로 연습했어요. 처음엔 정말 어색했어요. 혼자서 양쪽 역할을 다 하고 있으니까 완전히 1인 2역이었거든요. 가끔 이웃들이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춰서 중얼중얼하기도 했고요.
근데 신기한 게, 계속 하다 보니까 점점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어요. "아,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되는구나" 하는 확신이 생긴 거죠.
2개월쯤 지났을 때, 드디어 실전 테스트 기회가 왔어요. 또 그 카페에서였어요. 이번에는 젊은 여성 외국인이 다가왔어요.
"Excuse me, is there a pharmacy around here?"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연습했던 문장들이 쭉 지나갔어요. 약국은... pharmacy... 이 근처에... around here... 있나요... is there...
"Yes, there is a pharmacy. Go straight and turn left. It's next to the convenience store."
나왔어요! 진짜로 나왔어요! 물론 발음은 완벽하지 않았고, 문법도 틀렸을 수도 있었지만, 완전한 문장으로 대답한 거예요.
그 외국인이 웃으면서 "Thank you so much!" 하고 갔어요. 그 순간의 성취감...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치 처음으로 자전거를 탄 날의 기분 같았어요.
집에 와서 거울을 봤어요.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죠.
"I did it! I really did it!"
그날부터 영어 말하기에 대한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영어 말하기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피아노 치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꾸준히 연습하면 늘 수 있는 거였어요.
그 이후로 제 영어 말하기 연습 루틴이 생겼어요.
아침: 거울 보고 오늘 계획 영어로 말하기 "Today, I'm going to work. After work, I'll go to the gym."
점심: 혼자 먹으면서 음식에 대해 영어로 중얼거리기 "This pasta is really delicious. The sauce is a bit salty, but I like it."
저녁: 하루 있었던 일 영어로 정리하기 "I had a meeting today. It was a bit boring, but I learned something new."
처음엔 정말 간단한 문장들이었어요. 주어 + 동사 수준의. 하지만 점점 복잡해졌어요. 형용사도 붙이고, 부사도 붙이고, 이유도 설명하고.
6개월 정도 지나니까 뭔가 달라졌어요. 영어로 생각하는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예를 들어, 비가 오면 자동으로 "It's raining" 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배고프면 "I'm hungry"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물론 아직도 완벽하지는 않아요. 복잡한 이야기는 여전히 어렵고, 빠른 대화는 따라가기 힘들어요. 하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소통은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더 이상 외국인이 무섭지 않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외국인을 보면 피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말 걸 기회를 찾고 있어요.
여러분도 아시죠? 그 기분. 영어를 할 줄 알면서도 막상 말하려니까 입이 안 떨어지는 그 답답함. 하지만 정말로, 진짜로, 연습하면 늘어요. 처음에는 정말 어색하고 부끄러워도, 계속 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져요.
가장 중요한 건 완벽하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틀려도 괜찮고, 발음이 이상해도 괜찮고, 문법이 틀려도 괜찮아요.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해주면 그걸로 충분한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팁: 혼자서 연습할 때 꼭 소리 내서 하세요. 머릿속으로만 하면 실제로 말할 때 입이 안 따라와요. 입 근육도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처음엔 정말 어색하지만, 점점 익숙해져요.
또 다른 팁: 일상적인 것들부터 시작하세요. "I'm hungry", "I'm tired", "It's hot" 같은 간단한 문장들. 이런 기본적인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복잡한 문장도 할 수 있어요.
마지막 팁: 자신과 대화하세요. 거울 보고, 샤워하면서, 걸으면서... 혼자 있을 때마다 영어로 중얼중얼해보세요. "What should I wear today?", "I need to buy some milk", "The weather is nice today" 같은 식으로.
지금도 저는 매일 영어로 혼잣말해요. 가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도 하지만, 신경 안 써요. 내 영어 실력을 위한 거니까요.
결국 영어 말하기는 운동과 비슷한 것 같아요. 헬스장 한 번 간다고 근육이 생기지 않듯이, 영어도 하루 이틀 연습한다고 늘지 않아요. 하지만 꾸준히, 조금씩, 매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확실히 늘어있어요.
그날 카페에서 외국인에게 한 마디도 못했던 제가, 지금은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시작은 한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도... 음... 그냥 오늘부터 거울 보고 "Hello" 한 번 말해보세요. 거기서부터 시작이에요. 완벽할 필요 없어요. 그냥 시작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아, 그리고 혼자 연습할 때 너무 진지하게 하지 마세요. 가끔은 재미있게, 웃으면서 해도 돼요. "I'm so handsome today!" 이런 말도 연습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