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채팅인 줄 알았는데 실시간 번역 지옥이었던 이야기
계획은 완벽했어요. 진짜로요. "HelloTalk 깔아서 외국인 친구랑 채팅하면서 영어 늘리자!" 이렇게 생각한 저는, 마치 글로벌 소통의 달인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했거든요. 근데 그게 문제였죠. 계획만 했다는 게.
그날 아침, 앱을 처음 켜고 프로필을 만드는데 벌써부터 막혔어요. "Tell us about yourself"라는 창 앞에서 10분을 멍하니 있었거든요. 한국어로도 자기소개 어려운데, 영어로 하라니요. 결국 "I like music and food"라고 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지구상 모든 사람이 쓸 법한 문장이었죠.
여러분도 아시죠? 그 기분. 뭔가 대단한걸 할 것 같은데, 갑자기 방 청소부터 시작하는 그 감정. 저는 외국인과 채팅하겠다고 마음먹고는, 왜인지 휴대폰 배경화면부터 바꿨어요. "깔끔한 화면에서 채팅해야 집중이 잘 되지!" 라는 핑계로요. 물론 배경화면만 세 번 바꿨고, 실제 채팅은 안 했죠.
첫 번째 매칭이 떴을 때의 그 설렘이란요. 캐나다에서 온 23살 대학생이었어요. 프로필 사진도 괜찮고, 취미도 비슷해 보이고... "이거다!" 싶어서 용기내서 먼저 메시지를 보냈어요.
"Hi! Nice to meet you!"
간단하잖아요? 근데 이것도 보내기 전에 세 번 검토했어요. "Hi"뒤에 쉼표 넣어야 하나? "Nice to meet you" 맞나? "Nice meeting you"가 더 자연스러운가? 제 머릿속은 그때 이미 알람 울리는 스마트폰 같았어요. 버튼은 눌렀는데, 여전히 울리는... 그런 상태였거든요.
상대방이 답장을 빨리 보내줬어요.
"Hey! How's it going? I'm excited to practice Korean with you! What do you like to do in your free time?"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요. 일단 "How's it going?"부터 막혔어요. 이게 "어떻게 지내?"인지 "뭐 하고 있어?"인지 헷갈리는 거예요. 그리고 "What do you like to do in your free time?"은... 아, 이건 취미 묻는 거구나. 근데 답변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제 뇌 속 '이성 조종사'는 이미 조종간을 놓고 도망쳤고, 대신 구글 번역기 원숭이가 탑승한 상태였죠. 파파고 켜고, 구글 번역기 켜고, 심지어 네이버 영어사전까지 켰어요.
답장 작성에만 20분이 걸렸어요. 처음엔 이렇게 썼어요.
"I'm good! I like watching movies and listening to music. Also I like to eat delicious food. How about you?"
근데 보내기 전에 다시 보니까 너무 단조로운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좀 더 멋있게 바꿔봤죠.
"I'm doing great! I enjoy watching various genres of movies and exploring different types of music. I'm also passionate about experiencing diverse culinary cultures. What about your hobbies?"
이것도 뭔가 이상해요. 너무 격식적이고 로봇 같은 느낌? 그래서 또 바꿨어요.
"Pretty good! I love movies (especially thrillers!) and music. Food is my weakness lol. What do you like to do?"
결국 이걸로 보냈는데, 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했어요. "lol"을 썼는데 진짜 웃긴 게 있었나? 그냥 어색함을 감추려고 쓴 건데...
상대방은 또 빨리 답장을 보내줬어요. 그런데 이번엔 더 길었어요. 캐나다의 겨울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스키 타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국 음식 중에서 뭘 추천하냐는 질문까지... 한 문단 분량의 긴 메시지였어요.
진짜였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지만요. 저는 그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문장 하나하나를 번역기에 돌렸어요. "What's the weather like over there?"는 쉬웠는데, "I heard Korean fried chicken is amazing - is that true?"는... 아, 치킨 이야기구나. 근데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한국 치킨을 영어로 설명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어요. "치킨이 맛있다"를 "Chicken is delicious"라고 하면 너무 단순하고, "Korean fried chicken has a unique crispy texture and various flavors"라고 하면 너무 격식적이고... 결국 30분 넘게 고민해서 보낸 답장이 이거였어요.
"Weather is getting cold here too! Korean fried chicken is really good - crispy outside and juicy inside. Many sauce options too! Do you like spicy food?"
보내고 나서 봤더니, 이것도 뭔가 어색해요. "Many sauce options"가 맞나? "Various sauce options"가 나은가?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었는데, 나는 굳이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고 했어요. 왜냐고요? 나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답장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어요. 상대방은 실시간으로 답장을 보내는데, 저는 한 문장 쓰는 데 20분씩 걸리니까요. 문장 하나 쓸 때마다 번역기 3개는 기본으로 돌렸거든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이건 채팅이 아니라 논문 쓰기라는 걸요. 매 문장마다 문법 검토하고, 단어 선택 고민하고, 뉘앙스 확인하고... 마치 토익 시험 치는 기분이었어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완벽하게 계획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전통을 따르고 있었죠. 계획은 이랬어요: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영어 실력 늘리고, 외국 친구 사귀고. 그런데 현실은? 번역기 돌리고, 문법 검토하고, 스트레스 받고.
상대방이 "What are you up to today?"라고 물어봤을 때, 저는 또 고민에 빠졌어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뭐라고 대답하지?" 그래서 이렇게 썼어요.
"Just relaxing at home. Maybe will watch some Netflix later. What about you?"
그런데 상대방은 바로 답장을 보냈어요.
"Nice! I'm at work right now but it's pretty slow. What shows do you like on Netflix?"
아, 넷플릭스 프로그램 이야기를 해야 하는구나. 그런데 제가 보는 건 대부분 한국 드라마거든요.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Korean drama"라고 하면 이해할까? 아니면 "K-drama"가 더 자연스러울까?
결국 또 30분을 고민해서 답장했어요.
"I like Korean dramas and some American series. Recently watching Squid Game - have you seen it?"
그런데 보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오징어 게임은 이미 유명해서 다들 아는 거잖아요. 좀 더 독특한 걸 말할 걸 그랬나? 아니면 그냥 무난한 게 나았나?
내 머릿속은 이미 혼돈의 카오스였어요. 매 문장마다 이런 식으로 고민하니까, 진짜 대화가 아니라 영어 시험 같은 거예요. 상대방은 실시간으로 여러 문장을 보내는데, 저는 한 문장 답장하는 데 30분씩 걸리니까 완전히 타이밍이 안 맞는 거죠.
그때 상대방이 이런 메시지를 보냈어요.
"You don't have to write perfect sentences! I make mistakes in Korean too � Let's just have fun chatting!"
아, 이 사람이 제 상황을 눈치챈 거예요. 한편으로는 고마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부끄러웠어요. 제가 너무 티를 낸 것 같아서요.
그래서 좀 더 편하게 해보려고 했어요. 짧은 문장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보내보자고 마음먹었죠.
"Thanks! You're right. I worry too much about grammar lol"
이런 식으로 보냈는데, 그래도 여전히 번역기는 켜놓고 있었어요. 습관이 되어버린 거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계가 느껴졌어요. 상대방이 복잡한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도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웠고요.
예를 들어, 상대방이 "What's your biggest dream?"이라고 물어봤을 때, 저는 정말 답하고 싶었어요. 제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걸 영어로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한 거예요.
결국 이렇게 대답했어요.
"I want to travel around the world and meet many people from different cultures."
뻔한 답변이에요. 제 진짜 꿈은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개인적인 건데,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우니까 그냥 무난한 걸로 넘어간 거죠.
대화가 점점 피상적이 되어가는 게 느껴졌어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언어의 벽 때문에 겉핥기식 대화만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왔어요. 상대방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 거예요. 가족 문제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였는데, 저는 그걸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번역기로 돌려봐도 뉘앙스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고요.
그래서 그냥 "I'm sorry to hear that"이라고만 답했어요. 상대방이 진심으로 고민을 털어놓는데, 저는 겉핥기식 반응밖에 할 수 없었던 거죠.
그 순간 깨달았어요. 이건 진짜 소통이 아니라는 걸요. 형식적인 대화일 뿐이라는 걸요.
결국 점점 대화가 짧아졌어요.
"How was your day?" "Good. You?" "Same. What did you eat today?" "Korean food. You?" "Pizza lol" "Nice!"
이런 식으로요. 처음에는 긴 문장으로 열심히 대화하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단답형으로 변해버린 거예요. 서로 부담스러워하는 게 느껴졌어요.
마지막 메시지는 이거였어요.
"I have to go now. Talk to you later!" "Okay! Have a good day!"
그리고 그 "later"는 오지 않았어요. 서로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완벽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번역기에 의존해서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진짜 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지 못했던 거죠.
한국어로 대화할 때는 농담도 하고, 진지한 이야기도 하고, 감정도 표현하는데, 영어로는 그냥... 정보 교환 수준에서 머물렀던 것 같아요.
결국 저는 그 앱을 지웠어요. 아니, 정확히는 지우지 않고 그냥 안 켰어요. 지우면 완전히 포기하는 것 같고, 안 지우면 언젠가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외국인과 채팅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워요. 특히 완벽하려고 하면요. 언어는 완벽함이 아니라 소통이 중요한 건데, 저는 그걸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음... 그냥 지금 번역기나 다시 삭제하러 가야겠네요. 휴대폰 저장공간도 부족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