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세번이었던 영어 스피킹 마스터 프로젝트
계획은 완벽했어요. 진짜로요. "이번엔 진짜다. 영어 전화 튜터 신청해서 매일 30분씩 통화하면서 스피킹 마스터하자!" 이렇게 생각한 저는, 마치 글로벌 비즈니스맨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했거든요. 근데 그게 문제였죠. 계획만 했다는 게.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영어 전화 튜터링 사이트를 뒤져봤어요. "원어민과 1:1 전화 수업!" "실전 영어 회화!" 이런 광고들이 눈에 번쩍 들어오는 거예요. 가격도 생각보다 괜찮았고, 후기도 좋아 보이고... "이거다!" 싶어서 바로 신청했어요.
여러분도 아시죠? 그 기분. 뭔가 대단한 걸 할 것 같은데, 갑자기 방 청소부터 시작하는 그 감정. 저는 영어 전화 수업을 신청하고는, 왜인지 책상 정리부터 시작했어요. "깔끔한 환경에서 전화해야 집중이 잘 되지!" 라는 핑계로요. 물론 책상 정리만 두 시간 했고, 영어 준비는 안 했죠.
첫 번째 전화 약속은 다음 날 저녁 7시였어요. 하루 종일 긴장했죠.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점심 먹으면서도 "How are you today?" "I'm fine, thank you" 이런 기본 문장들만 중얼중얼 연습했어요. 동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로요.
집에 와서 6시 30분부터 준비 시작했어요. 일단 조용한 방으로 가고, 물 한 잔 준비하고, 메모지랑 펜도 준비하고... 마치 중요한 면접을 앞둔 것처럼 철저하게 준비했거든요. 제 머릿속은 그때 이미 알람 울리는 스마트폰 같았어요. 버튼은 눌렀는데, 여전히 울리는... 그런 상태였죠.
드디어 7시가 되고 전화가 왔어요. 벨소리가 울리는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어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전화를 받았죠.
"Hello!"
상대방은 밝은 목소리의 미국인 여자 선생님이었어요. 이름이 Sarah였는데, 발음이 너무 빨라서 처음에 못 알아들었어요. "Hi! I'm Sarah, your English tutor! How are you doing today?"
그 순간, 제 뇌 속 '이성 조종사'는 이미 조종간을 놓고 도망쳤고, 대신 당황본능 원숭이가 탑승한 상태였죠. 준비했던 "I'm fine, thank you"도 까먹고, 그냥 "Uh... good... I'm... good"이라고 더듬거렸어요.
Sarah 선생님은 친절했어요. "Great! So tell me a little bit about yourself. What do you do for work?"
아, 자기소개구나. 이것도 준비했는데... 근데 막상 말하려니까 머리가 하얘지는 거예요. "I... I work... uh... office... company..." 완전 중학생 수준의 영어가 나오는 거죠.
진짜였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지만요. 저는 20분 동안 "uh", "um", "I mean..." 이런 말만 반복했어요. Sarah 선생님이 질문할 때마다 긴 침묵이 흘렀고, 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답변을 짜내려고 애썼거든요.
"What do you like to do in your free time?"라는 질문에는 아예 답을 못 했어요. "Free time"이 뭔지는 알겠는데, 제 취미를 영어로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I... watch... movie... and... eat..." 이 정도가 전부였죠.
첫 번째 전화가 끝나고 나서, 저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어요. 30분 통화했는데 마라톤 뛴 것처럼 지쳤거든요. 그런데 Sarah 선생님은 마지막에 "You did great! See you tomorrow!"라고 격려해줬어요. 물론 위로의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고마웠죠.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었는데, 나는 굳이 다음 날도 예약했어요. 왜냐고요? 나니까요. 포기하기엔 너무 일찍이었거든요.
두 번째 전화는 첫 번째보다는 나았어요. 아주 조금요. 일단 Sarah 선생님 목소리에 익숙해졌고, 기본적인 인사말은 더듬거리지 않고 할 수 있었거든요.
"Hi Sarah! How are you?"
"I'm great! How was your day?"
여기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그 다음부터 또 막혔죠. "How was your day?"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Good"이라고만 하면 너무 짧고, 길게 설명하자니 영어가 안 나오고...
"It was... uh... normal day... I work... and... come home..."
Sarah 선생님이 도와주려고 했어요. "Oh, what kind of work do you do exactly?"
정확히 뭘 하는지 물어보는 거죠. 근데 제 업무를 영어로 설명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어요. "I work with computer... and... make... uh... report?" 완전히 엉성한 설명이었죠.
그 순간 깨달았어요. 일상 대화가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한국어로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들이, 영어로는 왜 이렇게 복잡한 거죠?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완벽하게 계획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전통을 따르고 있었죠. 계획은 이랬어요. 유창하게 대화하고, 자신감 생기고, 영어 실력 늘리고. 그런데 현실은? 더듬거리고, 침묵하고, 스트레스 받고.
두 번째 전화 후에는 좀 더 준비를 해봤어요. 자주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을 미리 써보고, 답변도 준비해놨거든요. "What's your hobby?" "I like watching movies and listening to music." 이런 식으로요.
세 번째 전화 때는 좀 더 자신 있게 시작했어요. 준비한 답변들이 있으니까요. Sarah 선생님이 "What did you do over the weekend?"라고 물어봤는데, 이것도 준비했던 질문이에요!
"I watched movie and met my friends!"
오, 이번엔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뿌듯했죠. 그런데 Sarah 선생님이 "Oh, what movie did you watch? Was it good?"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아, 이건 준비 안 했어요. 영화 제목을 영어로 어떻게 말하지? 한국 영화였는데, 영어 제목이 있나? 그리고 "좋았다"를 어떻게 표현하지? "Good"만 계속 쓰면 이상할 것 같은데...
"Uh... Korean movie... it was... uh... how to say..." 또 더듬기 시작했어요.
그때 Sarah 선생님이 말했어요. "Take your time! Don't worry about being perfect."
착한 선생님이었지만, 저는 점점 위축되는 게 느껴졌어요. 매번 이런 식으로 막히고, 더듬거리고, 침묵하고... 이게 정말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까요?
세 번째 전화가 끝나고 나서, 저는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계속하면 늘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스트레스만 받을까요?
내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어요. "위험! 위험! 자신감 저하!" 실제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처음보다 더 떨어진 것 같았거든요. 전화하기 전에는 "못해도 해보자"였는데, 세 번 하고 나니까 "내가 정말 못하는구나"가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결국 네 번째 예약은 취소했어요. Sarah 선생님한테는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무서웠거든요. 매번 30분 동안 고문당하는 기분이었어요.
포기하고 나서 며칠 동안은 죄책감이 들었어요.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영어는 내 평생 숙제인가 보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또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세 번은 했잖아? 그리고 첫 번째보다 세 번째가 조금은 나았잖아?"
맞아요. 아주 조금이지만 발전은 있었어요. 처음에는 "Hello"도 떨렸는데, 마지막에는 간단한 인사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요. 영어 전화를 마치 마법의 지팡이처럼 생각했던 거죠. 몇 번만 하면 갑자기 유창해질 거라고요. 하지만 언어 학습은 그렇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바로 전화하지 말고, 먼저 기초를 더 다지자는 거죠. 혼자서 소리 내서 읽기 연습도 하고, 간단한 대화 표현들도 더 외우고...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도전할 거예요. 아마 몇 달 후에, 아니면 내년에... 그때까지는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요.
결국 저는 작심삼일도 못했어요. 작심세번이었죠. 하지만 포기한 게 아니라 연기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치 영화에서 "다음 편에 계속" 이런 느낌으로요.
그러니까 여러분, 영어 전화는 정말 어려워요. 특히 처음에는요.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단지 제가 너무 성급했을 뿐이죠. 음... 그냥 지금 영어 기초 문법책이나 다시 펴야겠네요. 그리고 몇 달 후에 Sarah 선생님께 "I'm back!"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