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영어 공부: 지루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

포기하고 싶지만 계속하는 나의 킵고잉 프로젝트

by 공부수집호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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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책상 앞에 앉았어요. 영어 교재를 펼치고, 형광펜을 준비하고, 노트도 새 페이지로 넘기고... 모든 준비는 완벽했는데, 문제는 제 마음이었어요. "아, 또 이거 해야 하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거예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째예요. 처음에는 나름 의욕적이었거든요. "이번엔 다르다! 체계적으로 해보자!" 하면서 계획표도 예쁘게 만들고, 단어장도 새로 사고, 심지어 영어 공부 앱까지 깔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음, 솔직히 말하면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도 아시죠? 그 기분. 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하기 싫은 그 미묘한 감정. 마치 숙제를 하는 초등학생 같은 마음이에요. "왜 이걸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도,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죠.


오늘 공부할 내용은 현재완료 시제예요. have + 과거분사, already, yet, just... 이런 것들이죠. 처음 볼 때는 "오, 이거 중요한 문법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세 번째 복습하는 거예요. 그런데 왜 자꾸 까먹을까요?


"I have already finished my homework." "She has just arrived." "Have you ever been to Japan?"

이런 예문들을 보면서 중얼중얼 따라 읽어봤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문법적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거예요. 마치 기계처럼 문장을 읽고 있는 기분이었죠.


제 머릿속은 그때 마치 고장 난 라디오 같았어요. 소음만 나오고, 명확한 신호는 잡히지 않는... 그런 상태였거든요.


단어 암기는 더 심각해요. 오늘 외워야 할 단어가 20개인데, 벌써 5번째 단어에서 멈춰 있어요. "magnificent - 웅장한, 장엄한" 이걸 몇 번을 읽어봐도 머릿속에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냥 글자들만 눈 앞을 떠다닐 뿐이죠.


"왜 이렇게 재미없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는데, 영화도 재미있게 보는데, 왜 영어 공부만 하면 이렇게 지루한 걸까요?


아, 맞다. 드라마나 영화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주인공이 있고, 갈등이 있고, 해결이 있고... 그런데 영어 교재는 그냥 정보의 나열이에요. "이것은 현재완료입니다. 이렇게 쓰입니다. 예문을 보세요." 끝.


진짜였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하지만요. 저는 영어 교재 속 예문들에게 억지로 스토리를 만들어주려고 했거든요. "John has lived in Seoul for three years"라는 문장을 보면서, "John은 왜 서울에 왔을까? 고향이 그리울까?"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그것도 금방 지겨워졌어요. 억지로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피곤한 일이더라고요.


그러다가 며칠 전에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어요. 책상에 앉아서 교재를 펼쳤는데, 갑자기 "이거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의욕이 뚝 떨어진 거예요. 그 순간, 제 뇌 속 '공부 조종사'는 이미 조종간을 놓고 도망쳤고, 대신 포기본능 원숭이가 탑승한 상태였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하는 거지?" 유튜브에서 영어 공부법 영상들을 찾아봤어요. "영어가 재미있어지는 10가지 방법!" "지루한 영어 공부는 이제 그만!" 이런 제목들이 넘쳐나더라고요.


영상들을 봤는데, 다들 "영어로 드라마 보기", "좋아하는 가수 노래 가사 번역하기", "외국인 친구 만들기" 이런 방법들을 추천하더라고요. 분명히 좋은 방법들이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기초 문법 공부랑은 거리가 먼 얘기였어요.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었는데, 나는 굳이 "재미있는 공부법"을 찾으려고 했어요. 왜냐고요? 나니까요. 지루한 걸 못 참는 나니까요.


그러다가 어제, 문득 생각해봤어요. "재미가 없으면 어때?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공부가 재미있을 수는 없잖아요. 수학도 처음에는 지루하고, 역사도 외울 게 많아서 싫고, 과학도 복잡해서 머리 아프고... 그런데 다들 그걸 참고 하잖아요.


영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금은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그냥 꾹 참고 계속 하는 거죠. 마치 운동하는 것처럼요. 처음에는 힘들고 재미없지만, 계속 하다 보면 몸이 변하고, 그때서야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늘도 책상에 앉았어요. 여전히 재미는 없지만, "오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완벽하게 재미있게 공부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해서 하는 거니까요.


현재완료 시제를 또 다시 읽어봤어요. "I have studied English for two months." 아, 이 문장은 지금 제 상황이네요. 저는 정말로 두 달 동안 영어를 공부했거든요. 재미없게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문장만큼은 좀 와닿았어요. 제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니까요. "I have been bored with English study for two months." 이것도 맞는 문장이겠네요.


단어 암기도 다시 시작했어요. "magnificent - 웅장한, 장엄한" 여전히 재미없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접근해봤어요. "내가 이 단어를 외우는 모습이 magnificent하다"라고 생각해봤거든요. 좀 억지스럽지만, 그래도 조금은 웃음이 나왔어요.


내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어요. "위험! 위험! 지루함 경보!"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무시했어요. "그래, 지루해. 그런데 어쩔 건데?" 이런 마음으로요.


사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있어요.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도 영어 공부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때면,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져요.


하지만 그래도 계속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음,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해보고 싶은 거죠. 마치 지루한 영화를 보다가도 끝까지 보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랄까요?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어? 이 문장 이해된다"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는 작은 성취감이 들어요. 재미는 아니지만, 뿌듯함은 있는 거죠.


어제는 친구가 물어봤어요. "영어 공부 재미있어?" 그래서 솔직하게 답했어요. "재미없어. 근데 하고 있어."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그게 진짜 공부지. 재미있으면 그건 취미야."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공부는 원래 재미없는 건지도 몰라요. 그래서 '공부'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고요.


요즘에는 "언제쯤 재미있어질까?"라는 생각은 안 해요. 대신 "언제쯤 익숙해질까?"라고 생각해요. 재미는 없어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 같거든요.


오늘 공부 시간이 끝나고 교재를 덮으면서 생각해봤어요. "내일도 이렇게 지루할 텐데, 그래도 할 건가?" 답은 "응, 할 거야"였어요.


왜냐하면 지금 포기하면, 지금까지 한 두 달이 아까우니까요.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요? 한 달 더, 두 달 더 하다 보면 갑자기 재미있어질지도 모르고요.


아니면 재미는 없어도 실력이 늘지도 모르고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재미없는 공부라고 해서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재미없는 채로 계속하면 되는 거죠. 음... 그냥 지금 내일 공부할 페이지나 미리 표시해놔야겠네요. 재미없어도 준비는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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