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와 놀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면 친구집으로 전화를 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저 00인데요. ㅁㅁ집이죠? ㅁㅁ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 부모님들은 "그래"하시곤 친구를 바꿔주었고
가끔 장난기 있는 한 친구의 아버지는
"ㅁㅁ집 아닌데, 내 집인데~"라며 친구를 그냥 바꿔주는 법이 없었다.
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설렘(?)이 들어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각자의 손에 작은 휴대용 전화기가 생겨나면서
첨엔 너무 신기했던 카카오톡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통화보다는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는 게 더 편해지고 익숙해진 것 같다.
특히, 언젠가부터 학교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흠칫'하는 나를 발견한다.
좋은 소식으로 벨이 울리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이다.
"잠시 교무실로 모일게요."
"뭐 좀 확인하려고 전화했어요. 통화 가능하세요?"
그나마 내선번호일 때는 괜찮다.
수신번호에 외부전화번호일 땐
'누굴까'
'왜 전화할까'
몇 초간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다짜고짜 화를 낸다.
가정통신문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도 이 분의 요구사항을 쉬이 들어주지 않는다.
"교장실로 전화 연결해 주세요."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다.
'학교 다닐 때도 이렇게 혼나본 적이 없는데...'
교장실에 가니 통화 중이시다.
밖에서 기다렸다 들어갔다.
"교장선생님, 죄송합니다. 전화 오게 해서.."
자리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원하는 걸 들어주었다면 이런 상황이 안되었겠지?
-그냥 누구든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 지금 같은 죄송함과 억울함으로 힘들지 않겠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음이 많이 상한 것 같다.
그때, 브런치 알림음이 울린다.
1년 전에 내가 썼던 글에 댓글이 달렸다.
잊고 있던 내 글에
너무나도 따뜻한 댓글과 응원이 담겨있었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 감사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서 치유받았다.
오늘 하루 -100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1000을 받아서
오늘은 +900인 날인 셈이다.
누군가의 삶에 마이너스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아니라도 힘듦이 있을 텐데
그는 나까지 가세하지 않더라도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갈 텐데
굳이 나까지 마이너스를 주지 말자.
좀 더 나아가
나도 플러스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하며...
미소를 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며 삶을 살아내자고 다짐했다.
"아들, 오늘 엄마 민원 전화받아서 힘들었어."
"엄마! 말싸움 잘하잖아. 눌러주지 그랬어?"
"그게... 어렵네."
"누구야, 그 아줌마 전화번호 가르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