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의 세상
넷플릭스를 가입하지 않았을 때.
누구라도 만나면 "오징어 게임 봤어?"를 묻는다.
정말 '난리'라는 표현이 맞을까.
너도 나도 여기서도 저기서도 '오겜 오겜'이다.
얼마나 재밌길래
유튜브로 검색해 보았다.
아 귀여워라.
엄청 큰 여자 아이 로봇 인형이 보인다.
80년대 교과서에서 봤을법한 캐릭터다.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려오던 사람들이 멈추지만 누군가 중심을 못 잡고
'움찔'
"탈락" 그리고 총소리
죽었다.
그 뒤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향해 무자비한 사격(?)
'뭐지?'
참신한(?) 소재와 흥미로운(!) 줄거리는
아쉽게도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 봤어?"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할 뿐 굳이 보지 않을 이유를 사람들에게 말하진 않았다.
꽤 오랫동안 오징어 게임은 우리 일상에 퍼졌다.
'딴딴딴 딴딴딴 따라라라 따라라-'
한 번만 들어도 기억나는 이건 오징어 게임 OST가 아닌가?
왜 교실에서 이 소리가 들리지?
리코더 소리다.
리코더로 연주하는 OST는 바이러스처럼 복도 끝까지 번진다.
"너희가 왜 이걸 아는데??"
"선생님 오징어 게임 봤어요?"
"네가 어떻게 그걸 알아? 봤어?"
선생님과 공감대를 형성해 보려 시도한 질문인데 분위기가 싸-하다.
"아, 아니요. 다는 아니고 그냥 유튜브로 잠깐 봤어요."
'내가 본 그 유튜브 영상을 네가 다 봤다고?'
"선생님, 우리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게임해요."
"네가 어떻게 그 게임을 알아?"
"오징어 게임 봤어요."
"뭐??? 누구랑?"
"엄마, 아빠랑요."
'그게 가능해? 농담이라고 해줘.'
재밌다고 했다.
그래, 재미는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니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다. 너도 나도 서로 보라고 권했다.
재미있다고 전 세계인들이 열광했다.
재미를 못 느낀 나는 별종인가.
돈에 눈이 먼 사람들.
그들을 상대로 잔인한 게임을 하는 집단.
게임에 실패했다고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빨간 피의 향연.
어쨌든 재밌는 오징어게임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졌고, 덕분에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얻었을 거다.
그럴 수 있지. 성인들은 재미있을 수 있겠지.
그런데,
왜 아이들 입에서 "재밌다"는 말이 나오지?
왜 그걸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있지?
왜 그걸 자녀와 같이 본 거지?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4년이 지나고
오징어 게임 1을 본 남편에게 물었다.
"여태 안 보더니 보네. 어땠어?"
"뭐 그냥, 3편도 나왔다길래 궁금해서 봤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 세계도 그 드라마에 열광한 건 어떻게 생각해?"
"정서가 많이 바뀐 것 같아. 사람들의 정서가 이런 장르에 거부감 없이 오히려 재미를 느끼는 쪽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그래서 조금 걱정도 되고 그렇네."
매운맛의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제는 칼과 총이 자연스러운
사람을 죽이는 장면,
게다가 그 장면이 더없이 잔인해도
아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이다.
게임도, 영상도 매운맛이 인기가 많다.
배추도사 무도사를 보고 자란 우리 세대 친구들은
30년 뒤에야 오징어 게임을 즐겁게 봤다.
어릴 적
배추도사 무도사에게서
은비까비에게서
권선징악을 배운 내 친구들은 그나마 다행인 걸까.
지금 아이들은 어디에서 권선징악을 배우지?
효, 우정, 사랑의 가치를 어디서 경험하지?
"선생님이 특별한 만화를 보여줄 거야."
"오예!"
"대박!!"
"어떤 만화영화냐면~ 선생님이 어렸을 때~"
설명은 그만, 어서 보여주세요! 아이들의 눈이 기대에 가득 차 초롱초롱 빛난다.
'뭐지?'
'저 오래된 화면은 뭐지?'
'무랑 배추가 왜 이야기를 들려주지?'
얼굴에 미소는 사라졌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며 나름 진지하게 본다.
이런 만화.. 처음이지?
정화작용이랄까.
매운 걸 많이 먹은 몸속을 좀 쉬게 하자.
순한 음식으로 속을 편안하게 해 주자.
매운맛의 기류를 내가 어찌할 수 없겠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의 흐름이겠지만
선생님은,
너희가 조금만 더 늦게 경험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예쁜 거, 밝은 거 듬뿍 보면 좋겠다.
그리고 마음이 좀 단단해지는 나이가 되면
플레이와 스톱 버튼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나이게 되면
그때, 그때 경험하면 좋겠다.
"선생님, 오늘도 배추도사 무도사 보셔주세요!"
"오늘은 은비 까비를 만날 거야!"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