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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를 때 엉덩이를 받쳐주는

그게 진짜, 힘주는 거 아닐까요.

by 승아리

'번아웃'

얼마 전

대치동 한 원장의 온라인 설명회를 들었다.

원장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그래, 맞아"


'번아웃'은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상태이다.

나는 '번아웃'이 지나친 업무(공부) 진행으로 인한 피로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푹 쉬거나 잠으로 보충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번아웃'은 푹 쉰다고,

자고 일어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곧 '내려놓음'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자주 보았다.


'번아웃'은 '무력감'

대치동에서 공부하는 학생 중에는 진도가 매우 빠른 학생들이 있다.

초등 3학년에 중, 고등 수학을 할 수 있는 실력이 되는아이들이 있다면

해당 진도를 나가는 일반 학원을 다니기에 나이대가 이르기에 그룹을 형성하여 수업을 진행한다.

이 말에 특별히 거부감이 없었다.

학습력이 뛰어난 학생은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슷한 학습력을 가진 8명이 한 그룹이 되어 수업을 진행한다.

시작할 땐 같은 수준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 안에서도 1등과 8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강사가 물었다.

"어떤 아이가 번아웃이 올까요?"

엄마들이 말한다

"1등 하는 아이요."

"왜요?"

"그 안에서도 1등 할 정도면 얼마나 열심히 했겠어요. 지칠 수 있죠."

"1등 하는 아이는 그다지 지치지 않아요. 잘하니까요."

"번아웃은요. 뒤에서 3명 6-8등 친구들이 왔어요."

...

"6-8등 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었어요. 바로 맞벌이 가정 아이예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지치지 않게 도와주니까.

뛰어난 학습력을 가졌다 해도

나이대를 뛰어넘는 공부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마다 약점이 있고, 어려워하는 파트가 있다.

그때 1-5등 아이 엄마는

아이 옆에 매니저처럼 붙어 다니며, 빠른 시일 내에

아이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빠르게 파악하고, 그걸 곧바로 채워준다.

예를 들어,

아이가 '도형'파트를 유독 어려워하면

그 부분을 부모가 도와주든, 서브 과외나 학원을 통해 빠르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관건은

좌절감과 피로감을 최대한 덜어주는 것이다.


'노력하면 되잖아', '최선을 다해봤어?'라는 말

점점 수학 숙제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아이에게

-왜 시간을 계획해서 안 쓰니

부등식을 유난히 어려워하고 많이 틀리는 아이에게

-네가 뭐가 부족한 지 알잖아. 그럼 더 공부하고, 다른 문제집도 풀어보면 되잖아.

이미 방전된 상태로 퇴근한 엄마는 그저 아이가 더 노력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내 말대로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게 아닐까.

저 말들이 아이에게 도움은커녕 좌절감을 더 북돋았던게 아닐까.


'나는 아무리 해도 안돼'라는 생각이 들 때

학교에서 '번아웃'으로 휴직을 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래, 연구학교 이끌려면 얼마나 힘들어."

"휴직하고 쉬면 나아질 거야."

다들 그분이 일이 많아 피로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문득 그 해 선생님의 표정과 말씀이 기억난다.

"많이 힘드시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한다고 하는데 교장선생님은 계속 보완해 봐라. 창의적으로 써봐라.라고만 말씀하시니까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어요."

결국 그 선생님의 번아웃은 '좌절감'이었다.

해도 해도 모르는겠는 것.
내가 쓰고 있는 이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

그때 TF팀이 있어 함께 책임을 나눌 수 있었다면

교장선생님께서 마음에 들었던 창의적인 자료나 아이디어를 공유하셨다면

좌절감을 덜 느끼지 않았을까.


계단을 오를 때, 뒤에서 엉덩이를 받쳐주는 것

산을 오를 때, 헉헉대는 순간

뒤에서 엉덩이를 받쳐주는 남편의 손에 힘든 느낌이 사라진다.

더 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누구나 각자의 계단을 오르며 산다.

계단을 오를 때는 숨이 차다.

잠시 쉬어가기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페이스를 조절할수 있지만

헉헉대는 나를 보며

"쉬엄쉬엄 가"

"힘내, 파이팅!"

"매일 하다 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라는 말보다는 조용히 뒤에서 내 엉덩이를 받쳐주면 백배 천배 힘이 날지도 모른다.


너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질 때

네가 원해서 하는 일이잖아.

버텨야지.

힘내!

최선을 다해야지.

엄마는 원래 그런 거야.

이젠 하나도 힘이 되지 않는다. 더 피로해진다.

지금 공부하는 내용 어렵지? 엄마가 뭘 도와줄까?

토요일에 카페 가서 브런치 글 쓰고 쉬다와. 내가 애랑 놀게.

(카톡 기프티콘 도착) 친구야,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 싫지? 출근길 커피로 기분이 조금이라도 업되길^^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잘 놀다 와. 전화 안 할게.

애 학원비 많이 들지? 요새 당신 옷을 안 사는 것 같네. 내가 하나 사줄게. 나가자.

(화장실 문 앞에 놓인 수건) "엄마, 샤워하고 그걸로 닦아요. 새 수건이야."

요즘 새로운 일이 힘들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볼 때마다 힘내라고 보냈어. 마음에 들길^^

하나, 둘, 하나, 둘,

매일 오르는 계단이 곧 우리의 삶이라면

내 뒤에서 엉덩이를 받쳐주는 그 손은

내가 삶을 지속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주는 힘이 된다.

작든 크든 그 힘을 맛볼 기회가 없다면 참 외롭고 쓸쓸할 것 같다.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이웃이든

뒤에서 받쳐주는 그 마음이 점점 더 생겨나면 좋겠다.

나부터도 엉덩이를 받쳐주는 힘이 되는 말과 행동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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