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지 마세요.
-순례주택 중-
"엄마"
"왜?"
"꼭 솔직하게 말해야 돼?"
"뭐?"
"어른이 왜 솔직해? 마음을 좀 숨겨. 솔직히 말하는 인터뷰한 다음에 아파트 카페에서도 쫓겨났잖아. 거북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왜 진하한테는 길고양이랑 빌라촌 애들 얘길 같이 했어. 진하는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그 얘긴 또 왜 하는데? 아후 성질 나. 솔직히 말해서 내가 빌라촌에 대해서 뭐 틀린 소리 했어?"
...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림이 엄마는
모든 말 앞에 "솔직히 말해서"를 붙인다.
평소에도 이 "솔직히 말해서"는 거북함을 불러일으키기 일쑤인데
뉴스 인터뷰에서 빌라촌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사고(?)를 친다.
'생각은 자유고, 내 생각이 그런데 뭐.'
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 솔직함은 언제나 옳고, 미덕으로 배웠다.
그러나 때로는
'솔직히 말해서'가 관계를 잃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주저앉게 할 수도 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1편 중-
새벽 6시에 회사에 도착하는 김부장.
휴가 대신 회사에서 일을 선택하며 살아온 김부장이다.
그런 김부장은 임원 승진에 실패하며 스스로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믿고 따르던 상무로부터 "솔직히 말해서"를 듣게 된다.
그간 상무가 봐 온 김부장의 부족했던 부분들.
난 이랬는데, 넌 이렇더라.
난 이래서 임원이 되었고
넌 이걸 극복하지 못했지.
결국 김부장의 임원 승진은 어렵게 되었지만
상무의 너무 솔직한 김부장에 대한 평가는
왜일까.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한 사람에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 직원에게
결과가 안 좋으니 그 이유를 말해주는 지금의 타이밍도 미웠고
너무너무 솔직한 한 사람에 대한 평가에
마치 내가 듣고 있는 듯 가슴이 콕콕 쑤셨다.
상무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니까 이런 이야기해 주는 거야~ 참고해서 보완하고 살아.'
50대에
소위 좌천된 사람이 무슨 기회를 또 얻어볼 에너지가 있다고
저 '솔직히 말해서'를 감사히 여길까...
학교에서 수 년간 아이들과 함께하며
난 얼마나 솔직한 선생님이었을까.
지인들에겐 솔직함으로 거만을 떨지 않았을까.
내 가족들에겐 또 얼마나 친절하게 솔직했을까.
내 '솔직히 말해서'에 상처받은 사람이 분명 있을 거다.
'솔직히 말해서'를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
얼마나 적당히
또 상대와 상황에 따라
솔직함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함에도 우리가 귀에 닳도록 듣는
'배려'가 필요하다.
'숙고'가 필요하다.
배려와 숙고가 없는 솔직함은
'팩폭(팩트폭격 또는 팩트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수림이 말대로
"어른이 왜 솔직해? 마음을 좀 숨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