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기 모임에서-
"나는 학교 다닐 때 리코더를 젤 잘 불었거든. 근데 리코더 잘 부는 걸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나는 철봉에서 앞돌기하면 애들이 다 구경 왔어. 근데 그걸로 뭘하고 살지?"
"나는 6년 내내 릴레이 선수였어. 근데 교사가 되었네."
내 친구들은
그냥 수능이었다.
내신은 큰 의미가 없었기에 그래도 수업 시간에 그나마 숨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매점에 달려가 새우깡과 빵빠레를 사 먹으며 웃었던 기억
야자 시간에 서로 싸왔던 간식을 나눠먹던 기억 등
지나고 보면 학창 시절이 공부로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2025년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키우면서, 또 학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또 내 주변 입시생 자녀를 둔 동료들을 보며
공부를 하는 아이나,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나
그냥 모두 짠한 마음이 든다.
요즘 아이들의 공부에 대해 생각을 세 가지로 정리하자면,
하나,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잘하는 것이 하나씩 있다.
가만히, 한 명 한 명, 찬찬히 관찰하면 보인다.
캐릭터를 기막히게 따라 그리네.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참 야무지게도 하네.
독서노트를 정말 잘 쓰네.
쟤가 던지는 피구공엔 절대 맞으면 안 되겠구나.
참 성격 좋아. 그러니 애들이 다 좋아하지.
분명 잘하는 게 하나씩 있다.
그 아이만의 태어날 때 받은 선물이 있다.
그런데, 그걸로 뭘 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둘,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유리한 시스템이다.
솔직히 공부도 재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쉽게 이해하고, 습득하고, 수학 문제를 잘 푸는 아이가 있다.
김태희의 얼굴이 노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 듯
그냥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지적 능력이 있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에서, 입시에서, 또 어디서든
유리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반대로 그렇지 아니한 아이들은 너무 불리하지 않은가?
셋, 진심으로 원하는 아이들도 많다.
"어떤 아이들이 의대가?"
"과학자 되려고 공부했는데 막상 점수가 너무 잘 나온 애들"
요즘 이슈인 초등의대입시반.
원하지 않는 아이를 부모의 욕심으로 꾸역꾸역 보내는 건 문제이지만
아이들 중 진정 의사가 되길 원해 그 길을 선택한다면?
현재 의대 입시는 상상 이상이다.
수능에서 4개 이내 틀려야 한다는데, 5개-6개 틀리면 의대 갈 실력이 안 되는 걸까?
수능에서 10개 틀렸지만, 의사의 사명감이 더 절실한 아이라면 누가 더 적합한 걸까.
한 다큐에서 의사가 되고 싶어 하루 종일 공부를 선택한 초6 아이의 말에
기특함, 짠함, 또 복합적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 길의 폭을 넓혀주면 좋겠다.
지난주, 학원 설명회 중 원장의 기억에 남는 한 마디.
"지금 10대는 망한 세대예요."
어떤 의미인 줄 알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며 산다.
주변의 친구들과 끝없이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아이들이 엎드려 있는 건
게임을 하는 건
어쩌면 두려움 때문이다.
이 험한, 빡빡한 경쟁에서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더 가열된 경쟁과 비교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또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