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좋은 점 하나가 있다면

by 승아리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한 달 내내 아니 그 이상을 같은 티셔츠만 입고 오는 아이를 보며

"민규는 왜 저 옷만 입고 올까?"

"민규엄마는 옷을 안 사주는 건가, 왜 옷 하나만 입히지?"


그때 나는 6학년 담임

우리 아이는 초2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고 엄마말 잘 듣는 아이였지


오늘 입을 옷을 바닥에 꺼내놓으면

고대로 입고 가고

학교 갈 땐 츄리닝을 입히지 않는다는

나만의 괜한 자부심(?)도 있었지.


그 아이가 초6이 된 어느 날 아침

무릎 부분이 해져 하얗게 일어나는 검정 바지를 똘똘 말아 가방에 넣어 출근한다.

세탁기 안에 넣으면 꺼내 입고 갈 테니

내가 왜 이 바지를 돈 주고 샀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봄과 여름사이에 입는 잠바를 9월부터 두 달간 내내 입고 다닌다.

"너 이 옷만 입고 다니면 선생님이 욕해."

"너 학원에서 옷 하나만 있는지 알겠다."

아무 소용 없다.


이 잠바는 내 가방 속에 넣지 못한다.

한 번 당해본 아이는

자기 전, 발 밑에 옷을 고이 접어 사수한다.

저 옷을 꺼내오려면 아침부터 전쟁을 치러야 할터.


내 아이는 여느 아이와 다를 줄 알았던

나는 다른 엄마와 다르게 해낼 줄 알았던

오만함이었다.


민규 엄마도 그 옷 하나만 사주지 않았을 거다.

민규 엄마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지 않았을 거다.


지금도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중고등학생들

8월 한 여름에도 검정 긴팔 후드티를 입고

11월 겨울 옷을 꺼내는 지금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로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들을 보며

예전같이 '쟤네 왜 저래'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다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쟤네 부모님 마음이 내 마음과 연결된다.


지나고 보니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오만함을 부리며 살았을까 싶다.


누군가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 하나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이유가 있겠지'

'내가 아는 다가 아니겠지'

'나도 저 상황이 돼 보면 또 모르는 거야'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드는 거.

그래서 눈꼬리는 내려가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여유가 생기는 거.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게 겸손인가.

잘 모르겠지만

내 안에 이런 여유가 생기는 게 나쁘진 않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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