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낫다

by 승아리

남보다 낫다.


그럼에도 '가족'의 힘을 정의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래도, 가족이 남보다 낫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없이 열두 살에 왕위에 오른 왕.

요즘 영화의 흥행으로 거론이 많이 되는 조선의 여섯 번째 임금 단종이다.

열일곱에 가족인 삼촌에 의해 죽게 되고, 게다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말에도

엄흥도라는 남은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까지 치른다.

그리고 가족을 데리고 살아온 곳을 떠나 평생을 숨어 지낸다.


240년이 지나서야 그의 공이 인정되었다고 하나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을 그와 그의 후손들의 삶이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감동받고, 흥행하는 이유는

단종의 가엾은 삶과 그를 지켜낸 엄흥도라는 사람에 대한 감동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고 한동안

가족이 남보다 낫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정말일까.

단종에게 너무 폭력적인 말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세상 곳곳에 이 말이 적용되지 않은 삶도 많으리라 싶다.


피를 통하여 내리 가족이 되기도 하지만

남과 남이 사랑으로 이루어 가족이 되기도 한다.


그 가족 안에서 평온과 행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가족에게 말하지 못할 이야기가 점점 생기기도 하고 관계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어릴 땐

무슨 일만 생겨도 엄마, 아빠를 찾던 아이들도

부모님께 말하면 걱정만 될 테니 말할 수 없는 이야기로 입을 다물게 된다.

형제, 자매도 각자의 가정이 생기면 입장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남에게 말하는 게 더 편하기도 하고

남에게 위로받는 게 힘이 될 때가 있다.


외국에 있는 딸을 그리워하는 친구 어머니와 자주 전화통화하며 웃음 짓게 하는 친구도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가 어긋날까 똘똘 뭉쳐 옆에서 챙기는 중2 무리들도

걸스카웃을 하고 싶은데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가입비도 내어주고 대원복도 사주는 담임 선생님도

부모님이 늦게 귀가하는 집, 저녁을 먹이고 부모님이 퇴근할 때까지 자신의 집에 있게 했던 앞집 아줌마, 아저씨도

남모를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고, 주기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주는 사람들도

이 모두 다

남이 아닌가.


남에게서 받는 위로와 위안이 결코 얕거나 가볍지 않다는 것을

점점 그 무게의 가치를 깨달아가게 된다.


단종과 엄흥도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함께한 시간, 짧다면 짧은 4개월의 시간에도 목숨을 바쳐 그를 끝까지 지켰다면

그는, 단종을 사랑한 먼저 간 가족들의 선물이었을까.


가족이 남보다 낫겠지만

가족보다 나은 남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한평생 내 옆에 그런 남을 두는 것도 참으로 가치 있다는 것을,

나 또한 그런 남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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