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동생 질투 안 해?"
후배의 품 안에 안긴 5개월 아기를 보며 묻는다.
순하디 순하다고 온 동네 소문난 올해 다 섯살 첫 째라도 동생 앞에서 별 수 있을까.
"아직이요. 저희 정말 노력 많이 했어요."
"어떻게?"
"조리원에서 집에 와서도 아기는 거의 작은 방에 두고 첫째랑 시간 보냈어요. 잠도 아기는 작은 방에서 자게 하고, 저는 첫째랑 같이 자구요. 그리고 최대한 둘을 안 만나게 했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첫째가 동생을 더 보고 싶어 하고 찾더라고요."
"보통 첫째가 둘째한테 가서 뭔가 실수할까 봐 못 가게 하고 둘째를 보호하잖아."
"맞아요. 그런데 저희는 일부러 둘을 더 떼놓으니까 오히려 동생을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리고 첫째가 한창 혼날 행동을 많이 하는 시기잖아요. 그런데 동생은 아무리 울어도 안 혼나잖아. 왜 자기만 혼나지 생각하고 동생이 미울 수 있잖아요. 그래서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혼내지 않았어요."
"좋은 생각이네."
"또 사실은 엄마가 힘들다고 주말에는 첫째 보내라고 하셨는데도 한 번도 안 보냈어요. 동생 집에 오고 첫째만 엄마집에 가면 일부러 자기만 보낸다고 생각하고 혹여나 소외감 들까 봐서요."
"나라면 주말마다 보냈을 텐데... 역시 현명하네."
'네가 형이잖아.'
15개월 세상 빛을 먼저 본 내 첫 조카도 동생이 태어난 순간부터 첫째로서의 기대 행동을 익숙히 들었어야 했다.
언니가!
오빠가!
누나가!
내가 언니하고 싶댔나.
내가 언제 형 시켜달랬나.
첫째들 입장에선 충분히 억울할법하다.
다정하고 든든한 첫째의 모습을 바라는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지만
갓 태어난 둘째를 안고서도
첫째를 최우선하고 배려하는 부부의 사려 깊은 행동에 역시 남다른 후배구나 싶었다.
요즘 부쩍
아이가 커갈수록 더욱 아이를 탓하게 된다.
당연히 여겼던
당연히 강요당했던 역할과 배려에
어쩌면 아이들은
그 긴 시간을
싫어도, 서운해도 꾹 참아왔을 것이다.
나는 엄마 입장에서 아이에게 얘기할 때가 많다.
아니 거의 거진 그렇다.
아이 입장에서 고민해 봤는지
아이를 얼마나 배려해 보았는지
아이 입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해 보았는지
아이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말과 행동을 의식적으로 해왔는지
내가 좀 더 사려깊고
세심한 부모였다면
지금 내 아이는 또 다른 모습이겠지..
후배를 배웅하며
많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