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돌고래는
춤을 추고 싶어서 춤을 추었을까?

칭찬과 목적 흐림

by 김의목

우린 평소 ‘칭찬은 돌고래를 춤추게 한다’라는 말을 일상 속에서 자주 들어왔다. 그만큼 칭찬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기를 부여하고 빠른 변화를 즉각적으로 가져오는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minus)는 없는’, 안 쓰면 손해인 교육적 도구로 인간 사회에서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나는 최근 들어 칭찬은 과연 무조건적으로 사용되야하는, 안 쓰면 손해 보는 도구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고, EBS 교육대기획 초대형 교육 프로젝트를 통하여 이러한 생각들을 구체화하게 되었다.


본래 칭찬은 상대방에게 상대방의 좋은 점이나, 행한 일들에 대하여 훌륭함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칭찬은 달디 단 당과와 같아, 칭찬을 받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고무되도록 하여 좋은 행위를 하는 동기를 부여받도록 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렇기에 좋은 행위에 있어서 칭찬을 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은 틀림이 없으나, 우리는 칭찬의 달콤함에 속아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오늘 글로 정리해보고자 한 칭찬의 목적 흐림이다.


물론, 앞서 말하였듯 칭찬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기를 부여시킨다는 것은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것보다 칭찬을 염두하지 않고 행해진 행위에 대하여 칭찬이라는 보상을 받게 됨으로 인하여 그 순간부터 ‘특정한 임의의 목표 달성’이라는 행위의 기존 목적이 ‘칭찬이라는 보상을 받기 위함’으로 흐려지게 되는 역효과[1]를 낳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칭찬받기 위함이 행위의 목적으로 흐려져버린 이상, 행위를 행하도록 장려하고, 이에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여 습관화시키려 하는 교육자의 목적과는 다르게 행위는 자판기의 동전 마냥 칭찬을 뽑기 위한 토큰으로 전락해버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지만 본래의 목적에서 탈선하도록 만드는 이 칭찬이라는 부담스러운 도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 불편한 질문에 대하여 이를 묵인하는 행위는 교육자로서 행해서는 안될 기만이라 답하고 싶다.


나는 인간이 이때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인간이 이때까지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문제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을 찾으려는 이 태도에서부터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태초의 인간은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칭찬도, 이성(理性)의 선망도 아닌, 생존하겠다는 명확한 본래의 목적에 근접해 있었기에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발명할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칭찬이 지금처럼 남발되지 않았던 이전의 시대가 지금보다 성취감과 기쁨을 적게 느꼈다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아니다. 목적을 달성함에 따라 그들의 뇌에서는 도파민과 같은 화학적 물질들이 분비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 역시 동일한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칭찬의 가장 좋은 대상은 행위의 결과에 맞춰질 것이 아니라, ‘행위의 결과를 보고 학습자가 느끼는 성취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에 초점에 맞춰져야 한다고 보았다.


더 이상 행위의 결과에 칭찬을 더함으로써 본질적인 목적을 흐리기보다는 교육자들은 칭찬을 학습자들이 느끼는 성취감을 진정하고 순수한 성취감으로써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그 성취감을 느꼈다는 것을 대상으로 칭찬을 사용하게 된다면 칭찬이 ‘행위 프로세스에 개입되어 목적을 흐리는 목적 흐림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임과 동시에, 한국의 돌고래들이 조금이나마 다시금 자신들의 행위의 가치를 내면에서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1] 이를 잘 설명하는 실험이 <EBS 교육대기획 초대형 교육 프로젝트: 학교란 무엇인가>의 P.61에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학위에 열광하는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