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 Starter

공교육과 아동교육

by 김의목

아동교육에 있어서 책 읽기는 참으로 중요하다. 윈스턴 처칠, 에디슨, 아인슈타인 그리고 안데르센 모두 ‘꼴찌’ 또는 ‘저능아’라는 사회에서 판단하기에 ‘공부는 안 하고 놀기 좋아하는’ 혹은 ‘나쁜’ 아이들이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독서를 통해서 내면에 잠자고 있던 그들의 재능과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부모’라는 학습 보조자의 존재이다. 저 위인들이 있었을 당시 사회에는 분명히 그들 말고도 저능아로 분류된 이들이 있었을 터이지만, 왜 우리가 아는 저 위인만이 자신들의 진정한 재능과 가치를 찾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였을 때, 내 생각은 한없이 ‘좋은 부모의 존재’로 향한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주장하는 바가 윈스턴 처칠과 안데르센은 노력하지 않아도 부모에 의하여 위인으로 거듭났다는 말은 아니다. 캠프파이어를 본 적이 있는가? 주위를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고, 배불리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존재는 처음부터 그러한 존재가 아니었다. 조그마한 불꽃도 없는 정말 초라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몇 가지 나무 조각이 바로 그들의 처음이었다. 그들을 믿음직스러운 크고 따뜻한 캠프파이어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에겐 Fire Starter, 즉 불을 지피는 도구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1].


하나, Fire Starter가 붙여준 그 불도 아이에게 있어 그렇게 따뜻하고 크지는 않았다. 흙먼지 몇 알갱이에, 사람의 발길질 몇 번에도 힘없이 꺼져버릴 불이었지만, 흙먼지가 덮지 않게 몸으로 바람을 막고, 누군가의 발에 꺼지지 않게 조그마하고, 형편없는 그 불씨를 계속해서 불을 지피는 이가 보호한 덕에 그들은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다.




나는 이를 보며 작은 불씨에서 믿음직스러운 불로 거듭난 것은 계속해서 크기를 키워가는, 사람으로 치자면 발전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나, 그 조그마한 불씨를 지펴준 이가 없었다면, 이는 우주에서 발생할 수 없었던 현상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내 생각은 처음의 질문에 있어서 한없이 ‘좋은 부모의 존재’로 향한 것이다.


나는 모든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온전한 가치와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이를 사회에 증명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모두가 평등하게 그 권리와 기회를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만, 비교적 쉽게 이루어질 경제적 평등도, 사회적 평등도 아닌 부모와 그 가정환경이 가장 아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하다(Critical)고 생각한다 [2].


그렇다면 저 순수하고 한없이 많은 재능과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옆에 Fire Starter의 역할을 하지 않거나, 또는 이를 수행하지 못하는 부모가 있을 경우에 우리 교육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복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의 교육에 있어서 국가는 어떠한 대처를 해야만 하는지 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요구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를 글로 정리하기 위해서 써보고자 한다.




국가는 그 누구보다도 그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에게 있어서 보편적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국가는 부모의 ‘역할의 불충실함’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에 개입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현실적인 방안으로 만들기까진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모될 것이라는 점은 피해 갈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헌법과 다른 하위 법들을 제정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음에도, 국방과 나머지 산업들의 기반을 다지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음에도 모든 것들을 이루어 낸 것처럼, 부모라는 아이의 보조자 역할에 있는 이들의 역량이 기준보다도 낮을 경우를 대비해 국가는 필수적 복지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독일, 핀란드 등 교육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지만, 한국의 사정은 그리 좋지 못하다. 혼자 읽는 책과 부모가 읽어주는 책은 다른 의미와 다른 차원의 효과를 불러일으킴에도 다양한 이유들로 많은 부모들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가 피곤해서 쥐어 주는 스마트폰과 같은 오락기기들로 인하여 아이들로부터 멀어지게 된 책들을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강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것인데, 내가 생각하는 ‘기준 미달’의 보호자들은 아이들에게 있어 보육과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사랑은 물론이고 관심조차 주지 않는 이들이나, 폭력에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노출시키는 이들로, 아이들의 교육과 발달에 있어 마이너스 작용을 하는 이들에 대하여 나는 국가가 과연 덧없는 가정폭력 캠페인 만을 실시하여 모든 가정이 평화로울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을 온전히 기준 미달의 보호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하였다.




급진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교육은 학습자와 사회의 분리에서 효과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나쁜 외적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들이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벗어날 수 없다는 특수성을 띄는 가정과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응당 국가가 나서서 Fire Stater의 역할을 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공교육의 범위를 넓혀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문화센터들을 연계하여 고통받는 아이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환경에 더 많이,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의 시간에 있어서 전체를 노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서 아이들에게 스토리텔링 프로그램부터 시작하여 역할극, 조형물 만들기, 독서 후 생각 정리 등 독서논술 프로그램들을 제공하여 아이들의 교육과 발달에 있어 국가가 나서서 불씨를 지펴주는 것이 국가가 자신들의 의무를 다 하는 길이라 나는 생각한다.


[1] 캠핑 또는 생존에 있어서 애용되는 불을 지피는 도구이다. 이 글에서 Fire Starter는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방금 설명한 도구의 의미이며, 두 번째는 불을 시작하는 이, 즉 불을 지피는 이를 뜻한다. 영미권에서는 자주 사용되는 친숙한 의미이지만, 한국의 독자들은 그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적어보았다.


[2] 다소 그것이 중요함(Important)를 넘어선 치명적(Critical)에 가깝다고 생각하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날의 돌고래는 춤을 추고 싶어서 춤을 추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