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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바바 Sep 18. 2023

너의 계절을 기억하며

녀석은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나를 힐끗힐끗 보곤 했다. 웬지 눈치를 보는 듯한 눈빛이 영 석연찮았다. 뭔가 켕기는게 있나? 오호라 학기 초 상담 1순위는 저녀석부터다. 여지없이 그 녀석을 불렀다. 웬걸 순수하기 짝이 없다. 그냥 공부에 뜻이 없단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고 싶은 녀석은 엄마의 간청에 인문계고등학교를 진학한 터였다. 한부모 가정이었으나 집은 부유하고 형은 잘해주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놈, 위태로워 보였다.

학생들은 그냥 딱 두 부류로 나뉜다. 학교 잘 다닐 놈, 잘 안다닐 놈. 아무것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잦은 지각과 조퇴, 엎드려있기가 녀석의 주 특기였다. 어느 때 녀석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학교를 안다닐려고 한다며 제발 고등학교만 졸업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러나... 녀석이 나에게 맡겨진 건 고1. 앞으로 남은 두 해 동안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교직 경력 5년차. 아직은 특별한 방법이랄 것도 없는 열정만 가득한 초짜 담임. 그래 저 녀석 내가 맡고 있는 1학년 만이라도 다 마치게 하자. 그렇게 한 해 두 해 잡아두면 언젠가 제 풀에 지쳐 졸업이라는 걸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 맡겨진 녀석의 1년을 책임지고 싶었다. 항상 옆에서 좀 괴롭혔다. 귀찮게 굴었다. “선생님 집에 갈래? 내가 직장 여성이잖니, 집이 엉망이거든. 니가 와서 선생님의 집안 일을 좀 도와줄래? 선생님 애도 좀 같이 봐주고. 철없는 우리 애들이랑 좀 놀아도 주라”

내 제안에 녀석이 올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에게게 녀석이 따라온다 나를? 같이 가겠다며. 오호 녀석봐라. 작전 성공!

집에 온 녀석은 내가 시키는 일을 척척 해내었다. 방도 닦아주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 일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저 녀석은 나의 밀린 집안 일만을 해주었다. 간간이 녀석의 땀방울에 나는 머쓱해졌다. 진짜 돈 안주고 일을 시키는 악덕업주가 된 기분이 들었지만 행여 속깊은 대화라도 나눌 수 있을까 싶었던 나의 최선이었다. 하루는 그렇게 잡아두고 또 하루는 야단도 치고 또 하루는 달래도 가며 그렇게. 원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던 녀석은 1년을 넘기고 2학년으로 진급을 하였다. 이후 들려온 소식은 녀석의 자퇴 소식이었다. 2학년으로 진급을 하고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자퇴했다고 했다. 녀석의 선택에 나는 안타까웠다. 졸업을 못시켰다는 게 맘이 아팠다. 5년이 지난 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을 졸업했고 나를 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나는 녀석의 마지막 학교 담임 선생님이었다. 횟집에서 녀석이 사준 모듬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서 나는 그 녀석과 보낸 나의, 우리의 1년을 안주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스스로 먼 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연수를 받으러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차량 뒷좌석에 앉아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참을 수 없는 먹먹함이 순간 밀려왔다. 가슴이 저렸다. 그 날이 녀석과 나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녀석은 나에게 그렇게 따사로운 마음을 전해주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 녀석과 함께 했던 시간들, 함께 했던 소주 한 잔. 나는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좀 더 보듬고, 좀 더 살폈으면, 그런 선택의 지점에 이르지 못하도록 조금 더 라는 후회와 미련으로.


세상이 교사와 학생을 수요와 공급자로 단정한다.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와 그 서비스를 받는 자.

스승과 제자는 경제학이 아니다.

교실은 그리고 교육은, 함께 만들어가는 유년의 기억이고 추억이다.

너와 내가 만났던 아름다운 시절. 수년이 지난 이제야 나는 생각한다.


00아 거기서 잘 있지? 너도 나를 기억해 주겠지? 우리 함께 했던 시간들을?

그리고 널 그리는 너의 마지막 담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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