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으로, 군대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기대하며 아이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좀체 참을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날들이 벌써 그리웠다. 너희들이 보고싶을 거 같다고 말하지 못하는 담임을 보며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괜찮으시냐며 등만 두드려 줄 뿐이었다. 학령기와 입시를 무사히 마친 아이들이 마냥 대견하였으나 헤어짐의 순간은 슬펐다.
그해 8월, 에어컨도 지쳐가는 폭염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책상과 씨름해야 했다. 고3의 건장한 아이들에게 불가능하고도 가혹한 일이었다. 며칠 전 신문기사에서 청소년들의 운동시간이 노인들의 운동시간보다 작다는 통계를 본 터였다.
“애들아 여기 계곡으로 우리 MT가자!”
“무슨 MT예요. 에이~” 라면서도 주뼛주뼛거리며 아이들은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모둠을 나누고, 먹거리를 정하고, 후라이팬이며 집기들을 누가 가져올 것인가를 정하느라 가위바위보가 한창이었다. 나는 지켜본다. 말은 꺼냈으나 이 녀석들 나를 따라나설지 의문이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모두 끝나는 날 아이들이 모이더니 제법 한 소대가 되었다. 후라이팬을 둘러매고,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나눠든 아이들은 버스를 탔다. 모두 체육복을 입으라는 담임의 전체주의적인 방침에 따라 아이들은 추레한 학교 체육복을 입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단체로 야유회를 온 듯한, 피곤에 쩐 얼굴은 영락없이 입시 노동에 혹사당한 노동자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이윽고 버스는 계곡 앞에 당도했고 아이들은 집의 세간들을 다 들고 온 듯한 짐들을 메고 서둘러 내렸다. 그리고 수영과 다이빙을 해도 좋을 만한 계곡의 핫플을 찾아 헤맸다. 시골 촌놈들은 놀기에 적절한 장소를 본능처럼 찾아내었다. 마침내 여기저기서 훌러덩, 물속으로, 찬란한 여름의 햇살 아래에서, 입시의 스트레스를 벗어던졌다. 그렇게 한참을 멱을 감은 아이들은 아이스박스에서 손질이 잘된 생막창과 생수병에 담아온 소주를 꺼냈다. 조금씩 나누어 마신 그 생수로 알딸딸해진 아이들과 나는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수전증이 있다고 고백한 녀석의 꿈은 소방관이었다. 성적은 한참을 벗어나 있었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떨리고 흔들리는 손으로 겨우 들고있는 젓가락으로 게다가 집어든 라면가락을 입에 힘들게 가져가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소방호수는 어떻게 잡고 불을 끄겠냐며 우리는 함께 한참을 웃으며 놀렸다.
우리는 각자의 꿈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제 조금 있으면 훨훨 날아갈 아이들, 녀석들의 머리 위로 태양이 부서져라 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녀석들의 이야기는 태양보다 더 뜨거웠다. 햇볕에 타들어가는 바위 위에서 한참을 누워 몸을 말리던 녀석,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야자 내내 울던 녀석, 군인이 꿈이어서 몸과 마음 전체가 정의에 불타던 녀석,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로 학급 벌금을 자그마치 10만 원이나 납부한 부르주아 녀석, 오랜만에 공동의 행사에 참여한 이기적인 1등 녀석까지. 그 날은 모두가 함께였다. 담임이 여자라 함께 물속에서 몸을 부대끼지 못했던 것만이 아쉬웠다.
그 해 우리의 입시 해방일은 단 하루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기억해 줄 터였다. 햇살은 뜨겁고 바람은 시원한, 우리가 함께했던 그 입시의 계절을. 그리고 가슴 뜨거워지던 생수까지.
대입의 힘든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그날 하루를 떠올려본다. 인생의 세간살이를 짊어지고 길을 찾아, 어떤 곳이 그들의 꿈이 담길 장소인지 본능처럼 또 알아낼 것이다. 나와 함께 했던 제자들과 세상 모든 고3, 너희들의 꿈을 추앙한다. 그 여름 우리들의 입시 해방 일지는 여전히 유효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