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를 진학하였지만 딱히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학을 졸업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고 또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바로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학과였기 때문일 뿐이었다. 6남매가 뒤엉켜 지내는 두어 칸짜리 방에서 복닥거리며, 지금은 추억이라 할 수 있는 삶의 편린들이 남았지만 그 시절 나는 그냥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찾아야 했을 뿐이었다. 엄마는 키도 째깐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선생님뿐이라며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주셨다. 단호하고도 현명하고도 지혜로우신 우리 엄마. 나는 엄마 말을 잘듣는 자녀로서 공부에 매달려 사범대로 진학하였다.
그러고도 한동안 선생이 아닌 다른 공무원직을 해보려 떠돌았다. 문득 대학 4학년 교생 실습을 나가고 나서야 나는 선생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아이들이 보내주는 따뜻한 애정은 실로 누구든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마의 지대였다. 실습을 마치는 날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아이들이 한 자 한 자 써서 만들어준 편지가 소복히 담긴 그 앨범을 지금도 소중하게 가지고 있다. 지금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 학생들의 나에 대한 사랑 고백을 들춰보며 미소짓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덧 교직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던 초심으로 돌아간다.
졸업을 앞두고 치른 교원임용시험에 나는 보기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으나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겸손을 알려준 첫 변곡점이었다. 훗날 나는 이 시기 불합격과 심정 그리고 다시 재도전하는 과정을 아주 아주 드라마틱하게 재구조화하여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학생과 처음으로 조우하는 시간 나를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MSG 듬뿍 담긴 이야기를 아이들은 무척 재미있어하며 경청해주었다. 선생님의 쓰라린 실패담이 자신의 일이 된 것 마냥 함께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두 번째 도전에서 드디어 시험에 합격했다며 뒷 머릿결을 날려 한번 으쓱해 보이는 순간 아이들은 기냥 박수를 치며 나를 치켜 세워주었다. 교실에서 한 순간 나는 역전의 용사며 인생을 반전시킨 영웅이 되었다. 그냥 시험에 떨어졌다는 불합격 스토리일 뿐인데도 말이다(미안 얘들아 ㅎ).
어쩌다 교직에 들어선 나는 어쩌다 아이들에게 푹 빠져 정신없는 세월을 달려오게 되었다. 인생에서 우리는 아주 수많은 '어쩌다'를 만난다. 어쩌다 오게 된, 어쩌다 걷게 된, 그냥 어쩌다 하게 된...
모든 일에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길을 가게 되었고 그 길에 들어섰지만 먼훗날 나는 뒤돌아보면 말할 수 있을 것같다. 모든 순간이 나를 그리로 인도하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