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은 아침 바쁜 출근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나와는 달리 작은 애의 등교 준비는 느렸다. 느릿느릿 어그적어그적. 천천히 와서 밥상에 앉는 아이. 초등 1학년 남자아이. 그 모습도 나는 귀엽기만 하다. 바라보는 나에게 아이가 말한다. 느릿한 목소리로. “엄마.. 나 전학갈 수 있어요? 전학가면 안되요?” ‘엥? 이건 무슨 소리람. 뭣이라고?’ 아이의 눈빛은 순간 예민하게 변했다. 약간 진지하기도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그런 표시를 내면 안되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인 척 했다. 응? 같은 동네에 있는 학교끼리는 전학갈 수 없는데. 안돼. 얼른 밥먹어. 뭔소리하는 거니. 그렇게 1차전이 끝났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이건 전학이 문제가 아니구나. 분명히 뭔가 있구나...
저녁 퇴근 후 아이를 앉혔다. 전학은 왜 가고 싶은지, 학교에 뭔 일이 있는지 물었다. 얘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애들이 부모에게 뭔 얘기를 하냐고, 그것도 남자애들이 내가 알지. 그렇지만 얘야 전학을 가고 싶어하는 원인을 알아야 전학이든 뭐든 할거 아니냐. 라는 마음의 소리가 눈빛에 담겼다. 그 눈빛을 읽었는지 그래서 나온 아이의 첫마디는 ‘괴롭혀요’였다. 순간 급격하게 내 마음이 출렁였다. ‘이런!! 우리 아들을 누가 괴롭혀!! 가만 안둘테다.’
“자꾸 때리고 도망가고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해요.”
“도대체 누구여~!!”
“같은 유치원 다닌 00이예요...”
“같은 유치원을 다닌 친구인데도 그런다고? 알었다. 가보거라.”
초등 1학년.
첫 학령기 진입을 시켜놓고 엄마의 마음은 불안 그 자체였지만 생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가 스스로 서겠지라는 믿음 반으로 학교를 보냈다. 담임은 유치원에서만큼 친절하지 않고 교실은 유치원 교실보다 투박하다. 시간 맞춰 공부하고 시간 맞춰 쉬어야 하고 20여명이 모인 학급이라는 공동체 생활에 아이들은 갑자기 적응해야 한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이 때 짧게라도 휴직을 한다. 그 알 수 없는 모성의 최대치를 이때쯤 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 두 어달을 다닌 아이의 입에서 ‘전학’이라는 어마무시한 행정의 단어를 들어야 하니 맘이 천근만근이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쩌누. 아이가 제 딴에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생각해낸 방법이 ‘전학’이라니.
여러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담임선생님께 얘길 해야 하나? 주의 좀 시켜달라고? 선생님이 안볼 때 그러니까 문제였겠지? 그걸 어떻게 해결을 해주실 수 있을까? 하루하루는 지나가고 아이의 얼굴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 되었다. 이제야 조퇴라는 걸 쓸 수 있었다. 내 아이 챙기자고 많은 학생들과 해놓은 수업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 시험 기간이 되도록 기다렸다. 오전 시험 감독을 마치고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냉큼 찾아갔다. 아이들이 하교를 하는 시간에 대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들이니 12시가 되기도 전에 마치는 것 같았다. 주차를 해놓고 교문 어귀에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이를 입학시켜 놓고 처음 와보는 학교였다.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 운동장과는 사뭇 달랐다. 아기자기 놀이터, 그 안에 동물 친구들. 서로 함께 웃는 얼굴.
우루루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로 내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00아” 아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달려왔다. 엄마가 학교로 마중을 나오다니. 놀란 얼굴에 금새 환한 웃음이 번졌다. 나는 아이를 낚아채듯 보호하며 물었다. “**이가 누구야? 응?” “쟤예요!”
고개를 들어 바라본 내 눈에 들어온 그 ‘범인’의 모습에 나는 실망했다. 내 아이보다 반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키에 작은 체구. 그러니까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남자애였다. 그래도 눈빛만은 당돌해 보였다. 쳇 나는 더 당돌한 아줌마다, 요녀석아.!
불렀다. 쭈뼛거리며 나에게로 왔다.
“아줌마는 00이 엄마다. 너 00이 때리고 괴롭혔냐?”
“예” 순순한 답을 한다.
“너 그러면 되냐? 안되냐?”
“안되요.” 나는 순간 더 다짐을 받아놓고 싶었다.
“너 ** 체육관 다니는구나!” 작은 아이는 검도 체육관 옷을 입고 있었다.
“예...”
“나 너네 관장님에게 말할거야. 너가 친구 괴롭힌다고.”
“안돼요. 힝”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뜨뜻미지근하게 다짐을 하지 않던 애가 관장님 얘기를 꺼냈더니 금방 옴쭉달싹도 못하고 나에게 빌기 시작했다.
“저 다시는 안그럴게요.”
“알았다. 아줌마가 지켜본다 알겠지(내 이쁜 새끼를 니가 어따 손을 대고 괴롭히냐고 이 나쁜 아이야!)?” 라는 말들이 마음 속에 한 가득이었지만 또 너무 작은 아이에게 그러면 안되었다. 눈높이를 맞추었다.
“유치원도 같이 다닌 친구니까 친하게 지내야지. 앞으로도. 그럼 안되는 거란다.”
“예, 예.” 연신 그 작은 아이는 잘못했다고 했다. “그래, 잘 가거라. 공부 열심히 하고.”
나는 내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거 집에 가서 햄버거도 사먹였다. 무슨 사는 게 그리 바빠 아이 하교 한번을 못챙겼을까? 급식카드 잃어버렸다고 울며 집에 오던, 이제 갓 입학이란 걸 한 어린 아이를 그렇게 내버려뒀을까. 이 작은 아이의 맘에 뭐 그리 믿을 게 있다고 다 맡겨놨을까? 엄마는 늘 죄인같다.
그래서 다음에도 몇 번을 학교에 갔냐고? 아니다. 그게 아이 초등학교 하교 처음이자 마지막 맞이였다. 나도 참 반성한다. 그래도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을 무사히 다 마쳤다. 너무 길다. 6년이라니.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밥도 씩씩하게 먹는다. 옷을 챙겨입는 아이의 손이 바지런하다. 그 놈은 이제 안괴롭히니? 예! 어서 밥먹어라. 전학을 가고 싶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내 눈에 쏙 들어온다. 이쁘다. 사랑하는 둘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