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찰옥수수 묵어봤나
5월의 신록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자연의 선물이다. 저마다 뿜어내는 다양한 초록의 스펙트럼은 보고만 있어도 신묘한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의령의 5월은 그 설렘에 한 가지를 더 더한다. 기다랗게 축 늘어진 이파리 사이로 투명한 미색의 옥수수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 집 찰옥수수 묵어봤나’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누가 소리내어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아니’ ‘그럼 무봐야지’ 또 누군가가 응답한다.
홀리듯 얼른 휴게소로 들어선다. 한 봉다리 5천원. 서 너개의 뜨끈한 옥수수가 손에 잡힌다. 차에 털석 들어가 앉아 옥수수 하나를 꺼내어 문다. 차마 온전한 한 개를 아작내기 아쉬워 서비스로 끼워준 녀석으로 시작한다. 적당히 달콤한, 평균을 뛰어넘은 쫀득함이 옥수수 알갱이 한 알 한 알에서 터져나온다. 입안이 황홀해진다. 식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한국에서 태어난 게 정말 행복하지 않냐고 자문한다. 그렇다!! 라고 느낌표 다섯 개를 띄운다. 한국은 므찐 나라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누군가는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죽더라도 옥수수는 먹고 죽을래"다.
6월에 들어서면 서서히 옥수수를 수확한다. 7월에는 옥수수를 쪄서 손님을 맞이한다. 딱히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적한 국도를 지나다 보면 옥수수와 식혜를 판다는 현수막을 만난다. 칠곡, 대의, 멀게는 낙서까지 의령의 옥수수는 무르익는다. 의령에 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맛. 의령의 맛. 푸른 산과 산을 이어주는 계곡 사이로 하늘의 구름은 무심하다. 생각으로 가득찬 내 머릿속을 꾸짖는 듯 하다.
7월 더위에 한 껏 지친 몸과 마음에 옥수수의 찰기가 전해진다. 내 인생도 이렇게 찰지게 익어가고 있으려나. 뻥뚫린 대로가 아니라 한 뼘 벗어난 국도에서 나는 구불한 길을 가고 있다. 때로는 비포장이다. 고속으로 내달리는 도로에서는 만날 수 없는 길 위의 휴식이다. 다리 밑 할매들이 부채질을 하며 손짓한다. 스티로폼 박스 안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옥수수가 한 가득일테다.
“할매! 옥수수 한 봉다리 주이소.”
“복숭아도 맛나는디 잡숴보이소.”
“그라믄 그것도 한다라이 주이소.”
자도 없다, 저울도 없다. 그저 한봉다리, 한다라이면 족하다. 몇 개 작아도 몇 개 더 많아도 그 길 위에서는 그리 큰 일이 날 것도 아니다. 옥수수는 내일도 아니 내년에도 만날테니까. 오늘 좀 부족해도 내일이면, 아니 내년이면 좀더 채워질테니 말이다. 파란 하늘과 백설의 구름 한 점은 푸르게 펼쳐진 산만큼 내 마음을 열어젖혀 줄테니 말이다.
이마에 진땀이 맺힌다. 오늘 출장은 입안이 바특하다. 두 봉다리의 여름을 챙겨 교육청으로 향한다. 에어컨을 틀어둔 사무실에서도 여름은 한창이다. 책상 위 찰진 옥수수 만큼이나 서로의 휴가 계획이 야무지다. 더위가 잠시 쉬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