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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바바 Jul 21. 2024

훈련소에 가는 날

진지함은 개뿔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분명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맞아야 한다. 아니다, 틀렸다.

아들은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 입소하기로 정해진 날이 다가오기 전까지 집을 떠날 생각보다는 배민(배달의 민족~주문!)을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분명 ‘열차타고’ 인데 “엄마 훈련소까지 태워주실거죠?”라고 했다. 어정쩡하게 나는 “어, 어, 그래 논산까지?... 몇 시간이 걸리더라.. 내비 찍어볼게..” ‘어 이게 아닌데,,,’

‘부모님께 큰절’할 타이밍인데, 휴게소에서 뭐 먹지 검색하는 아들이다.

아들의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아야 하는데,, 내 마음이 아쉽다. 어 이게 아닌데.

‘두손 잡던 뜨거움’은 어딜가고 전날까지 술을 퍼마시던 아들은 머리조차 자를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입소하는 날 미용실로 부리나케 자르러 가는 아들 녀석. ‘하..하..하..’, ‘요즘은 다 그런건가?’ 아들에게 꼰대라는 소리 들을까 무서워 묻지도 못하는 나에게 “어머니, 자! 출발합시다! 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어, 어. 그래, 가볼까?”


목숨까지 왔다갔다하며 큰 아들을 힘겹게 낳았다. 임신중독증이었다. 나는 나의 있는 힘껏 내 몸을 불살라가며 8개월만에 1.5킬로그램의 아들을 낳았다. 병원에서는 달수를 다 못채우면 모두 미숙아라고 한다며 멀쩡한 아들을 미숙아로 아이수첩에 기재해 주었다. 내가 잘하지 못해서 미숙아가 된 것 마냥 죄스러웠다. 그야말로 소중한 아들이었다. 이 아들이 커서 군대를 가야할 때 쯤이면 나는 막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아들 가진 엄마들은 다 한번은 만나야 할 순간이고 고비라고 했다. 더군다나 김광석은 아들이 군훈련소에 입소하는 날을 이리도 장엄하고 슬프게도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날이 되면 어떻게 눈물을 참을까 걱정했다.

그. 런. 데. 괜찮았다!


논산으로 가는 3시간여 동안 우리는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했다. 평소 형의 언행에 소소한 불만을 가진 동생도 이 날은 함께였다. 얼마 안있으면 저도 군대로 워크인해야 하니 선행학습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나와 남표니는 아들의 ‘군입대날 휴가’라는 ‘기타 특별휴가’를 낼 수 있었다. 큰 아들의 군입대로 우리집은 그야말로 대동단결이 되었다. 그 날 우리의 공동의 적은 북한이었다. 군복무를 마치는 그날까지 김정은이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도발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서로 입을 맞추었다. 큰 아들은 육군이 최고라며 군복이 멋지다고 했고, 아직 어떤 곳을 갈지 정하지 못한 둘째는 해군을 염두에 두는 듯 해군의 흰 제복이 멋지다며 지지 않았다.

군에 입대하면 이제 민간 음식은 못먹으니 오늘 휴게소에서는 맛난 걸 먹어보자며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 런. 데. 휴게소에서는 논산훈련소 입소하는 이들에게 무료로 밥 한끼를 주었다. 더 맛난 걸 먹을 수 있었는데 무료로 주는 밥 한끼를 포기할 수는 없어서 받아먹었다. 흐억 우리나라의 인심이 이리도 좋을 수가.

입소하는 날까지 아들이 보여주는 유쾌함에 나는 즐거웠다. 시종일관 이등병의 편지 가사말 속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은 없었다. 내가 슬플 일도 없었다. 대한민국은 휴가도 주고 밥도 주고 아들의 교육도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오직 아들 하나가 군에 입소함으로써 잠시나마라도 나의 재정 상황이 좀 나아지리라는 기대만이 존재했다.


MZ세대에 대해 말이 많다. 1990년생이 온다, 200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 작가는 그들의 특성을 초합리, 초개인, 초자율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설명하고자 했다. 온당한 말씀이다. 어떤 단어를 들이대더라도 맞는 말이다. 뭐라고 특징지을 수 없는 게 그들이니까. 어떤 것도 그들이고 무엇이든 그들이다. 문제는 그걸 받아들이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이게 다 생각을 빨리 바꾸지 못하는 내 탓이니 말이다. 세상이 그야말로 급속도(정확하게는 릴스, 틱톡, 숏츠의 시간 속도인 듯)로 바뀌는 데 내 사고는 아직도 5분짜리 동영상을 찍고 있으니 말이다. 다 내 잘못이다.

종종 나의 아들들은 그 특성을 잘도 보여준다. 산뜻하고 깔끔하다. 걱정도 가볍게 한다. 인생 뭐 있나? 인생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다가 생각 속에 죽는 나는 늘 반성한다. 나도 나름 X-generation인데 영 가오가 살지 않는다.

첫 휴가를 설렘으로 기다리는 아들, 아들의 첫 휴가를 떨림(지갑을 잡은 손의)으로 기다릴 나.

아, 아들아. 인생 뭐 있나? 소고기 묵으러 가자아~ 고생많았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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