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자격연수를 마치고
“장학사님 아르코 가보셨다고 했죠? 거기서 연극보신거 맞죠? 아~ 그럼요! 저번 서울 올라갔을때도 연극 한 편을 보고 왔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는걸요! 배우는 또 얼마나 찰지게 연기를 잘 하던지요. 주무관님 이번 서울 가신다구요? 아유, 좋겠다. 꼭 연극이라도 한 편 보고 오셔요~!”
“주무관님! 벌써 오셨어요? 애기도 있는 데 이리 일찍 출근해도 되어요? 애들은 어쩌구요? 부모 출근 시간에 맞추어 애들 등교시켜 놓고 마음이 편치 않겠네요? 안그래도 담임샘이 걱정을 해주시던데요, 빈 교실에서 애들만 있으면 또 사고가 있을 수도 있고요. 저도 애들 기를 때 그렇게 주무관님처럼 그랬는데 에휴, 별로 안좋아요. 애들 잘 챙기셔요~”
“주무관님, 이 셔츠 너무 이쁘다. 색이 주무관님이랑 참 잘 어울려요. 이 색이 딱 퍼스널 컬러이시네요. 담에도 이 색으로 또 사입어봐요. 잘 어울린다니까 글쎄~”
“팀장님! 요즘 당뇨 수치는 어떠세요? 관리는 잘 되고 있어요? 맛난 거 많은데 다 못먹어서 어째요? 아유, 말도 마요. 이 놈의 술 한잔을 못먹는다니까요. 그게 참 화나더라구요. 그래도 참아야지 어째요. 그러게요. 잘 관리해서 우리 오래오래 잘 살아보아요 호호~”
난 한국인이다. 오지랖 넓다는 한국인 맞다. 사무실 이사람 저사람 가만두질 않는다. 입안이 점점 바특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타인의 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 안다. 다 안다. 나 하나 살기도 바쁜 때문이리라. 나 하나도 오늘 밥 먹고 일하고 저녁은 굶고 자야지 하는 결심을 실행하기도 바쁜 때문이리라. 대화없는 관계는 오해를 낳는다. 앞에서는 못하고 뒤에서만 하는 대화가 늘어간다. 바쁜 하루에 뒷담화라는 일상이 하나 더 더해진다. 낭패다.
교실이라고 다를까. 선생님들이 학생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관심은 대화에서 촉발되는데 우리의 대화는 언제부터인가 녹음되고 재생되고 평가된다. 선생님이 너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맥락이 제거된 건조한 대사는 듣는 사람의 세계관에서 재구성된다. 민원 전화가 되어 붉으락푸르락 만난다. 낭패다.
정보의 홍수 속에 우리는 더 이상 옆사람에게서 맛집의 정보를 들어볼 필요가 없어졌다. 포털, 릴스, 숏츠에서 단 몇초면 위치, 레시피, 별점이 금방 나온다. 맛집뿐이겠는가! 사람들은 금새 말이 없어진다. 휴대폰을 쳐다보기에 바쁘다. 요지경이 따로 없다. 각자의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아니 스스로 그 안에 갇힌다. 소통은 더 어려워진다. 어라? 귀에다 뭘 또 끼운다. 이런 버즈, 에어팍 같으니라구! 귀까지 막는다. 입도, 귀도, 코도(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도 없어진 듯하다, 쩝.) 다 막힌 세상. 자기 주장만 하느라 싸움만 늘어간다.
나 교감 잘 할 수 있을까? 관리자 같은 거 잘 할 수 있을까? 교감 자격 연수를 마친 지금 두려움이 앞선다. 오홋, ‘교감 잘하는 법’ 휴대폰으로 검색해봐야겠다. 105시간, 6300분의 연수가 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