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Mar 17. 2020

학부모님들 안녕하신가요?

지금 우리에게 최선이란

길을 가다 멈춰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2003년 가을즘 딱 한번 가본 술집. 15년동안 간판이 세네번쯤은 바뀌었지만 늘 술집인게 반가워 그곳을 지나갈때마다 지긋이 바라보는 술집. 그 술집에서 나는 500cc 맥주 한잔을 마셨고 어머니는 담배를 두대쯤 피웠다. 


아이는 사는게 정말 지겹다는 듯 늘 화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고 누구라도 자기를 만만히 보지 못하게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켰다. 나는 어머니께 가정방문을 가고 싶다고 전화를 했고 어머니는 집은 좀 그렇고 선생님만 괜찮으면 술한잔 하자고 했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무엇인지 아이를 키운다는건 뭔지 먹고 산다는건 뭔지 몰랐던 철없던 그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 뒤 술집을 향했다. 5분쯤 늦게 온 어머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 500 한잔이요!”라고 술집 사장님께 말한 뒤 자신은 술을 못마시니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했다. 이게 뭘까? 어리둥절 500잔을 입에 물고 있으니 어머님은 편히 마시라며 열린 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셨다. 아이가 이러쿵 저러쿵 큰일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나는 맥주를 홀짝였고 신기하도록 불편하지 않은 침묵이 흐르고 담배가 꽁초가 될즈음 어머니는 담배를 비벼끄며 지금도 있지 못하는 이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사실은요 지금 이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게 엄마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네?"


어머니는 아는 친구 집에서 잠시 머무르면서 버는돈 대부분은 몸이 불편한 둘째에게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 자신과 00이가 힘든 시간을 건너고 있다고 담담히 말하면서 내가 재우고 먹이고 입혀서 학교는 어떻게든 보낼테니 선생님이 우리 아이에게 더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두번째 담배를 피며 부탁했다.

특별한 표정도 억양도 없이 담담히 늘어 놓는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나도 그냥 버티는것이 최선이었던 삶 속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이가 왜 그리 행동하는지 다 알것만 같았고 이런 상황에서 그 아이가 학교에 와서 웃고 떠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고 아이가 잘 지낼 수 있도록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에게 무엇이든 해줄 필요가 없었다. 아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엄마와 깊게 연결되어 있던 것일까? 나는 어머니를 한시간쯤 만났을 뿐인데 그날 이후 아이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러워졌고 졸업할때까지 엄마와 나를 많이 웃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길을 가다 그 술집을 바라보면 어머니가 하고 있다는 그 최선에 대해 생각한다. 그에게는 그 순간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최선은 같지 않다는 것을. 내 기준으로 최선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두 방식이 다르고 때로는 거칠고 비극적이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려고 애쓴 다는 것을. 내가 학부모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야를 많이 넓혀준 잊지 못할 고마운 사건이었다. 


개학을 못해 만날 수 없는 아이들과 부모님을 생각각하니 오래전 그 어머니가 떠올랐다. 경제적인 어려움,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부담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늘어나는 생활비와 집안일들. 어려운 생활 조건에서 삐그덕거리는 관계. 일상은 무너지고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데서 오는 무력감. 코로나로 인해 힘든 이때 학부모님들은 더 쉽지 않은 짐을 지고 계실 듯 하다. 더 잘 해야한다고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개학하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고 돌봐줄테니 우리도 그 어머니처럼 담배 한대 물고 자기의 한계를 이해하고 주변에 도움을 표현하며 그렇게 터널을 지나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곰보빵과 코로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