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ngo단체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어딜 가서 내 열정과 정성을 바칠 것인가를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큰 고민 없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대협이나 나눔의 집을 찾아가 아무일이나 시켜달라고 뭐든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 나를 상상해보곤 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 설 때마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아이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근현대사를 가르칠 수 있는 학년을 찾아다니고 역사 체험학습으로 아이들과 함께 수요집회를 가자고 제안하면서 미친 듯이 콩닥거리던 심장을 떠올려보면 이 이슈는 내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임이 분명했다.
텔레그렘 n번방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런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 할때면 내 마음은 그보다 더 시끄러워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나와 더 알아봤자 마음만 다치니까 관심 끄라는 내가 충돌한다. 피해자들이 느낄 고통이 가슴을 때려 눈물이 쏟아지다가 조00에게 달려가 입을 찢어버리는 상상을 하며 분노에 휩싸인다. 그렇게 슬픔과 분노를 오락가락 하다보면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내가 낯설어지고 몇살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는 어리고 취약한 어떤 사건 속의 나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내 머리 한구석을 차지한채 꿀럭꿀럭 움직이는 기분 나쁜 덩어리가 되어 내 마음을 덮어버린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은 이어지지만 묻어 두었던 기억이 소환된 상태로 살아야 하는 나는 취약해지고 예민해진다. 그리고 어젯밤 잠자리. 기분 좋게 남편의 손길을 느끼다가 느닷없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몰려와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누군가를 즐겁게 하느라 끔찍하게 쓰여진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이 떠올라 아무것도 즐길 수 없게 되었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오랫동안 억눌렀던 기억, 아무일도 아니었다고 강요했던 기억들이 나를 집어삼켜 화를 내고 싶은지 울고 싶은지 아픈지 괴로운지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런 내가 그리고 지금 이 일을 겪으며 나같은 상태로 있을 우리들이 떠올라 더 먹먹해졌다.
나는 오늘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녔다. 그냥 걷고 싶었고 내가 숨을 쉬고 움직일 수 있음을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어딘가에 머물러 노트북 흰 화면에 내 마음을 쏟아내고 그러다 울고 그러다 한숨 짓고 그러다 흰 화면을 덮고 다시 일어나 걸었다. 그지 같은 그놈의 기억! 언제 사라질까. 사라지기는 할까. 이런 사건이 있을 때 마다 아프게 소환되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마저도 얼어버리게 만드는 그 기억이 미친 듯이 원망스러웠다. 어떤 기억은 평생을 쫓아다니며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끔찍한 형벌은 왜 내가 받아야 하는지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나는 n번방 사건의 피해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내 기억을 감당하느라 이미 몸과 마음이 너덜 너덜 지쳐 버렸다. 이런 기사를 언제쯤이면 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지겹고 끔찍해 머리를 쥐어짜다가 가방에 달아 놓은 뱃지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뱃지다. 아... 할머니. 2011년 12월 1000차 수요집회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믿었다. 이 집회는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곧 사라지리라. 1992년부터 무려 20년이다. 20년을 수요일마다 외쳤다. 당연히 응답이 있을꺼라 기대했고 응답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순진했을까? 또 그렇게 이어지는 수요일을 견디고 지켜온 할머니들은 박근혜 정권 때 더 큰 굴욕을 당해야했고 또 10년이 지난 2020년 3월 25일. 1432차 수요집회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1432.... 1432.... 그 숫자를 보며 초초한 마음으로 검색해본다. 이제 몇분이 남아계시나요...? 열여덟분. 평화의 소녀상이 전세계 이곳 저곳에 세워지는 동안 할머니들은 우리 곁을 서서히 떠나고 계신다. (2020.03.03. 기준)
나는 할머니들이 걸어온 삶을 생각했고 평화의 소녀상을 떠올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입으로 그 말을 중얼거리며 용기를 냈다. 그리고 짐을 챙겨들고 커피숍에서 나와 씩씩하게 성인용품 파는 곳으로 들어가 제법 비싸고 좋은 콘돔을 샀다. 우선 이 끔찍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흔들리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마음만큼은 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 다짐했다.
이제 나는 더이상 수요시위가 언제 끝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기억도 사라지기를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내가 해야할 것은 울고 싶을때 충분히 울고 또 웃을 일이 생기면 웃고 그러면서 오늘을 사랑하며 사는것. 자! 그만 울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ps. 글을 쓰는 것. 글을 공개 하는 것. 용기를 내어 내가 해야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