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외롭고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면 좋겠다
2년만에 복직을 앞두고 있다. 그간 교사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알게 해준 사람과 사건을 끄적거리며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싶어졌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제자 이야기로 첫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출근길 중기(가명)에게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라 망설이다 받은 전화였는데 제법 굵어진 목소리로 중기는 자기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몇 년 전 내가 졸업시킨 아이였다. 중기는 쉬는 날이라며 날 만나러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수업이 있으니 점심시간에 맞춰서 오라고 하며 옮긴 학교 주소를 알려주었다. 잘 찾아올지 걱정을 하다가 얼핏 따져보니 중기는 어느새 고등학생이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내 기억 속 초등학생은 어디 갔는지 키도 몸도 두 배는 훌쩍 커버린 듯한 중기가 교실 앞에서 수줍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4학년 교실로 들어온 중기는 소인국에 있는 걸리버처럼 어색해했다. 나는 기왕 어색한 김에 작은 책상에 앉아 밥을 먹자고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점심 먹을 생각도 잊은 채 중기를 둘러싸고 질문들을 쏟아냈다.
중기는 아이들이 하는 엉뚱한 질문에 성심성의 것 대답하며 밥을 먹었고 아이들은 곧 흥미를 잃고 밥을 먹은 뒤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가 편찮으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떠시냐고 물으니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작은 꽃집에서 일하시는데 빨리 도움이 되고 싶어 학교 다니면서 미용 기술을 배운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손톱 끝이 죄다 빨갛게 부르튼 중기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애쓴다 기특하다 귀한 손이다 하며 나도 모르게 손을 덥석 잡아주었다. 중기는 6학년 때 눈싸움했던 거 생각하며 요즘도 가끔 웃는다 했다. 나는 “눈싸움은 기억나면서 내 수업은 하나도 기억 안 나지?” 하면서 괜히 너스레를 떨며 울컥한 마음을 감췄다. 그렇게 몇 가지 추억과 요즘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5교시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중기는 가보겠다며 일어났다. 나는 복도로 나가 중기를 마중했다. 중기 뒷모습을 좀 오래 보고 싶었다. 중기는 인사를 했고 나는 잘 지내라고 어깨를 토닥였다. 그런데 중기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저 좀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사는 게 많이 고단했구나. 위로가 필요했구나. 용기가 필요했구나. 응원이 필요했구나. 지지가 필요했구나. 사랑이 필요했구나....' 수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그래서 또 너스레를 떨고야 말았다. “야! 6학년 때 중기는 안아줄 만했는데 지금은 너무 커버렸잖아.” 그리고 가만히 중기를 안은채 토닥토닥해주었다. 잘하고 있다고 힘내라고 말해주었다. 힘겹게 어른이 되어가는 중기에게 온기를 나누는 어른이 되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중기가 다녀간 이후, 나는 종종 쉬는 시간에 아이들 표정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얼굴에 웃음을 잃은 아이를 보면 간절히 바란다. 저 아이는 지금 어떤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까? 보호자가 겪는 삶의 굴곡이 아이에게는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까? 만약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면 그 아이에게 학교가 있어서 다행이었으면 좋겠다. 친구가 있어 가끔은 웃을 수 있고 선생님이 있어 의지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혼자서 외롭게 버티다가 날개가 꺾여 타인을 또는 본인을 해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힘이 되어주는 선생님과 친구에게 중기처럼 “나 지금 외롭고 힘들어요. 안아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