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Jun 14. 2022

안녕 자궁

2편 - 까만 비닐봉지에는 과자가 없었다.

여는 글

어느 날 문득 나와 45년을 함께 해온 자궁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졌다. 포궁이란 표현을 지지하고 그래서 포궁으로 글을 쓸까 했으나 40년 넘게 자궁이라 불러왔던 내 몸속에 이 아이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려니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이 아이와 함께 하면서 내 인생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을 잔잔히 풀어놓으려고 하기에 이 글에서는 자궁이라 표현하겠다. 나의 자궁 두 번째 이야기 시작한다.




2편 까만 비닐봉지에는 과자가 없었다.

2편 - 까만 비닐봉지에는 과자가 없었다.2편 - 까만 비닐봉지에는 과자가 없었다.

까만색 부스럭거리는 비닐 소리. 어릴 적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달콤한 상상을 부추겼다. 뭔가 먹을거리가 그 안에 담겨있을 테고 그게 꼭 과자였으면 좋겠다고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가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 왔을 때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과자 사 왔냐며 비닐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고 엄마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황급히 장롱 속에 까만 비닐을 욱여넣었다.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받지 못하는 그 물건에 대한 호기심과 내가 기대한 과자가 아니라는 실망감이 우글거렸으나 나는 묻지도 않고 투덜대지도 않았다. 왜냐면 엄마가 당황해하며 둘러대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로 한 달에 한번 엄마가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 오면 달려가지 않았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어린 시절 자궁은 나에게 까만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외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내가 생리대를 직접 사기 시작하면서 이미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생리대를 또 비닐에 담는데 그 비닐은 반드시 까만색이어야 하는 국룰을 생리대를 파는 모든 이들이 꽤나 열심히 지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일 때 약국에서 생리대를 사던날 약사는 까만색 비닐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며 가방에 넣을 수 있냐고 물었고 고등학생일 때 동네 구멍가게에서 생리대를 사던날 집 가까워 비닐 필요 없다고 했더니 그러는 거 아니라며 굳이 까만색 비닐봉지에 생리대를 넣고 혹시나 생리대가 보일까 떨어질까 비닐을 둘둘 말아서 쥐어주셨다. 마치 존재를 드러내면 펑하고 터지는 물건 대하듯 전 국민이 합심해서 생리대를 까만색 비닐 속에서 가둬두려는 듯했다. 그래서 생리대가 비닐에서 나와 자기 몸을 풀어 온전히 자기 자태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생리대는 언제나 까만 비닐 속 또는 생리대를 담는 가방 속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웅크리고 있는 생리대는 우리의 언어도 웅크리게 만들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생리를 갖 시작한 이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은밀히 나누기도 했지만 중학교에 가니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대해 호들갑 떠는 이는 없었다. 대신 일상으로 자리 잡은 생리에 대해 다양한 수신호와 옹알이 뉘앙스로 소통하는 놀라운 세상이 펼쳐졌다. 갑자기 생리대가 필요할 때 그 누구도 “생리대 있어?”라고 분명하고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았다. 조용히 다가가 어깨를 살짝 치며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이용해 사각형을 만들어서 보여주면 보통은 하던 일을 멈추고 가방 속 저 깊은 곳에 있는 작은 가방을 꺼내 누가 볼세라 손바닥보다 큰 생리대를 손에서 손으로 다급하게 쥐어서 건네주었다. 배가 아파하거나 기분이 별로인 친구한테 어디 아프냐고 물으면 십여 년간 배워왔던 언어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언어와 옹알이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언어들을 내뱉었다. “나 지금 그거 해” 또는 “오늘이 그날” 또는 “프랜치 파이” 뭐 이런 말들 말이다.


그렇게 남녀노소를 넘어 생리대를 대하는 태도는 생리를 하는 나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를 강력하게 교육했다. 제대로 가르쳐준 사람도 없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인식했다. 몸에서 피가 흐르지만 그 피를 받아줄 생리대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처럼 존재해야 한다. 있지만 없고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꼭 필요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어떤 물건이어야 한다. 응당 단정한 여자라 함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의연하게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일을 깔끔히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이 온전히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을 한 달에 한 번씩 겪으며 나는 자궁을 피나 쏟아내는 귀찮고 성가신 무엇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까만 비닐봉지에 자궁도 함께 담아 생리대와 함께 어딘가로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다. 자궁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 기대하게 해주는 언어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3편 왜 팬티에 초콜릿이 묻었지?

작가의 이전글 안녕 자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