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보니 한 달이 다 지나가 버렸다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내 그대를 한 여름 날에 비할 수 있을까?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ure
그대는 여름보다 더 아름답고 부드러워라
- Sonnet 18 by Shakespear, 피천득 번역 -
참으로 뜨거운 한달이었다. 날씨는 되려 선선했지만, 모든 에너지가 영글어 터질듯 맺히는 여름의 기운이 온 곳에 가득했다.
6월은 오랜 친구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배웅하면서 시작했다
13년 동안 키웠던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었다.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찾은 고향집에서 뜻하지 않게 장례를 치루었다. 그 날은 마침, 엄청난 장대비와 폭풍우가 예정되어 있었다. 큰 비가 내리기 전에 뒷 마당에 고이 묻었다. 더 많이 아프지 않고 눈을 감아서, 큰 비가 내리기 전에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교통사고도 당해 보았다
6월은 황당한 일도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당했던 게다. 그것도 퇴근시간 테헤란로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숲에서 업무를 보기위해 이동을 하던 터였다. 아무런 일 없이 가고 있었는데, 날벼락처럼 뒤에서 꽝. 그냥 그렇게 사고가 나 버렸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소소하게 척추뼈가 하나씩 튕겨나갔다가 새로 맞춰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아도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전진.전진. 계속 전진만 하던 나였는데. 이런 기분은 참 오랜만이었다.
날벼락은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아도 생길 수 있는 나쁜 일이 하나 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난데없이 갑상선 암을 진단 받은 것이었다. 암으로만 한정해도 이미 2번째 진단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큰 수술을 한 번하고, 15년 정도는 꽤 조용했다. 그러고 나서 간만에 다시 '제법 큰일'이 생긴 것이다. 5월말이나 6월 초에 함께 터키 여행 가기로 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2번 3번 미루고, 터키에서 장가계로 여행지도 여러 번 번복한 끝에, 결국 여행을 가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이렇게 바쁘고 힘든 시기에 또 엄마가 아픈것일까? 아니 엄마랑 여행을 가고 추억을 쌓아야 할 시간에 죽어라고 일만 하는거 아니야? 마음은 갈팡질팡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생겼던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가 문득문득 수면 위로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내 안의 '겁난 아이'를 달래는 수 밖에, 달리 어른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엄마가 진단 받고 빠르게 수술 날짜를 잡은 뒤, 입원하고 수술하고 퇴원하고, 회복하는 와중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엄마의 보호자를 자청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보단 내가 나을 것 같아 당분간 우리집에서 엄마를 집안일로부터 해방시켜 드리고 있는 중이다. 엄마의 식사를 챙기고, 내가 아기였을때 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욕조에 눕혀 머리를 감겨준다. 냉장고를 열어보고서는 맥주 캔이 몇 개 남았는지 세는게 아니라, 엄마가 먹을 고기 반찬이 남아있는지를 살펴본다. 다행히 엄마가 엄청 잘 드신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참 오랜만의 일이다. 아 그동안 참 오랫동안 나는 나 하나만 생각하며,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에만 골몰했었구나. 짧게 나마,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세상을 좀 더 넓게 본다.
그럼에도, 전진은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였다
나는 여전히 '전진의 의무'가 있었다. 작년부터 힘을 모아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이제 곧 세상의 빛을 보려 하고 있었고, 부족한 리더십이나마 끌어모아 굴러가고 있는 팀, 그리고 고생하는 팀원들이 있었다. 나는 많은 것을 약속했었고, 예정된 행사의 날짜는 꼬박꼬박 돌아왔다. 나는 수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읽을 글을 만들었다. 다행히 고생한 만큼의 보람은 챙기고 있는 중이다.
복기해보니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한 발 한 발 내딛어 나아가기가 버겁다고 느껴진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뜨거운 여름밤에 달리는 것이 좋다. 계절을 즐기기에는 봄과 가을이 달리기에 더 적합하지만, 날파리가 훠이훠이 날리는 여름 밤 달리기는 여름만의 맛이 있다. 후덥덥하게 고여 있는 공기를 내 스스로 깨면서, 나를 식혀줄 바람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여름밤에는, 달릴 때가 걸을때보다 되려 더 시원하다. 앞으로도 가끔 부대끼겠지만, 스스로 발을 굴러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좀 더 사랑해 보기로 하며 2019년 6월을 보내준다. 잘가, 6월. 나중에 너가 도움이 되는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