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기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고재비 Jun 09. 2019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13살 스패니얼 초코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뉴스에서는 며칠 전부터 휴일에 태풍급의 강한 비바람이 몰아칠 거라고 그랬다. 늦은 오후부터 어둑어둑해지더니, 저녁이 되자 묵직한 빗방울이 후둑후둑 어깨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2019년 6월 6일, 13살 초코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2007년 2월. 엄마는 다시는 개를 들이지 않겠다고 그랬다


우리 집의 첫 번째 애견은 고집세고 영리한 단모 치와와였다. 강아지스러운 애교와 살가움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도도한 아이였다. 특히 가족 중 막내인 나는 '자기보다 못한 순위'로 서열을 매겨두었는데, 친구들 중에서는 우리 집 개가 얼마나 날 무시하는지 구경하려고 놀러 올 정도였다.


집안의 막내였던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가 버리고 엄마 아빠는 아파트 생활을 청산해 한적한 전원 마을 동네에 집을 지어 이사를 갔던 그 해. 언제나 똑 부러지고 영리했던 단모 치와와는 바로 우리 집 마당에서 새끼를 잃고 살짝 정신이 나가버린 이웃집 개에게 목을 물려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전에 생명을 거두어 본 적이 전혀 없었던 엄마는 3kg나 나갈까 말까 한 조그만 강아지를 잡고 흔들고 인공호흡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마당에서 울고 부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등산을 가려고 우리 동네에 들렸던 낯선 아저씨가 무슨 일이 있나 싶은 마음에 소리를 따라서 우리 집을 찾아왔고, 걱정되는 마음에 등산도 포기하고 강아지가 저녁에 숨을 거둘 때까지 하루 종일 자리를 뜨지 않고 우리 집 마당에서 죽어가는 강아지와 엄마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엄마는 완전 넋이 나가버려서, 대학생인 나에게 전화해서 엉엉 울었다. 나도 전화를 받자마자 책상에 엎드려서 엉엉 울었고, 그때 나를 지켜보던 한 허세끼 있던 선배가 '키우던 강아지가 먼저 죽으면 무지개다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클리 세이를 알려주었다. 별로 호감을 갖던 선배는 아니었는데, 그 말은 나에게 오랫동안 큰 위로로 남았다. 


그럼에도 우리 식구들은 꽤 오랫동안 입맛이 없었다.


일주일 후, 이웃집 할아버지가 15만 원을 가지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우리야 개는 뭐... 그냥 마당에 놔두고 풀어서 키우고 그러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식처럼 키운다 그 카대... 새댁이도 그거.. 쪼마난 개니까.. 애처럼 키웠을 거 아이가..." 하면서 사양하는 엄마에게 굳이 돈을 쥐어 주고 가셨단다.  


시장에 팔려 나온 코커스패니얼을 품에 안고 온 날


고수부지 근처의 장터에 별생각 없이 장 구경을 갔던 날, 오천 원이며 만원이며 똥강아지를 철장이나 라면 박스 같은 곳에 마구 집어넣고 개를 파는 할머니를 마주쳤다고 한다. 낑낑 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강아지들을 손으로 덮석 잡아 다시 박스에 던지기도 하고, 손으로 휘이휘이 휘젓다가 한 놈을 잡아 배를 뒤집으면서 튼튼하고 건강하다고 데려가라고 소리 치기도 하는 그런 할머니였다. 근데 그 철장 속에 애견가게에서나 볼 법한 예쁘장한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 있는데, 왜 저런 품종 있는 개가 장날에 나왔을까? 궁금하면서 계속 생각이 나더란다. 다시 돌아가 그 강아지를 가리키고는 얼마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이런 개는 아주 비싼 개야. 코커스패니얼 순종이야 순종. 15만 원은 받아야 돼." 


그 순간 엄마는 내가 이 강아지를 키우려고, 이웃집 할아버지가 15만 원을 그렇게 손에 쥐어주고 갔나 보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한다.



허접한 철장 속에서 아웅다웅 살다가, 폭신한 카펫이 있는 집에 입성하게 된 강아지는 순둥이 그 자체 더란다. 똥오줌도 알아서 가리고, 엄마와 아빠 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마음을 살살 녹여 버렸다. 팔다리가 앙상하게 말라있던 강아지에게 사료랑 먹을 것들을 챙겨주니, 걸신이라도 들린냥 허겁지겁 먹어댔는데, 그 모습이 짠하기 그지 없었다. "아이고, 할머니가 먹을 것도 안 줬나 보네." 


그리고 그 날 밤부터 강아지는 많이 아팠다. 예방 접종이라곤 제대로 맞아본 적도 없는 녀석은, 아무래도 장염 같은 게 걸렸었던 것 같다. 열이 펄펄 끓고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였다. 워낙에 영양상태가 부실했었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먹어대었으니... 


일찍이 마당에서 키울 요량으로 데려왔지만,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강아지는 몇 달을 집 안에서 보냈다. 그 동안 수 없이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하고 보살핀 결과 녀석은 죽음의 위기를 힘겹게 넘겼다.


"아이고, 우리 새끼도 안 갔던 응급실을 개를 데리고 몇 번을 갔다 왔는지..."




마당살이를 시작한 녀석은 오랫동안 우리 집을 지키는 대장이었다


코커스패니얼은 과연 사냥개다웠다. 마당에 살기 시작한 초코는 근 10년 동안 우리 집을 지키는 대장이었다. 우리가 잠든 밤 동안은 휘이휘이 마당을 돌면서 순찰을 하고 도둑고양이도 쫓아냈다. 자려고 베개에 머리를 뉘이면, 초코가 마당을 도는 발자국 소리가 후다다닥 바쁘게 들려왔다. 나중에는 마당에 2 마리의 강아지가 더 생겼는데, 이 강아지들도 진두지휘해서 방범 대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창이던 시절에는 마당에 들어온 뱀을 깔끔하게 처리한 일도 있어, 아버지의 신임을 두둑이 얻은 바 있다.


하지만 낮 동안은 거실에서 잘 보이는 베란다에 앉아 활짝 웃으면서 집 안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이상하게 항상 웃는 표정이었다. 우리끼리 밥이라도 먹고 있으면, 거실 너머 쳐다보는 초코의 눈빛에, 아버지는 구운 삼겹살 같은 것들을 챙겨서 가져다 주기 바빴다. 마당에 사는 마당개였지만, 우리가 밥 먹을때마다 함께 먹는 느낌이었다. 


산책을 다니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성격이었다. 우다다다 거리면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없었다. 가끔 왈가닥 강아지를 데리고 힘겹게 산책하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묘한 안도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우리 초코는 세상 저런 일 없지." 


그래서 엄마 아빠의 마음 속에서 오랫동안 1순위 강아지였다. 맛있는 음식을 줄 때도 초코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불렀다. 물론 안 불러도 달려오는 식탐 대장 이긴 했다. 


하지만 순둥이도 사고는 쳤다


걱정이라곤 끼치지 않을 것 같던 순둥이도 크게 한 번 사고를 쳤다. 7,8살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날 엄마는 밖에서 볼일을 보고 집에 들어왔는데, 대문이 활짝 열려있고 다른 개들은 우왕좌왕하고 초코는 보이지 않았다. 시골이라 개장수가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엄마는 그 날 개장수가 초코를 잡아간 것이라 잔뜩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날 오전에도 마을로 들어오는 개장수를 봤다는 게 그 의심의 이유였다.


나는 그 날 회사에서 엄마에게 '초코가 개장수에게 잡혀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사무실을 울면서 뛰쳐나간 바 있다. 영리하기 그지없는 초코가 개장수에게 잡혀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고,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그렇게 죽음을 당하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눈치없이 왈칵왈칵 쏟아져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 밖으로 뛰쳐 나가 버린 것이다. 


왜 대문이 열렸을까? 동네 길을 훤히 아는 초코가 왜 보이 지를 않을까? 아니 근데 왜 초코만 없지? 우리가 생각하는 초코는 동네 길을 훤히 알 뿐만 아니라 대문도 알아서 잠글만한 영특한 녀석이었기에 '개장수'라는 이상한 의심은 오히려 합리적인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정말 최악의 상상이었던 것 같다.


혹시나 '개장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엄마는 며칠동안 이곳 저것 쑤시고 다니면서 '누런 강아지'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동네 할머니로부터 '누런 중간 사이즈 개'가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실려갔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허겁지겁 엄마가 찾아간 동물 병원은 우리 지역에서 사고 난 유기견이 한 곳에 모이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붕대를 감고 처연하게 앉아 있는 초코를 발견했다. 수술을 할 때도, 약을 발라줄 때도 낑낑거리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던 초코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의 모습을 멀리서 보자마자 낑낑거리며 미친 듯이 울부짖더란다. 마치 엄마 어디있었냐는 듯이. 자긴 너무 아프다는 듯이. 참았던 걱정과 슬픔을 터뜨렸다고 한다. 엄마가 그 날 그 병원에서 초코를 찾지 못했더라면 3일 후에 초코는 유기견 센터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엉덩이와 뒷다리가 완전히 차에 깔려 버린 초코는 걸을 수가 없었다. 사고를 친 사람은 강아지를 시골 도랑에 버리고는 달아나 버렸던 것 같다. 다친 채로 도랑 안에 갇혀 버렸던 강아지는 당연히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고, 길을 지나가던 다른 누군가에 의해 몇 시간 후에 발견되어서야 유기견을 치료하는 병원하는 호송된 것이었다. 


그렇게 초코는 또 죽음의 고비를 넘겼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나중에서는 제대로 걸었지만, 죽기 직전까지 무너진 골반 뼈 때문에 배변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녀석이 응가를 하려고 힘겹게 힘줄 때마다 엄마 아빠의 표정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그 뒤로 초코는 대문이 열려 있어도 혼자 놀러 나가지 않았다.




작년부터 초코는 갑자기 많이 늙어 보였다. 원래도 밝은 색깔이던 이마 부분은 거의 하얗다 싶을 정도로 색이 빠지고, 반질반질하던 이마나 입 주변, 등허리 부분의 털도 푸석푸석해지기 시작했다. 얼굴에도 종기 같은 것들이 하나둘 씩 났고, 가끔 멍하게 집 안에 들어가지고 않고 비를 맞고 있거나 소리를 잘 못 듣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왕왕 짖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마당에서 잠을 자는 초코의 들숨 날숨의 소리가 내 방 창문에서 들릴 정도고 숨이 가빠 보였다. 


살랑이는 봄바람에도, 곧 다가올 여름을 걱정하게 되었다. 작년처럼 40도가 가까운 날씨가 지속되면, 늙은 강아지가 한 해를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그 날. 오전까지도 초코는 입맛 좋게 간식을 내어 놓으라고 왕왕 짖었다고 했다. 다른 마당개들과 음식도 나눠 먹고, 마당에서 공사하는 아저씨들 한테도 친한 척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숨을 쉬지 못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서, 엄마와 아빠는 만약에 초코가 누워서 숨만 붙어 있는 상태가 되면 억지로 밥을 떠먹이거나 괴롭히지 말고 순리대로 보내주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간 나는 휴일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서 고속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혹시나 초코 옆에 가도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 숨을 쉬기 힘들어서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도 이름을 부르면 힘들게 꼬리를 흔드니까 그러지 말라고 했다. 




엄마의 생일 파티를 하려던 그 날, 예상치도 못하게 초코의 장례식을 하게 되었다. 깨끗한 천으로 싸고, 아빠가 마당에 묘자리를 만드는 동안 나는 차가워진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했다. 비가 쏟아지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렀다. 


"아이고, 초코는 오랫동안 힘들게 병수발 안하고, 오히려 잘 된 거야. 저렇게 가는 게 다행이다"

"이따가 큰 비 온다고 했는데, 비 오기 전에 땅에 묻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초코는 그래도 참 여러 번 죽을 뻔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았으니 다행이지."


온통 다행인 일 투성이었지만, 불 꺼진 집 안에서의 엄마의 한숨소리가 가득했다. 우리의 걱정을 아는지 세찬 비가 그치지 않았고, 혹시나 갓 만든 묘가 잘못될세라 다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모든 인연은 영원할 수 없다. 어떤 인연은 채 서로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이도 저도 아니게 사라져 버리고, 어떤 인연은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면서 짧은 찰나만을 공유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인연은 평생의 시간 동안 연결되어 있다. 초코는 일생 동안 우리만 알았다. 작은 아기 코커스패니얼은 성년, 노년이 되도록 우리 집 마당을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사랑받기 위해 살았다. 그리고 거센 비가 내리려던 그 날, 갑자기 우리와 이별 하고 우리 손으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행복했길 바라. 

무지개 다리 앞에서 다시 만나자.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 5월의 월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