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마상에 이제 월기도 미룬다
챙이 넓은 여름 모자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그것도 빛깔이 새하얀 걸로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올해도 오동꽃은 피었다 지고
개구리 울음 소리 땅 속으로 자즈러들고
그대 만나지도 못한 채
또다시 여름은 와서
나만 혼자 집을 지키고 있소
집을 지키며 앓고 있소
나태주, 쓸쓸한 여름
아주 차가워진 바람이 불어오는 와중에 여름을 기억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조금 우습지만, 그래. 이건 아직도 여름의 이야기다. 3개월이나 밀린 나의 월기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축축한 날이 많았다. 창 밖을 보면 마치 햇살이 날카로운 창을 뽑아 던질 것 같은데도, 막상 밖에 나가면 창에 찔린다는 느낌이 아니라 싸울 기운을 그냥 뺏어버리는 것 같은 그런 날들이었다. 나는 2018년 11월 부터 준비한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어 놓으려 온 정신을 거기에 몰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날씨 같은 거나, 휴일 같은 건 그냥 그런 것일 뿐이었다.
6월부터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리드하기 시작해서, 팀원들이 많이 생기고, 사실 나도 생전 한번도 해 본적 없는 일들인데, 티 내지 않으려고 부던히 애쓰느라 내 자신속에서는 '일꾼'만 남기고 '사람'은 가볍게 지워버렸다.
마침 딱히 내 안의 사람은 기가 죽어 있기도 했고.
'가능성을 연결한다'는 슬로건을 가진, 부스트캠프가 분 단위의 데드라인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가령 어제 700명을 대상으로 본 시험의 결과를 오늘 레포트 해 주면서, 홈페이지 최종 시안에 대한 내부 컨펌을 받고, 포스터나 기념품 같은 디자인 외주 작업 발주를 넣은 다음에 숨 돌리자 싶어서 음료수 한 캔 따 먹고 나면, 외주 개발사와의 트러블로 업무 프로세스를 다시 잡아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관련자를 모두 면담한다. 그런데 왠걸 요구사항 전달에서 애초에 빠졌던 폭탄을 발견하면서 관련자 면담을 다시 하고 급히 다른 외주 개발자를 인맥으로 알음알음 섭외한다. 예정되어 있던 외부 VIP 와의 자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설명자료를 급히 만들고 인쇄하는 동시 타다에 몸을 실어 날아간 뒤,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다시 회사에 돌아와 내일 컨펌나야 할 자료를 다시 검토하는 그런 식이다.
이 무렵, 오히려 분 단위의 컨펌이 필요하지 않은 주말 근무가 너무 여유로워서 행복할 지경이었고.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며, 맥주를 들고 야근을 하면서 '라이프를 워크에 가져오는' 균형을 노려보기도 했다. 그래도 이 무렵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니 이게 현실이 되다니." 였다.
더군다나 나는 이 때 하도 빨빨거리며 외근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아닌 밤중에 테헤란로에서 교통사고도 당해서 병원 치료도 한 달이나 받고 있었고, 엄마의 수술도 급하게 날짜가 잡힌 덕에 병원에서 밤을 새고 출근한 날들도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은 상황에서 이 모든 일을 해내었다는게 아직도 잘 믿겨지지가 않는다. 한번도 해 본적 없었던 이 모든 일이 잘되리라 확신했던, 7월의 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모쪼록 7월 중순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은 나의 '잘 되리란' 확신 아래서 실제로 잘 되고 있었다. 160명이라는 개발자가 우리 프로그램에 최종 선발되었고, 나는 우리 팀과 이 사업의 미래와 더불어, 160명의 미래에도 약간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 맘 때즘에 내가 자주 했던 스토리 텔링 중 하나는 "어째서 나는 교사가 되지 않았는가?" 였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교생 실습 나갔다가 울면서 나한테 상담 요청하는 학생이 겁이 나서....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교직을 확실히 접었던 건데. 이 이야기를 왜 그렇게 떠벌거렸는지는 모르지만, 막상 실제 살아있는 사람들이 꿈을 갖고 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니 책임감과 부담감 같은 것도 약간 '인간적으로' 가지게 된 것같다. 8월은 이런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7월의 '감정적 확신'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기쁨. 이 두 가지 축으로 움직였다.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를 일들을 실제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게 잘 돌아가고 있으니. 이제와 "아니 왜 잘되지?"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6월 부터는 정말로 밤낮, 주말 없이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진심으로 정말 간절하게 광복절을 기다렸다.
9월은 연말의 실적 부담감이 더해지지만, 이 전의 몇 개월에 비하면 많이 긴장감이 풀린 상태로 시작했다. 사람들과도 래포도 많이 쌓이고 긴장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업무 파트너와의 신뢰 관계도 시간이 쌓이면서 돈독해지는 부분도 있고, '데이터'로 몇 가지에 대해서 기획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업무적으로 칭찬도 주변에서 많이 받고, 야근도 안 하고 주말 근무도 안 하게 되자, 문득 나는 내 안에서 사람을 다시 꺼내고 싶어졌다. 마침 '서울숲'이라는 새로운 업무 공간은 어깨빵이 일상이었던 나의 지난 5년의 강남역 직장 생활에 소소한 일탈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서울숲에 와서 일을 하고서야 내가 지난 5년 동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못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남대로에 위치한 트레이드마크 건물에서 수 년 동안 일을 하면서 폼나게 카드키도 찍고,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을 다 누린다고 생각했지만, 빌딩 숲에 시야가 가려져 건물을 쳐다 보았지, 하늘을 쳐다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숲 이 곳은 5층 이상의 건물도 드물고, 낮은 양옥 주택들 사이로 푸르스름한 풀잎과 하늘이 비추는 곳이다. 누군가는 여기를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했지만. 힙해서 좋은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여유가 있어서 좋은 것이다. 물론 9월에 서울숲에 본격 입성해서 9월 말이 다 되어서야 저녁 무렵에 서울숲 산책을 한 번 했을 정도로 지금도 숲을 즐긴다고 하긴 어렵지만, 골목이나 숲 사이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카페를 찾는다거나 간판없는 술집을 찾아내서 동료들과 소주를 한 잔 기울이는 일들은 내 안의 사람을 다시 꿈틀거리게 하기엔 충분했던 것 같다.
사람은 꿈틀거리고, 꿈틀거린 사람은 마음이 여리고 고민이 많은 본래의 내 성격 그대로 였다. 사람은 3개가 있다고 하는데. 공적인 나. 사적인 나. 그리고 비밀의 나. 나는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나를 좀 더 대면하면서 남은 가을과 겨울을 잘 보내기로 한다. 그래서 9월의 마지막 날. 나는 다시 글을 찾았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과정을 기록하고 정리된 마음을 글로 남겨두는 것. 번뇌가 가라앉는 기분이지."
내 안의 사람이 잠시 숨 죽어 있는 동안,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길 바라면서, 나는 다시 소소하게 작은 노트에 하루 하루를 기록하고 있다. 월기장을 쓰고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아무도 모르는 작은 비밀일기장을 늘 가슴에 품고 살기도 하는 것이다.
한 가지 깜짝 놀랬던 것. 석달 밀린 월기를 쓰려고 사진첩을 보다가 지난 석달 동안도 내가 엄청나게 잘 놀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7월의 첫째날은 2박 3일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온 날이기도 했고, 분 단위로 일을 하는 와중에 주말 근무를 마치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분당에서 파크 콘서트를 본다고 뙤약볕에 녹아내릴 뻔 했던 일도 떠올랐다. 8월 초에는 금요일 야근까지 알차게 마무리 한 뒤, 물회를 먹겠다며 차를 잡아타고 속초까지 가서 야무지게 한 그릇 뚝딱한 뒤 고성에서 인생 셀카도 여러장 찍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 하루의 여름 휴가라 아쉽긴 했지만, 시그니엘 호텔에서 호캉스도 했더라... (나란 새럼.. 노는 것 너무 좋아하는 듯...) "어맛, 난 일 밖에 한 게 없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놀아준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준 모든 사람들이 고맙다.
오늘은 완연한 가을이다. 아니, 어제도 완연한 가을이었다. 집 근처에서 올 해의 마지막 생일 축하 식사를 하고,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서 오는데 온 몸이 오도도도 사시 나무 떨리듯 떨렸다. 그리고 나서 습하고 뜨거웠던 여름을 생각해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감정 기복 없이 잘 마무리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겠다. 이렇게 밀린 석 달의 글 숙제를 날림으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