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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재비 Sep 01. 2018

이렇게 언짢은 티를 팍팍 내도 되나

고양아, 난 가끔 너를 닮고 싶어

"안녕"


반갑게 웃으면서 현관을 들어서도 너는 항상 시큰둥하다.

동그랗고 맑은 눈은 우주를 담고 있는데, 그 우주를 집사에게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날 그리워 했을 거라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너에게 한 걸음 다가가본다.

온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길고 부드러운 꼬리로 휘감아 줄 것을 기대했지만,

휙 하고는 먼지를 날리며 너만의 장소로 아득히 사라져 버린다.


그래, 나는 한낮 캔 따개. 너는 도도한 고양이 였지.




고양이를 기른지도 7년이 넘어 간다. 젊은 직업 군인이 키웠다던 작은 암컷 고양이의 이름은 '언년이'였다.

방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했었지? 작은 고양이의 귓 속은 까만 때가 가득했다.

투박한 남자의 손이었을지언정, 그래도 곱게 키운 티가 났다.

작은 고양이가 쓰던 물건을 고이고이 정리해서, 굴림체 폰트 10으로 한장을 빼곡 채운 편지도 함께 부쳤다.

한 때는 귀가하는 그를 반겨주는 유일한 생명체였을거다.

300km를 달려와 퀘퀘한 우리집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생명체는 가장 어두운 곳을 귀신같이 찾아 몸을 숨기더니,

언제 기어나왔는지 모르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1년 남짓 그녀는 소녀의 시절을 오롯이 나와 보냈다.




우린 특별하고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고양님은 나를 언짢아한다.

공부며, 일이며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 고양이를 본가로 보내고 나니

한 동안은 대 놓고 나를 미워했다.

새벽에도 장난감을 물고와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던 혈기 왕성한 젊은 고양이는 나보다 빨리 늙어버렸고

열정 많은 학생이었던 나는 직장인이. 귀여운 소녀 고양이 언년이는 심드렁한 아주머니가 되었다.  

방바닥에 철퍼덕 배를 깔고 '귀찮으니까 나 만지지마' 라며 눈으로 쏘아 붙이곤 한다.   


아니, 그래도 키워주고 먹여주는 사람인데

이렇게 언짢은 티를 대놓고 내도 되나?




고양이. 나는 네가 부럽다. 싫을 때는 싫다고 훽 하니 네 갈길을 가 버리고

기분이 좋거나 내가 그리울 때는 온몸을 부비며 사랑스럽게 표현하는 네가 너무 부럽다.

아마 너는 네가 예쁜 줄 알아서 그런 것 같아.




여전히 한 고집 하는 나지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는 고집은 몰래 부리려고 노력한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고, 존경받는 사회인이 되고 싶어졌기 때문일까.

앞에선 생글생글 웃고, 헛소리도 친절하게 잘 들어준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화가 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조용히 상대방을 내 인생에서 도려낼지 언정 최대한의 친절을 베푼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나에게 미움 받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


관계에도 여러 번 상처받은 후로는,

내 감정을 이야기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모든 게 내 잘못 같고,

나의 특이한 구석들을 보여주면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쌓여

나는 항상 내가 아닌 그 때 마다 '내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나'였다.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앞에서

감히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만 들은 채 아쉬워하며 자리를 떴다.

혹시나 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에게 실망할까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아닌 모습을 나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떠난 것 같기도 하다.


그 누군가가 '개인'이 아닌 '집단'이 되면

나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만 같은 공포에 잠시 휩싸이기도 했다.




고양아, 너는 어쩜 그렇게 언짢은 티를 대놓고 내고 있니?

너 자신으로 너 답게 살아가는 게 무섭지 않니? 솔직히 너는 착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잖아.


지난 밤에

"나는 남들을 위해 이런 짓까지 하는데, 정작 내가 원하는 건 하나도 얻지 못했다" 는

영화 대사 하나에 마음이 먹먹해져

이틀째 그 단어들을 하나 하나 씹어 삼키고 있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지만, 또한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도 나에겐 힘든 일이기에, 오늘은 그냥 내 이야기를 적어본다.



고양아, 너는 너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사랑받을 수 있어서 참 좋겠다.

나는 네가 너무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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