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 <1부 PTSD 트라우마 편 1편>
그날을 떠올리는 건 아직도 무섭습니다. 하지만 이 기억은 제 삶의 시작이었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섯 살이었던 어느 한낮. 형의 방, 그 작은 공간에서 스폰지밥을 보며 웃고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제 안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형의 컴퓨터 화면 속의 색감은 평화로웠고, 만화 캐릭터들의 웃음소리는 낯설지 않게 귀를 간질였죠. 하지만 그 모든 색채는 순식간에 회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이 쾅하고 열리며 친부가 들이닥쳤습니다.
너네 엄마 어딨어?
그의 외침은 공기를 찢었고, 얼굴은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형은 그 상황을 직감한 듯 저를 재빨리 현관 옆 방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엄마의 비명, 육중한 충돌음, 그리고 바닥에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귓속을 때렸습니다.
숨이 목구멍에 걸린 채, 저는 방 안 구석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형의 방. 양 옆으로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책상, 형의 것과 제 것. 문 옆 제 책상 아래로 몸을 웅크리고 앉았을 때, 형이 조용히 컴퓨터를 켜고 말했습니다.
이거 보고 있어. 듣지 마.
화면에는 크리스마스 복장을 한 징징이와 스폰지밥이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산타로 분장한 징징이를 바라보며 스폰지밥은 환하게 웃었고, 그 장면은 눈앞에서 재생되고 있었지만, 저의 귀와 심장은 모두 문 너머에서 울리는 세계를 향해 있었습니다.
형이 조용히 귀를 막고 있는 걸 보고, 저도 작은 손으로 귀를 막았습니다.
"으아... 으아아..."
조용히 속삭이듯 반복했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을 지우기 위한 저만의 방법이었죠. 공기는 무겁고, 숨결은 끊어진 듯했으며, 몸은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형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 순간 우리 둘은 같은 공포 속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친부는 문을 닫고 나갔고, 뒤이어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방 안의 가구 배치,
바닥에 앉아 느껴졌던 차가운 감촉,
형의 숨소리, 엄마의 울음.
그 모든 것이 아직도 제 안에 각인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그 어둠 속에 갇힌 채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누군가 문을 세게 닫을 때면 스폰지밥의 얼굴이 떠오른다.
트라우마의 한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을 침습이라고 합니다. 저는 트라우마 침습이 너무 강했던 시기가 중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이 트라우마가 평생 따라올 숙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냥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져가야 할 무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과 병원에 대해서 안타깝게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택지에서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트라우마 현상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 찾아낸 것이 명상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찾은 건 연민 명상이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허리를 바르게 하고 앉습니다. 눈을 감고 그 당시의 5살의 나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5살의 나를 꼭 끌어안고 위로를 해줍니다. 이 명상을 하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을 반복하자, 신기하게도 마음속의 그 장면들이 조금은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저는 부모를 용서하는 방법으로 연민적 이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 방법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 시리즈 <1부, 트라우마 PTSD 편>의 1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