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후 트라우마 위에 덧입혀진 ADHD

『5살부터 PTSD,ADHD,조울증』<1부 PTSD 트라우마편 2편>

by 조영철

유치원, 표류하던 작은 아이

2008년, 그날 이후 저는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유치원에 입학했죠. 그러나 유치원도 따뜻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마치 유리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했고, 저는 언제나 교실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무리 속에서 반짝였지만, 저는 그 원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투명 인간처럼 맴돌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의 눈길엔 '귀찮음'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가끔 비치는 애처로움조차 마치 의무감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 말도 듣지 않았는데도, 늘 누군가의 시선이 따라다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차가운 바닥 타일의 반복된 무늬, 선생님의 곁눈질, 그리고 단체 수업 도중 어김없이 들려오던 호출음—"영철이는 지금 원장실로 오세요."

호출음이 들릴 때 저만 나가면 아이들은 다 저를 쳐다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그 시선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학습이 느리다"는 이유로 저는 자주 원장실로 불려 가 별도의 수업을 받았습니다. 원장실은 다른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작은 섬 같았고, 그곳에 있는 동안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아득해졌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그것이 이상하다고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나는 원래 이런 아이야',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 것처럼 체념했습니다. 특별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런 외로움과 고립 속에서 버텨냈는지, 그저 놀랍고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초등학교,

트라우마 위에 덧입혀진 ADHD의강박

초등학교는 저에게 더 넓은 무대였지만, 동시에 더 깊은 어둠이 깔린 세계였습니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사회였고, 저는 그 사회에서 철저히 주변부에 머물렀습니다. 점점 더 짙어지는 불안을 이기기 위해 저는 강박적인 행동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형광등 스위치를 여러 번 껐다 켰다 하거나, 뜨겁게 달궈진 냄비에 손을 대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올라왔습니다. 그 충동을 억누르지 않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고, 행동 하나하나는 내 안에서 몰아치는 불안을 붙잡는 닻처럼 절박했습니다. 수업 후 복도나 창가에 앉아 있다가 불현듯 윗옷을 걷고 배를 드러내곤 했습니다.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않으면 불안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이상하게 여겼고, 점점 멀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ADHD의 강박적 사고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누구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닌 2011-2016년도. 저는 그때 조울증으로 인해서 그랬다는 사실을 십몇년뒤 2025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혼란스러워하셨고,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너 몸에는 귀신이 사는 것 같다"

지금은 그 말을 농담이었다고 부정하시지만, 그 순간은 제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마치 얼음처럼 박혀 있습니다. 저는 웃어넘기려 애썼습니다. 정말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가슴속 어딘가에 깊고 날카롭게 박혀, 오랫동안 제 자존감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친구 관계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고, 그 외에는 철저히 무관심의 그림자 속에 방치되었습니다. 친구가 없다는 사실조차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습니다.




4학년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저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철이는 왜 친구가 없는가"

그 말은 저를 향한 진심이라기보다는 평가처럼 들렸고, 저는 그 질문에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하지만 6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선생님이 다시 던진 말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찢어놓았습니다


"너 아직도 친구 없니? 에휴.... 노력 좀 해봐."

심지어 6학년 때 사귔었던 친구 2명이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그 존재조차 지워진 듯 무시당한 느낌은, 마치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말은 제 마음 깊은 곳에 박혀, 무력감과 자책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인생에 빛이 비친 순간이 있었습니다.

6학년 어느 날, 아이들이 갑자기 제 곁에 모여들어 함께 웃고 장난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중심이 되어 있었고,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 가장 밝고 따뜻한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짧은 순간이, 긴 어둠 속에서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등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쓰고 있다는 기적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저는 살아남았고, 이제는 그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끝까지 쓸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그 기억들을 다시 꺼낸다는 것이 두려웠고, 다시 아플까 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줄, 또 한 줄 써 내려가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회복이며, 제가 여전히 살아 있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어쩌면 어딘가에서 비슷한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주 작은 온기라도 닿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도 써야 할 이야기들이 남아 있고, 저는 그 이야기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메모 | 2025년 10월 추가]

이 글은 당시 제가 ADHD로 이해하고 있던 강박적 사고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후 조울증(Ⅱ형) 진단을 받으면서,

당시의 증상이 ADHD가 아닌 조울증의 일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은 그때의 제가 병을 이해하려 애쓰던 흔적이기에 남겨둡니다.

저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ADHD,조울증』시리즈 1부, 트라우마 편의 2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전 02화다섯 살, 문 너머에서 들은 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