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1부 PTSD, 트라우마 편 3편
끝이 보이지 않던 집안의 지옥 같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말이 오가면 언제나 싸움이 되었고, 고요 속에서는 오히려 더 무겁고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습니다. 술을 마신 날의 엄마는 제가 알던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낯설고 두려운 존재로 변했고, 저는 작은 방에 숨어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그 소리를 견뎌야 했습니다. 새벽을 찢는 고함소리, 얇은 벽을 뚫고 들어오던 분노의 파편들. 어떤 날은 손찌검을 당했고, 피가 맺힌 손가락을 보며 울먹일 때, 엄마는 차갑게 말했습니다.
“피났다며? 니 알아서 해.”
그 순간의 차가움은 아직도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아파도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엄마의 눈빛은 때로는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감정의 표적을 겨누는 듯했습니다.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엄마가 차 안에 피신해 있을 때, 그 앞에 서 있던 저는 온몸이 굳어버렸습니다. 혹시나 다시 소리를 지르거나 날카로운 눈빛을 보낼까 두려워 숨을 크게 쉬지도 못했습니다. 발자국 소리에조차 긴장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엄마를 단순히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의 엄마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요. 밥을 챙겨주고, 시험 성적을 물어보고, 감기에 걸리면 약을 지어다 주던 사람. 가족 모임에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순간, 다정하게 제 이불을 덮어주던 손길. 두 얼굴처럼 느껴졌던 엄마였지만, 저는 그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 끝내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모순이 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어린 마음은 늘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 방황해야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은 압니다. 엄마는 두 사람이 아니라, 상처 입은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받은 무게를 술로 감추려 했던 엄마의 모습을 이제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는 『내면소통』에서 부모의 감정 상태가 아이의 정신건강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부모의 표정 하나, 목소리의 떨림 하나가 아이에게는 세상을 인식하는 창이 된다는 것이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의 긴장과 상처 역시 고스란히 제 안으로 흘러들어와 어린 마음에 각인되었습니다. 저는 그 신호들을 해석하며 세상을 배웠고, 그것이 제 내면을 결정짓는 힘이 되었음을 이제야 이해합니다. 결국 엄마도 인간이었고, 완벽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엄마는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복잡한 얼굴이 하나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였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모든 모습이 얽혀 있는 엄마의 삶이 보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엄마의 그 모든 모습이, 지금의 저를 만들고 제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이제 엄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보다는 이해가, 분노보다는 연민이 제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 상처마저도 엄마와 저 사이의 역사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직 하나만 바랍니다.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엄마가 조금 더 가벼워지고, 조금 더 행복하시기를.
엄마, 저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지만, 조금씩 더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말을 편하게 건네고 싶습니다.
엄마, 사랑해.
이 글은 『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 시리즈 1부, 트라우마 편의 3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